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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문학동네2017년 3월 27일
진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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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내가 작년에 ‘상상력 이노베이터’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발표 준비를 위해 읽었던 책이다. 정말 뜨거운 감자처럼 모두가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아무런 소득도 없는 감정 싸움으로 끝나버리는 그 주제.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우선, 무엇보다 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성평등에 대한 상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받은 것’이 내겐 큰 위로가 되었다. 외국에서부터 시작된 페미니즘이라는 성평등 운동은 결코 현재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외치고 있는 언행들과 맥이 맞지 않는다. 저자 벨 훅스는 개정판을 출간하며 책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단 한 번도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들만의 것이라도,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해본 적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모두가 페미니즘에 한 발 더 다가오게 설득하지 못하면 페미니즘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확신했다.

   저자인 그녀의 말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결코 남성을 혐오하는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남성들과 함께 해야만하는 운동이다. 왜냐하면 이 운동은 근본적으로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책에서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결코 남성이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성차별주의다. 이 정의는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게끔 사회화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여성도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때문에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녀가 대립하는 구도의 운동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잘못된 발상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의 적은 성차별주의다. 성차별주의로 인해 피해를 받은 모든 이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의 의도는 이러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미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운동이라느니, 남성혐오적 운동이라느니, 성차별적인 운동이라느니 굉장히 말들이 많았다. 단언컨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난 이러한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남성혐오적인 발언을 공공연하게 외치고, 그것을 지지하고, 좌시했는가? 미러링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갖고, 자신의 혐오감 표출을 정당화시키며, 얼마나 많은 남성들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는가? 특정 인물의 성차별적인 행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남성이라는 일반화된 프레임 속에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갖은 조롱과 무시를 당했는가? 이는 결코 성평등을 생각하는 자들로부터 나오는 언행이 아니다. 대화와 화합보단 일방적 폭언과 대립을 원하는 자들의 말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모든 이들이 위와 같았던 것은 아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들과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제시해주었고, 그것을 통해 건설적인 토론을 진행했던 경우도 존재했다. 책에도 나온 내용이지만, 그것은 내적 아름다움과 외적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었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주어 여성들도 나이듦을 좀더 긍정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이든 여성으로서의 현실, 특히 생물학적으로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하자,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미를 정의하는 고루한 성차별주의적인 기준을 다시 받아들였다.

…(중략)…

   페미니즘 운동으로 수많은 유형의 여성 친화적인 잡지가 속속 발간되었지만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어떤 패션잡지에서도 미의 기준을 대체할 만한 이상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대안도 없이 성차별주의적인 이미지만 비난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개입이다. 비판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비판해왔지만, 여성들은 뭐가 건강한 선택인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을 뿐이다. 나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체중이 늘었으나 자기혐오에 찌든 성차별주의적 몸매를 목표로 삼지 않고 체중을 줄이기로 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기존에 여성들을 억압하는 미의 기준에 반발하며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했으나, 어떠한 특정한 외모가 아름다움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여성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고, 스스로의 만족을 통해 아름다움을 정의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위에서 언급했듯이 늙은 여성들은 때때로 그녀들의 외모가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지지 않음을 인지했고, 책의 내용에 따르면 젊은 여성들과 경쟁하기 위해 기존의 성차별적인 미의 기준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선, 여성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몸이 마른 것만으로 매력을 느끼는 남자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가령, 기아로 굶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매우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적어도 적은 체중이 미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반례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글쓴이 또한 자신의 체중이 증가한 것을 인지하고 자신을 위해 제중을 줄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여성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충분히 많이 생각하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그것으로 괜찮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화장을 안 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단발을 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뚱뚱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서 말한 자신의 판단을 위해선 사회적인 선입견(예를 들자면, 성차별주의적인 미의 기준)에 보다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이 온전히 느끼는 바에 따라 자신의 미추 판단이 보다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의 방향성에 대한 내 생각을 언급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성평등에 대한 운동은 남녀 모두가 함께해야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동행의 기폭제로서 나는 이성에 대한 매력 발산 여부가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성평등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돈이 없거나 외적인 매력이 부족하면 남성 연인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또한, 기존의 성차별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더라도, 돈이 많거나 외적인 매력이 충분하면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지고 있다. 나는 성차별적인 기준에 반대한다는 것은 여성들로 하여금 매력적인 요소로 비춰져야 하고, 적어도 성차별적인 남성들은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해야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들부터도 ‘남성은 ~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남성들에게 당연하게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또한, 자신이 연인이나 배우자를 성차별적인 방식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드시 생각해보자. 일부 남성들은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의 존재를 극도로 혐오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것들이 대체로 일부 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언행불일치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성차별을 거부하고, 성평등을 희망한다면 부디 자신의 언행을 조심하자. 어떤 글을 쓰는 것이나 어떤 말을 하는 것은 한 명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그것을 읽거나 들으면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페미니즘은 성평등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엄연히 따지자면 둘은 다른 어원을 갖고, 다른 의미를 지니는 두 개의 단어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성평등이라 부르든, 페미니즘이라 부르든, 우리의 머릿 속에 존재하는 그 가치만은 하나라는 것에 동의해주었으면 한다. 성평등은 결코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험담하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손을 맞잡고 나아갈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