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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김영하문학동네2019년 4월 17일
고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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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행>
 sns의 3대 요소가 여행, 연애, 맛집이라는데 나는 이 시대의 젊은이 치고 참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가자고 하면 따라가긴 했지만 내 손으로 여행 계획을 세워본 기억은 손에 꼽는다. 시간과 돈이 주어진다면 아마 여행이 아닌 다른 곳에 쓸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모든 게 간편화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여행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고, 여행의 즐거움을 비슷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컨텐츠들도 많이 개발됐다. 이 책은 그럼에도 대체될 수 없는 여행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여행의 이유는 공항에서 산 책이다. 작년에 가족여행을 가는데 책을 한권도 챙기지 못한걸 깨닫고 급하게 샀다가 늘 그렇듯 한 페이지도 안 펼쳐보고 고대로 가지고 돌아와서 한국에서 읽었다. 여행 전에 혹은 여행지에서 읽었다면 더 좋았을 책이란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왜냐면 이 책을 읽기 전의 여행과 후의 여행은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드물게 여행을 가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여행은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그래도 이 정도는 인생이 파놓은 함정 치고는 얕은 축에 든다. 김영하는 중국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비자가 없어 추방당하고,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허리케인을 만나 숙소에 틀어박혔다가 게임중독에 빠진다. 하지만 좌절하는 법 없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부터 여행에 전제되어야 하는 유연한 사고를 배운다. 이런 깨달음은 본래의 계획에서 완전히 벗어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왔다. 예상하지 못했기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고정관념은 사람을 묶어둔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체감한 깨달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여행에 실패와 성공을 나누긴 어렵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목적달성에 실패한다면 그것을 실패한 여행이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실패는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이어지고 경험은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한 여행이야말로 성공한 여행이다. 달리 말하면 계획한대로 평탄하게 이뤄진 여행은 새로운 것을 찾지 못했다는 말과 일맥상통이니 여행으로써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 여행은 이토록 모순투성이다. 꼭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프로그램은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이며, 김영하는 본인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낯선 호텔에서 환대 받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어린 시절을 반추하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고명딸로, 체구가 작은 여자애로 과보호 받으며 자랐다. 길물어보는 할머니조차 흑심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니 상대해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결과 내 프로그램은 외부를 불신하고 오로지 내부에서 안정감을 찾도록 작동한다. 환대는 여행에 있어 중요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확장해서 우리 삶에 적용 가능한 개념이다. 인생이 여행이고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면, 낯선 사람에게 베푸는 환대는 순환되고 대물림 되는 선이다. 환대를 믿지 않고 그 순환의 고리를 끊는 태도는 단순히 여행에 한정해서가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 문고리가 세균 투성이라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결벽증 환자는 어디로도 나아가기는 커녕 문을 열 수 조차 없을 것이다. 고여서 썩은 물이 되지 않으려면 안락함에 갇혀 있어선 안된다는걸 명심하게 됐다.
  김영하는 소설과 여행을 비교했는데,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통제돼있어 현재에만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소설과 여행은 공통점이다. 여행은 산발적이고 무질서한 삶에서 벗어난 휴식이며, 새로운 경험의 원천이다. 내가 이렇게 재밌는 여행을 여태 썩 반기지 않았던 건 외부세계에 대한 불신 때문만은 아니다. 나에게 여행의 이점을 비슷하게 충족시켜주는 다른 취미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연뮤덕’이라고 부르는 연극과 뮤지컬의 팬이다. 김영하는 삶이 부과하는 무게가 까다로울수록 여행을 갈망한다는데 나는 그럴 때일수록 관극을 갈망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관극은 여행을 대체할 수 없다. 관극은 내가 극장까지 가서 배우가 연기하는 극을 직접 관람한다는 점에서 소설보다는 경험적이다. 하지만 설령 내가 극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고 해도 극은 정해진대로 진행된다. 극의 주체도 내가 아니라 배우다. 여행은 낯선 환경에서 오감으로 체득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경험이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나인 극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앞으로의 여행이 훨씬 기대가 됐다.
  김영하의 소설은 몇 권 읽었는데 그 중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이 인상적이었다. 범죄자에 대한 나의 평소 인식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이다. 그 책에서 연쇄살인범은 남들 다 사는 평범한 삶조차 살아내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미디어에서 중범죄자를 거창하게 괴물이나 악마 따위로 지칭하는게 늘 못마땅했다. 사실 그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할 정도로 무능할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범죄들도 비대한 자의식에서 발생한다. 타인의 고통에는 둔감한 반면 본인이 조금이라도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견디지 못힌다. 극단적으로 사회성이 낮은 것이다. 어쩌면 요즘 들어 더 두드러지는 이런 경향들은 사회적 단절 때문에 생긴 것이고 이는 여행을 통해 고쳐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자가 반드시 지녀야할 태도는 스스로의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그리고 타자에 대한 존중심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외부세계의 타인과 접촉해야하는 여행은 습격으로 변해서 삶을 송두리째 잡아먹어 버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본인들의 안위를 위해서 신원불명의 낯선 사람인 여행자를 경계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타지를 방문한 여행자는 개인의 개성과 전혀 상관없이 기호화되어 분류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쌓아온 모든 것이 있는 본국에서의 정체성과 여행지에서의 정체성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이를 오랜 방랑을 통해 체득했다. 여행지에서 나는 포근한 환대를 받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아무 의미 없는 뒷배경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좀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는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물론 세계는 나의 좌절과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세계도 없기에, 세계는 나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고 존재한다. 이를 정확히 알고 긍정적인 시각을 견지한다면 굳이 자신을 외부에서 인정받으려 들지 않고도 동등한 주체로써 외부와 소통하고 상생할 수 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단순히 여행담이 아니라 삶과 성장 그리고 외부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김영하의 여행론은 일상에서의 해방과 새로운 시점의 구축 그리고 생에 대한 거시적 관점을 제시한다. 고유한 개인이 아닌 표준화된 노동력으로 인간이 다뤄지는 요즘, 여행은 몇 개 안남은 인간성의 발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생존과는 전혀 무관하고, 수고롭고 가성비 낮은 여행이 그럼에도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 가치를 가져온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