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의 시칠리아)
이은지
코로나로 인하여 좋아했던 해외여행이라는 말이 어색해지기 시작할 때쯤, 오디오북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의 덤덤한 말투로 읽어가는 글을 귀로 들을 때에 나도 모르게 같이 시칠리아로 떠나게 되는 기분이었다. 현실에 치여 눈앞에 있는 것들이 너무나 중요해 보이고, 하는 일을 그만두면 안 될 것 같다고 느끼며 하루하루를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내 삶에, 잠깐의 휴식이 되는 책이었다. 추억 속 앨범 사진을 꺼내 보는 듯한 책은 10년 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무언가를 놓치고 사는 것이 아닐까 할 때 아내와 함께 시칠리아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 여행을 담는 에세이로 김영하 작가 본인이 여행하면서 느낀 그 모든 것을 담아내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하는 중에도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게 첫 번째이자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나오는 아날로그 방식들이 특이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중간중간 웃픈 헤프닝이나 주민들의 호의에서 오는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는 지도, 여행 책자로만 하는 여행이 훨씬 서툴고, 어렵지만 정해진 궤도를 벗어난 곳에서 일어나는 우연은 언제나 낭만적인 것을 알려주기도 하는 것 같다. 또한 김영하 작가만의 독특한 농담과 더불어 시칠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풀어내는 해설을 읽는 재미도 있다. 2009년 이 책을 출판했을 때 책의 제목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였다. 현재 출판된 이 에세이 책에서는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온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오래 준비해온 대답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10년 전 작가가 던진 질문에 어떠한 답을 할 것인지 고민하였다. 그 답은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가 남긴 대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먹물에 책상물림인 나는 ‘보고 들은 진기한 것들’에 대하여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보태 적는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을 세상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을 세상으로 흘려보낸다. 나도 다시 흘러간다. 그 어디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