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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악의

히가시노 게이고현대문학2008년 7월 25일
양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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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의 동기란 무엇일까?’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의 표지 하단에 적힌 물음이다. 그리고 이 물음의 답은 책의 제목인 ‘악의’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 그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어둠의 이면 말이다. 악의가 있기 때문에 살인을 행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된 악의가 무엇이길래,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감정 또는 심리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무서운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그렇게 섬뜩하고도 소름 끼치는 악의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와닿게 표현한 표지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아동문학 작가인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로 시작된다. 그는 그의 친구인 베스트셀러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죽음을 목격하고 이 사건을 제3자의 시점에서 수기로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수사를 진행하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는 그를 향한 의혹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노노구치가 범인임이 밝혀진다. 범인과 범행 동기의 마지막 퍼즐까지 맞춰지는 듯했으나, 가가 형사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노노구치의 진정한 범행 동기를 추리하기 시작한다. 노노구치는 어쩔 수 없는 히다카의 고스트 라이트였으며 히다카의 아내와 얽힌 이야기 등 그의 범행 동기는 명백하게 가가 형사의 추리와 일치했지만, 알고 보니 그 범행 동기 또한 치밀한 조작이었다. 노노구치의 궁극적인 동기는 히다카에 대한 ‘악의’였던 것이다.

  보통의 추리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범인이 아닌 범행 ‘동기’를 추리해야 한다. 이야기 초반에 범인이 밝혀졌고 그가 사용한 트릭도 드러났지만, 범인이 ‘왜’ 살인을 했는지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동기를 찾기까지의 과정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었고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선한 인물이 돌고 돌아 결국엔 악한 인물이었다는 인물들의 선악구도가 반전을 맞이했다는 점과, 모든 사건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핵심인 동기가 대단한 추리력을 가진 형사는 물론 범인 자기 자신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심리적인 부분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트릭은 노노구치의 수기 초반에 등장한 고양이 사건이다. 히다카가 농약으로 고양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다소 사건과는 동떨어진듯한 이야기는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히다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였다. 가가 형사 또한 그러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무의식중에 히다카의 잔혹함이 선입견으로 남은 것이다. 이렇듯 본인도 모르게 내재된 선입견과 더불어 우리의 삶에서 무심코 접했을 편견과 오류가 정말 무섭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히다카에 대한 편견은 실제로 언론에 휘둘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 한 개인이나 집단을 둘러싼 온갖 날조와 선동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눈에 선명한 이익을 위한 목적 때문이겠지만, 어떤 경우는 ‘악의’를 갖고 악의를 가진 대상을 향해 어떤 일도 감수한다. 그 일이 살인일지라도 말이다. 노노구치의 궁극적인 살인 동기는 히다카를 향한 ‘악의’였고, 특정한 사건 때문이 아닌 아무 이유도 없는 그 악의는 노노구치 본인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며 본인도 설명할 수 없는 악의라는 감정은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에 그래서 더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살인으로 이어질 만큼 숨길 수 없었던 미묘하고 무서운 감정인 것 같다. 돌이켜보면 실제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도, 개인의 내면에도 누군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또는 오해, 열등감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나도 모르게 어떤 사람을 정의 내리고 단정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그러한 깊고 어두운 이면의 세계, 자기 자신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라는 심오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