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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날개

이상이가서2004년 6월 22일
이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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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날개

 

이하늘

 

고등학교 1학년 당시 나는 진로를 미술 쪽으로 갈지, 교육 쪽으로 갈지 고민이 많았다. 미술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한 것이었으나 장래 직업의 안정성을 고려했을 때 썩 좋은 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나 교육은 내가 관심이 덜한 쪽이긴 했으나, 공무원이란 직업과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점이 끌렸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던 중, 우연히 이상의 <날개>를 읽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화자가 처음엔 죽어있다 느꼈다. 박제가 된 천재,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죽은 것이다. 자신의 글을 쓰지도 지식인으로서 활동하지도 않는 화자는 날개가 꺾여 죽은 지 오래라 생각됐다. 화자는 소설 내내 강한 의지도 목표도 없는 권태롭고 나태한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아달린을 먹여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아내의 매춘행위를 목격했음에도 아내를 탓하지 않는 답답한 태도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날자고 말하며 인공의 날개를 펼친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고,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었음에도 화자는 재부상을 꿈꾼다. 괴로움에도 굴하지 않고 권태에 갇혀 있음을 거부하는 의지가 그에게 인공의 날개가 돋게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날개를 얻은 화자는 이제 전 같은 무력함을 벗어나 날게 될 것이다, 라고 나는 느꼈다.

 

이를 보고 생각했다. 만일 내가 미술 쪽으로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면, 간간이 그림을 그릴 수는 있으나 그림으로 인정받지도 이름을 떨칠 수도 없다. 평생을 미술이 취미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삶 속의 나는 언제나 후회와 일에 대한 권태로 차있을 것이다. 그런 나는 날개가 꺾인 차가운 박제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미술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면, 매일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 나날들 중 비록 좌절과 시련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사랑하는 그림과 함께라면 언제나 날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 후 나의 장래 희망란은 언제나 미술 분야 직업으로 가득 차 있게 되었다. 이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언제나 가방에 세월과 손 때로 인해 꼬질꼬질해진 노트를 넣고, 책상 앞에서 몽땅 연필의 뭉뚝한 심을 억지로 깎아가며 계속 그림을 그려간다. 지우개가 재처럼 거뭇해지고, 내 손에서 고무와 흑연 냄새가 진동하게 되더라도 나는 멈추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나도 화자와 함께 박제가 아닌, 살아서 날아가는 천재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