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이라는 제목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하얼빈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역사 속 가장 강렬한 운동 중 하나이기 때문에 모두가 알 텐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기까지 과정과 그 순간과 그리고 이후를 다루고 있다.
정말 오랫동안 역사를 배웠다. 초등학생 때도 3.1절이 무엇인지 배웠고 일제강점기가 어떤 시기였는지 배웠고 식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배웠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계속 역사를 놓치지 않도록 배웠고,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대단하신지도 느끼고 있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라면 하지 못했을 거야.’,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면 어땠을까?’와 같은 생각은 종종 한 적이 있지만, 독립운동가들 중 한 명이라도 내가 직접 이입해서 생각해본 적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은 나를 안중근 의사의 그때 그 세계로 이끌어준 책이다.
더불어 이 책이 내게 특이하고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안중근 의사의 관점이나 다른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가족의 관점으로만 진행되지 않는 점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입장도, 당시 왕세제였던 이은의 입장도, 순종의 입장도, 일본 황제 메이지의 입장으로도 독자를 이끈다. 그래서 훨씬 다각적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못 본 체하라. 민심을 덧나게 하지 마라. 발설을 금한다. (‘하얼빈’ 中)
타국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서는 정말 교묘하게 악랄해야 함을 알고 있다. 이 장면을 통해 얼마나 이토 히로부미가 교묘한지 느낀 부분이다. 계속 만세를 외치고 독립운동을 하고 의병을 모으는 한국의 백성들의 민심을 더 불태우지 않기 위해 일본이 보기에 언짢을 순종의 제사를 모른 척하는 모습에 놀랐다. 물론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 속에는 이런 영악한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배우기도 했고 그게 당연할 거라 생각했고 난 그 정도만 알고 있었다. 여기서 문학의 중요성이 와닿았는데, 정말 생생하게 몇 마디로 적은 이토 히로부미의 말로 그의 악랄함이 느껴졌다.
-얼굴은 잘 안 보이는구나.
-이토는 덩치가 작다. 키 큰 사람들 틈에 섞이면 작아서 식별하기는 쉬운데, 그 대신 맞히기가 어렵다. 잘 살펴라.
-현장에서 얼굴을 알아보기는 어렵겠구나.
-얼굴은 나도 못 봤다. (중략) 총은 느낌으로 쏘는 것이 아니다. 표적을 겨눠서 조준선 위에 올려놓기가 어렵다. (‘하얼빈’ 中)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 역으로 가는데 중간 역에 채가구라는 역이 있었다. 소설 속에서 안중근과 우덕순, 둘의 관계가 드러나고 둘 다 목표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것이다. 목표를 향한 과정 중 하얼빈에 당도하기 전인 채가구 역에는 우덕순이, 하얼빈 역에는 안중근이 가겠다는 계획이다. 둘 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조차 모르지만 목표에 대한 엄청난 의지가 와닿았다. 의지를 닮고 싶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하얼빈’ 中)
안중근의 사격 실력을 알고 보면 이 장면이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표현력이나 어휘력이 없는 내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후 옆에 있는 일본인 몇을 더 사격했는데, 이토 히로부미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더 사격했다고 후에 진술한다. 쏘기 굉장히 어려운 총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안중근 의사는 정확히 명중했다. 이 책은 아니지만 다른 문서에서 그 어려운 총이 안중근 의사는 자신에게 맞았고 반동이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라는 걸 읽었다.
-너희들은 돌아가라. 돌아가서 포로가 되었던 일을 입 밖에 내지 마라. (‘하얼빈’ 中)
어느 부분에서 일본인 군인 몇 명이 안중근과 그의 사람들에게 포로로 붙잡혔었다. 안중근 의사는 그 포로를 풀어줬는데, 그 포로는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일본 상관에게 안중근과 그의 사람들 장소와 군력을 보고해서 안중근 의사와 그의 사람들이 위험해졌었다. 실은 안중근 의사도 그럴 상황을 알고 있었을 텐데 생명의 중시를 잘 아는 사람이란 걸 느끼게 만들어주는 장면이다. 함부로 생명을 죽이지 않고, 얕보지도 않는다는 것.
조선의 왕세제인 이은이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듣고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왕세제가 된 조선의 이은은 어린 나이에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간다. 일본의 황제인 메이지도 이토 히로부미도 이은을 일본으로 데려오는 것을 “납치” 또는 “인질”로 세계에 보여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자칭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선진화된 문화를 조선의 왕자에게 가르쳐주는 “유학”으로 데려간다. 이은은 모든 걸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런 마음을 품었겠지. 우연에 불과하겠지만, ‘순종은 한동안 고요히 앉아 있었다.’는 저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이다. 얼마나 고요했는지 그 적히지 않고 표현하지 않은 조용한 착잡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발은 정확히 들어 갔는데, 이토는 죽었는가. 살아나는 중인가. 죽어가는 중인가. (‘하얼빈’ 中)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 여부를 정확히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태 살면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 대목이 정말 내게 큰 충격으로 와닿았다. 나라를 무너뜨린 주범을 죽이기 위해 사살을 시도했고 급소에 총알이 잘들어맞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정확한 사망 여부는 모를 수도 있었겠구나. 얼마나 심정이 복잡했을까.
빌렘은 안중근 의사가 황해도에 있을 당시 세례를 해준 신부일 것이다. 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안중근 의사와 가까운 신부다.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 있어 고해성사를 빌렘 신부에게 요청하는데, 이때 빌렘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출장을 요구하는 우편을 보낸다. 뮈텔 주교는 안중근 의사가 사람을 살해했기에 천주교를 떠난 사람이라고 말하며 출장 요청을 거절하지만 빌렘은 안중근 의사가 있는 여순 감옥으로 간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와 면회하고 고해성사를 한다.
안중근 의사가 천주교인이기도 하고 종교의 의미가 꽤나 크기 때문에 천주교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당시 신부와 주교의 이야기도 나온다. 안중근 의사가 바라지 않은 생각이겠지만, 난 내가 천주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침략국의 사람을 죽인 것. 안중근은 사람의 목숨을 죽인 건 죄일지언정 이토 히로부미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이라고 여순 감옥에 온 빌렘 신부에게 고한다. 이 장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으나 말재주나 글솜씨가 부족해 생각을 표현하기 어렵다.
안중근 의사는 청년의 나이로 애국하셨구나. 그 과정은 복잡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목표는 단순하셨구나. 유일한 목표를 위해 흔들림 없이 흔들리는 총구를 겨누셨구나. 국가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고 말하고 싶으나 죽음을 택했다는 말이 올바른지 고민하고 있다. 주어를 두지 않은 죽음이라면 이 문장을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천주교를 믿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성경을 비롯되 말하자면, 예수는 죽어서 사흘만에 부활하지 않았던가. 안중근 의사는 부활절 전에 죽길 원하셨다. 3월 27일이 부활절이고 3월 26일은 부활절 성야이니 25일에 죽길 원한다고 밝혔다. 실은 그 날 사형 예정일이었다. 하지만 3월 25일은 순종의 탄신일로 사형일이 미뤄져 3월 26일에 순국하셨다. 1910년에 보면 당연하고 안타깝지만 2024년에 존재하고 있는 나는 이 상황이 어처구니 없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