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2017 베스트리뷰 공모전 수상작]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을만한 고통만 주신다.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인 내게 신이 들어간 말 중에 이것보다 기억에 남는 말은 없다. 그렇다면 그 고통에서 죽음에 관한 고통은 어떨까. 분명 태어났으니 죽는 것이 맞는데, 그 많은 죽음에 관한 말을 들어도 ‘나’의 죽음은 멀게만 느껴진다. 아마 직업이 의사여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리라. 왜 우리는 삶에는 지독히 집착하면서 맞닿아있는 죽음에는 한없이 둔감한 걸까.
직업적으로도, 개인으로서도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던 의사 폴은 어느 날 본인의 죽음과 마주한다. 타인의 죽음을 가장 자주 겪는 직업 중 하나인 의사로서 살아가고 있던 그에게도 자신의 죽음은 낯설기만 하다. 그가 죽음을 처음 마주한 때는 한참 정상을 향해 가고 있던 마지막 오르막길에서였다. 조금만 더 버티면 유명 의대의 교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고, 사랑하던 연인과의 결혼도 앞두고 있었다. 그에게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불행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음을 마주하며 겪는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자신이 겪는 고통을 나열한 것이 전부는 아니다. 물론 마주한 죽음 앞에서 고통은 어쩔 수 없던 일이고, 그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더라도 누가 본인의 죽음에 의연하게, 감정적이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나 스스로가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던 간에 시간은 흐르고, 죽음은 다가온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자신에게 많이 남아있을 거라 느껴졌던 시간이 한없이 짧아졌음을 인정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시작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오랫동안 소망했던 책을 쓰기도 한다. 투병 기간 중 상당한 시간을 의사로서의 삶에 기여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폴 뿐만 아니라 죽음을 겪는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감히 해본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며, 행복해야 한다. 무한할 것만 같던 시간은 언제나 유한하니 말이다.”
갑작스레 병이 생긴 그에게만, 혹은 그처럼 투병중인 사람들에게만 죽음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당장 내일, 아니 몇 초 뒤에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순간, 매일을 죽음에 대비하며 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언제나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지금, 여기, 이 곳에서의 시간은 단 한번 뿐이라는 거다.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소중한 것으로, 행복한 것들은 언제나 행복한 것으로 남아있지 않는다. 스스로 잡지 못하면, 그것들은 언제, 어떻게 흐려질지 모른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생애 첫 유럽여행에서였다. 여행을 하느라 지치기도 했거니와 책을 잡는 건 꽤 귀찮은 일이라 가져간 책을 펼친 건 이동 중인 비행기와 공항버스가 전부였다. 특히 한국으로 돌아가 집으로 가던 공항버스에서 책을 다 읽었을 때는 기분이 참 묘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훔쳐 본 기분이었고, 왜 나는 그의 죽음에서 삶에 대해 더 많이 느꼈던 걸까. 여전히 나에게 죽음은 참 먼 단어이다. 하지만 삶은 그와 다르다. 삶과 죽음은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음에도 그 거리감은 참으로 크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나는 오늘도, 내일도,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죽음이 눈 앞에 보이는 순간은 두렵지만 분명 내게도 다가올거다. 늘 그렇지만 늙는 것이, 그리고 나아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