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산문집)
걸음조차 멈춘 청춘에게
–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요즘 내 또래들 사이에서는 ‘YOLO’ 일색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 대신, 현재를 충실하게 즐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만 보인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현실에 충실하겠다는 말에는 어딘가 모르게 무기력함이 섞여있다. 학업, 자격증 시험, 대외활동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해도 까마득하기만 한 취업. 이런 현실에 우리들이 얻은 건 일자리가 아닌 무기력함이었다. 그래서일까 서점가에는 ‘괜찮아, 어떻게든 돼’, ‘괴로우면 괴로움을 피하면 돼’ 식의 에세이가 잔뜩 쏟아져 나온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열심히 살아야 성공해’, ‘아파도 참아’ 라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실 나 역시 굳이 힘듦을 이겨내며 살아야 하나는 생각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무기력함에 열심히 살지 않아도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런 삶의 방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감만 남겼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이 힘든 현실을 이겨낼 원동력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흘러가듯 삶을 보내는 것, 막연한 미래를 위해 일단 참는 것. 두 가지 삶의 방식 모두 틀린 방식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 두 가지 방식 이외의,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싶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나에게 혹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작가 김연수는 달리기에 빠져 있다. 그는 달리는 순간은 괴로워도 끝나고 난 뒤에 오는 기쁨을 즐긴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는 여행도 달리기와 비슷하다. 제아무리 힘들어도 끝날 것을 알기에 기쁘게 몰두한다. 또한 그에게 이러한 괴로움들은 이겨내는 것이 아닌 ‘겪는 것’ 이다. 작가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작가에게 있어 고통 역시 그런 것이기 때문에 흐린 날이든 맑은 날이든 그저 서있는 나무처럼 겪으면 되는 일이며, 그런 나무가 강한 바람에도 꼿꼿하게 서있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한다.
괴로움을 이겨내는 것 혹은 괴로움조차 모르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 방식에서 길을 헤매었던 나에게는 해답 같은 이야기였다. 고통은 이기는 것도 피하는 것도 아닌 그저 겪으면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겪기만 하면 됐을 괴로움에 너무 필사적으로 이겨내려고 했고, 끝내 지쳐 무기력감을 얻은 것은 아닐까 싶다. 참고 견뎌 성공하라고 했던 서점이 이제 와서 괜찮으니 놓고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있어 삶은 견디는 것도, 대충 방치하는 대상도 아니다. 삶에 지쳐 힘듦이 오면 아파하고, 행복하면 기뻐하면 되는 것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p,42.)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개인적이든 구조적이든 갖가지의 문제들을 이겨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 이기는가 패배하는가가 전부였다. 패배하기 싫은 우리는 결국 싸움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괴로움에서 도망쳐 걸음조차 멈춘 우리에게는 그 어떤 길도 드러나지 않는다. “희로애락의 고통을 피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이 지복의 삶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건 복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감각이 잠든 삶이리라.” (p.19.)고 이야기 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이해되는 시점이다. 무리해서 뛰지 않아도, 뛰어서 꼭 이기지 않아도 된다. 그저 걸으며 가시밭길이 나오면 아프고, 지름길이 나오면 즐겁게 뛰면 되는 것이다. 길의 끝은 꼭 있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