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 이야기는 그 해 스물여섯이나 된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그 어머니의 아들은 동경에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직장도, 아내도, 심지어 애인까지도 없는 고독 속에서 늘 떠돌며 행복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거리를 방황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구보’이다. 구보는 늘 한 손에는 단장을 다른 한 손에는 노트를 들고 매일을 서울 거리로 나온다. 그에게 목적지란 없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갈 뿐. 그의 발길은 종로로 향한다. 구보는 거리를 산책하며 다른 사람들을 관찰한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비교되는 그 관찰 속에서 그는 고독을 느끼지만 그 관찰을 통한 머릿속 다른 세상에서는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그는 현실을 자각하며 한숨을 지으며 쓴웃음을 보이고 만다. 구보는 한 소녀를 생각한다. ‘그는 시계를 살 사 원 팔십 전과 치마를 살 삼 원 육십 전만 있으면 행복의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그렇다면 구보는, 자기는, 대체 얼마를 가져야 행복일 수 있을까‘하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구보는 행복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 대합실로 향한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그곳에서조차 사람 간의 온정 하나 찾아볼 수 없음을 깨달은 구보는 또 한 번 고독과 우울 속에서 그곳을 빠져나온다. 구보가 행복을 찾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벗을 만나는 일, 하지만 그 벗들 또한 자신의 문학관을 설파하느라 바쁘고, 세속 속에서 금을 팔고, 장사를 하며 변해있다. 그렇게 행복의 궁핍 속 외로움을 느끼며 고독 속의 산책자인 구보의 하루는 끝이 나간다. 그러나 그 끝에서 구보는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문득 깨닫는다. 자신의 생활을 가지리라고 창작을 하리라고 그 순간 그 생각 속에서 마침내 구보는 자그마한 행복을 갖게 되며 구보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작가는 이 소설의 끝을 구보의 고독으로 끝을 낼 것인지 책장을 넘겨가며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 끝은 구보의 자그마한 행복.
이 이야기의 끝이 구보 씨가 취직을 하여 평범한 가정을 꾸린다거나 뜻밖의 횡재로 돈을 벌며 끝이 났더라면 이 소설은 우리들에게, 적어도 나에게는 큰 감명을 주지 못했을 것 같다. 또한 이 소설 속 시대 상황과 구보를 생각해 본다면 1930년대 식민지 조선 속에서 소설가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던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과 좋은 글을 쓰는 것 사이에서 구보를 더욱 고독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번 소설을 읽으며 나에게는 행복이란 무엇이었는가 나는 이제껏 네잎클로버만을 찾느라 세잎클로버를 짓밟고 있진 않았는가 생각해 보면서 뒤돌아 생각해보니 나에게 행복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속에서도,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행복은 늘 존재해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