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엮다 (미우라 시온 장편소설)
사전이란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품사, 어원, 용법, 표기법 등을 해설한 책이며, 사상의 체계적 분석과 기술에 의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사전은 콤팩트디스크 따위와 같이 종이가 아닌 저장 매체에 내용을 담아서 만들기도 한다. 사전에 포함된 내용을 제대로 기술하기 위해서는 언어에서 사용되는 어휘부의 구조를 분석하는 어휘론과 어휘를 구성하는 단어의 의미를 연구하고, 의미 관계와 그 조직을 연구하는 의미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나는 미우사 시온 작가의 <배를 엮다>라는 소설을 읽으며 사전에 대한 정의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제목인 배를 엮다의 의미는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 그리고 사전 편집자는 그 바다를 건너 배를 엮어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단어의 바다는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사전은 그 너른 바다에 떠있는 한 척의 배이며,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 줄 말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한 단어를 발견하는 기적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나는 제목의 이러한 시적인 표현을 보며 이 책을 되돌아볼 때 벅찬 감정이 들었다. 말 그대로 단어는 생겨나기도 하고 또 소멸하기도 하며 살아있는 동안 의미가 변하기도 하는 무한의 세계라고 할 수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 나오는 사전 편집부원들은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을 위한 사전인 ‘대도해’를 편찬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지메 미츠야는 어리숙하지만, 정리와 배열을 잘하며 사전을 좋아한다. 마지메의 이런 모습을 보고 사전 편집부 사람들은 영업부서에 있던 마지메를 사전 편집부로 데려온다. 영업부서와는 거리가 있던 마지메는 사전 편집부에 들어와 사전에 매력을 느끼고 편찬에 노력을 다하게 된다. 사전은 만드는 과정 속에서 단어의 의미를 배우고 깨달으며 말로 이어가려는 시도를 하게된 것이다.
사전 만들기의 과정은 우선 단어수집으로 시작한다. 편집부 자료실에 백만 개 이상의 단어가 존재하는 것을 보아 그 양은 상당하다. 단어를 수집하면서 사전에 실을 표제어의 선정 작업도 시작한다. 국어사전에 실린 단어에 겹 동그라미를 쳐서 분류한다. 그 외에 남은 단어들 중 각각 다른 국어사전 두 권 모두에 실린 단어에는 동그라미를, 둘 중 하나에만 실린 건 세모 표시를 한다. 동그라미는 ‘대도해’에 실릴 가능성이 높고 세모는 그보다 낮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무 표시 없는 단어이다. 다른 사전에는 없는 단어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 지에 따라 대도해의 개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별 작업과 병행해서 겹 동그라미 단어들에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뜻풀이를 붙여 나간다. 그 후 표제어를 외주용과 내부 작업용으로 나눈 후 집필 요령과 견본 원고를 참고해서 집필 한다.
나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이 단어의 의미를 찾고 숨겨진 말을 찾으며 찾은 단어를 또 모으고 모아서 정리하는 것을 보며 사전 만들기란 도무지 쉽지 않는 과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단어에 담긴 여러 뜻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또 다른 단어를 이어가는 사전처럼 이 소설 속 인물들도 서로의 의미를 발견하고 찾아가며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대도해’ 편찬의 꿈으로 엮어나가는 것이다.
‘오른쪽’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 같은 경우에는 ‘오른쪽…? Right? 오른손잡이가 밥을 먹는 손, 왼손잡이가 주로 사용하지 않는 손?’등 이러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정의 내리기를 실패했다. 풀이가 너무나도 불완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주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해뜨는 쪽이라고 하셨고 친구는 인도는 보통 왼손을 똥 닦는 손이라고 하니까 인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을 먹는 손의 쪽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 어린 동생은 오른쪽은 오른쪽! 이라며 기적의 논리를 펼쳤다.
“자네 오른쪽을 설명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마지메 미츠야는 서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북쪽에 해당하는 쪽, 보수적 사상이라고 두 가지의 의미를 즉석에서 답하였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풀이가 되지 않았다. ‘오른쪽 : 서쪽을 향했을 때 북쪽에 해당하는 방향’, ‘북쪽 : 서쪽을 향했을 때 오른쪽에 해당하는 방향’이라고 하면 단어의 의미가 돌고 돌아 풀이로서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사전의 사례로는 ‘시계의 문자판을 보고 섰을 때 1시에서 5시ᄁᆞ지가 있는 쪽’, 또 다른 사전의 사례로는 ‘이 사전을 펼쳐서 읽을 때 짝수 페이지가 있는 쪽’이라고 한다. 이에 관해 토론하는 사전 편집부를 바라보단 ‘대도해’의 감수를 맡은 국어학자 마쓰모토는 ‘숫자 10에서 0이 있는 쪽’이라 말하였다. 이러한 뜻풀이를 보며 나는 사전의 단어 뜻풀이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위쪽’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개를 들었을 때 향하는 방향’?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고개를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늘을 향하는 방향’은 가능할까? 또 다른 뜻풀이로는 뭐가 될 수 있을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위쪽이란 위가 되는 쪽이라고 한다. 나는 이 풀이의 설명에 실망했다. 읽는 이를 배려하는 풀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사전 편집부는 이렇게 읽는 이가 뜻풀이를 볼 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최대한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사회는 극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운 말과 개념이 쏟아져 나온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면 잘못된 용법이라도 단서를 붙여서 싣자고 한다. 즉 사전 편집부 사람들이 바라는 ‘대도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전인 것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구절은 ‘한정된 시간밖에 갖지 못한 인간이 힘을 다해 넓고 깊은 말의 바다로 저어 나간다. 무섭지만 즐겁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 진리에 다가서기 위해 언제까지고 이 배를 계속 타고 싶다.’이다. 나는 사전에 대해서 이러한 깊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을뿐더러 평상시에 그 어느 것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전에 대해 더 깊고 깊게 알아가는 과정이 누군가에겐 진리를 향한 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몽상적이다. 이러한 감정으로 책을 넘기던 나는 또 한 구절을 발견했다. ‘사람 속에도 같은 바다가 있다. 거기에 말이라는 낙뢰가 떨어져 비로소 모든 것은 생겨난다. 사랑도, 마음도, 말에 의해 만들어져 어두운 바다에서 떠오른다.’ 사람은 각각 마음에 말이라는 바다를 지니고 있으며 그 바다에는 수많은 단어가 들어서고 그것이 감정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바닷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끼게 되었으며 이 구절이 내 마음에 있는 바다 속에 떨어져 자의 감정을 여기게 된 것이다.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감정을 향한 유일한 단어를 발견한 것이다. 단어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과 같아 철학적인 유희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에 연결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은 생물 같아서 끊임없이 변한다.
그로인해 완벽한 사전을 만들 수 없으나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집념을 지닌 사람들. 사전 속의 단어들은 얼핏 보아서는 무기질 한 나열이지만, 이 막대한 수의 표제어와 뜻풀이의 예문은 모두 누군가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쓴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집념인가.’ 저는 사람들이 말을 더 소중한 마음으로 대하고 사용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단어를 많이 알고 있지 않은 시절에 사전을 넘기며 새로운 단어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전은 그때 나에게 말의 바다에서 헤매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점차 잊고 살았던 사전은 어느새 형태가 많이 변하였다. 한없이 두꺼웠던 종이 사전은 어디에 갔을까. 시대가 변하고 해가 갈수록 전자사전으로 인해 종이 사전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나는 종이 사전이 책장에서 부피만 차지한다고 볼멘소리했었지만, 지금은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한 전시에서는 사전은 지식을 담는 그릇이고 사람들의 인식과 시대상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표현하였다. 사전에서는 당대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시대 의식에 따라 새로운 단어가 추가되고 기존의 단어 뜻풀이가 변하기도 한다. 이 전시는 사전이야말로 과거의 사실, 당대의 현실,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아우르는 역사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내 어린 시절 적 사전은 그 당시의 상황과 시대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는 현재의 사전이 현재 상황과 시대상을 나타내고 있다. 사전이란 사전 속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태까지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 속에서 종이사전은 함에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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