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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변신

프란츠 카프카문학동네2005년 7월 30일
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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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세일즈맨이었던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잠에서 일어난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있는것을 발견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실직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장의 역활을 도맡아 쉴새없이 일하며 가족을 먹여살리던 그레고르 잠자는 그에게 찾아온 끔찍한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그의 온 신경은 출근 기차를 놓치지는 않을까, 회사에 늦지는 않을까, 사장의 반응 등에 대한 걱정에 가있었다.
흉측한 벌레의 몸으로는 제 방에 누워있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레고르는 방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레고르가 출근을 하지 않은것을 알게된 회사는 그의 상사를 그레고르의 집으로 보내 채근하기 시작했다.
해명 다운 해명을 제시하지 못하는 그레고르와 상사간의 오랜 말다툼 후 그레고르의 상사와 가족들은 마침내 방에서 나온 한마리의 흉측한 벌레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레고르의 상사와 여동생은 도망쳤고 어머니는 울부짖었으며 아버지는 혼이 나간사람처럼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레고르의 아버지가 내린 선택은 그레고르를 다시 방으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었던 그레고르 잠자는 이제 자신의 방안에서 여동생이 가져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해나가는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레고르는 온종일 자신의 방안에 있었지만 벽너머로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레고르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사업에 파산하여 모든것을 잃은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저금해둔 약간의 돈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레고르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같이 방안에만 갇혀 생활했던 그레고르는 어느날 방을 나가려고 시도하다가 그의 흉측한 모습을 목격한 어머니를 실신하게 만들었고, 그를 제지하려 아버지가 던진 사과 때문에 상처가 덧나고 말았다. 그레고르의 건강은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그레고르는 죽어가고 있었다.
죽어가던 그레고르는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내가 다시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을까 ? 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가족들은 나를 돌보지 않는지 분노하기도 하였다.
그레고르가 방안에만 있을동안 그리고 죽어갈동안 그레고르의 아버지는 다시 일을 시작하였고 어린 여동생은 직장을 구했으며, 어머니는 뜨개질로 돈을 벌 수 있었다.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그레고르는 평안을 얻었다.
그레고르의 문제로 걱정과 근심속에서 살아가던 그의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마련한 지금의 집을 버리고 새로 이사갈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밝은 미래를 꿈꾼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가 과연 무엇을 그려내고 싶었는지,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회적 소외감,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가장이나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그가 목격한 사회의 부조리와 이율배반과 모순들의 목격담으로 이 책은 이루어져 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인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가족들을 위해서 끊임 없이 일했다.
 
어느날 갑자기 스스로가 벌레로 변해버리는 재앙이 찾아왔음에도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일을 하지 못해서 가족들을 먹여살리지 못할꺼라는 걱정에 가 있었다.
 
그레고르는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는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다니게 해주는것을 간절히도 꿈꿨다. (사실 소설을 잘 읽다보면 그레고르의 여동생에게 바이올린에 재능이 없다는것이 어렴풋이 묘사되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레고르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레고르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아닌 가족들의 안녕을 걱정하면서 죽어갔다.
 
슬프게도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 있어서 짐이었으며 가족들은 애써 그를 무시하고 나중에는 그가 죽기를 바랬으며, 그가 죽은 이유도 가족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하루 왠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레고르가 방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한 이유는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을 나오려는 그레고르를 저지하는 가족들의 행동은 더이상 그레고르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표명이다.
 
피로 이어진 가족을 배척하고 가족이 더이상 가족이 아니게 된 것은 어디 카프카의 소설속에서만 볼 수 있는것 이겠는가.
 
 
또한 ‘변신’을 단순히 가족간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또 하나의 착잡한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카프카가 살던 당시 유럽은 제국주의의 절정과 몰락과 함께 세계 1차대전을 겪는 혼란스러운 시대상이었고 산업화 또한 극에 달할 시기였기에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극히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카프카는 노동자 상해 보험회사에서 보험 직원으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닥친 재앙을 매일 같이 보고 겪었을 것이다.
 
평론가들은 카프카를 실존주의 소설가로 분류하며 그가 ‘변신’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인 불안을 그려냈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책이 소설을 빙자한 목격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가장의 역활을 도맡아 가족을 먹여 살리다가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해 가족의 짐이 되어버린 주인공 그레고르를 보면서 일을 하다 다쳐 더이상 가족을 부양할 수 없으며 오히려 가족의 짐처럼 변해 버린 가장들의 모습이 떠오르는것이 나의 지나친 상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수십년간 OECD 국가중에서 산업재해발생률 최상위권을 기록해왔다.  
 
소설로 씌여진 카프카의 생생한 목격담은 사실 우리도 살면서 조금만 주의를 귀울이면 주변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들이기에 더욱 착잡한 것이었다.
 
사회적 부조리와 내일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사람이 벌레로 변한다는 과장스러운 설정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 ‘변신’은 실존주의 문학으로 분류된다. 
 
말장난이지만 실존주의라는 원래 의미 말고도 문자 그대로의 실존(實存)의 의미를 생각 해본다면 나는 그 분류가 지극히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