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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갈라파고스2016년 3월 21일
강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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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아는 인류의 끈덕진 동반자로 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인류 문명이 19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눈부시게 향상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아 문제는 여전히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그동안 나는 기아는 그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는 한 가지 문제, 원인은 인구 증가와 환경 문제일 뿐으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부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네이버 블로그를 쓰며 얻은 기부콩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모은 돈으로 작게나마 기부를 하곤 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나처럼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수두룩하며, 연예인들은 큰 돈을 기부하곤 하는데 대체 왜 인류의 기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지 의문이 생겨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 누군가에게는 생명

 유엔인구기금에서는 2019년 기준 세계 총인구는 771,500만명이라고 하였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에서는 1984년을 기준으로 지구는 120억명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업의 생산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40년 전이 지난 현재, 전세계 인구가 80억명도 되지 않는데 기아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고 있을까?

 전 세계에서 수확되고 있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으면서 자라고 있다. 또한 그들은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 등의 영양과잉으로 인해 성인병과 같은 질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들은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하기도 하고, 생산자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해주기 위해 법률 등의 조치로 농산물의 생산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렇게 식량을 대량생산하며 식량을 비축하고 그것들은 인위적으로 보조금을 더해 값싼 가격에 수출한다. 이것을 투기’, 혹은 덤핑 정책이라고 한다. 이러한 덤핑 정책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아프리카 각국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지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을 아프리카 농산물의 절반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아프리카 농가에서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하루 15시간 이상씩 악착 같이 일하는데도 이러한 덤핑 정책 때문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 생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들에게 농산물과 식량은 생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넘어서 질병의 원인과 쓰레기로 처분되고 있다.

 외에도 기아 문제는 전쟁과 환경 면화, 삼림파괴 등으로 인해 증가하고 있다. 전쟁의 대표적인 예로는 아프리카 대륙 내전을 들 수 있다. 인종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금이나 석유 같은 토착 자원을 독점하고자 하는 선진국들의 욕망으로 인한 전쟁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1991년 기준 지구 전체 육지의 4분의 1 정도인 36억 헥타르의 땅이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은 경작 가능한 건조지대의 약 70%에 해당한다. 즉 식량을 지배하기는커녕 물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엔환경계획에서는 2011, 세계적으로 육지면적의 3분의 1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사막화의 가장 큰 원인은 지구의 허파, 아마존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아마존은 약 600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199816,833 제곱킬로미터, 즉 벨기에 국토면적의 절반 정도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냉장고 안 부패한 음식들

 책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인구의 18%, 아프리카에서는 35%,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약 14%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고 하였다. 신기한 점은 그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4분의 3은 농촌 지역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굉장히 궁금했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은 바로 식민지 정책이 남긴 상흔때문이다. 20세기 전 유럽 각국이 아프리카 등의 나라에서 강제로 유럽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작물을 경작하도록 하였다. 예시로 프랑스의 직물 공장에서 면화를 재배한 차드, 영국의 초콜릿 공장을 위해서 카카오 농사를 짓는 가나를 들 수 있다. 그들은 1960년대에 독립했지만 그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었다. 특히 프랑스의 땅콩 농사를 대신한 세네갈에 경우 단일경작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아직까지도 집중 재배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식민지 정책에서 벗어나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먹는 음식을 생각해보았다.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대량 생산된 음식들 전부 부정부패한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좌절된 토마스 상카라의 개혁

 이러한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실행했던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다.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는 군인이었는데 동료들과 구데타를 일으킨 뒤 그 나라의 국정을 맡고 있었다. 그가 국정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부패가 심해서 정부가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서는 외국의 원조를 구걸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한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능력이 있어도 사회 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근본적인 개혁을 시작했다.

 그는 가장 먼저 자주 관리 정책으로 국내 30개 행정구를 자치체로 변경하고 주민들이 직접 그 지역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관리도 직접 뽑고, 도로 건설이나 수도 사업 등 공공서비스를 직접 실시하였던 것이다. 개혁은 4년도 지나지 않아 농업 생산량을 크게 늘렸고 국가지출은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부르키나파소는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다민족의 복잡한 사회 구성은 한층 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정치부패에 시달리고 있던 이웃나라 코트디부아르, 가봉, 토고 등에 큰 영향을 미쳤고, 권력자들은 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카라의 동지이자 참모였던 콩파오레는 그를 살해하였고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전에 나라로 돌아갔다. 이렇게 부정부패한 권력자들은 또다시 그들을 굶겼다.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

 토머스 맬서스는 18세기 말 영국국교회 성직자로 인구론이라는 논문 한 편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 내용은 성직자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기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냉정하고 잔인했다. 이 논문에서 맬서스는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약자인 빈민층이 빈곤으로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인구 증가를 고려했을 때 산술적으로 식량은 부족해질 것으로 빈곤층에 대한 자원을 끊어야한다. 식량난은 자연스럽게 인구를 억제하는 자연적인 작용이다라고 주장했다. 즉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인구 감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굶어죽는 것이 당연하고, 우리는 굶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을 도울 필요가 없는 것인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운이 없는 거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잘 생각해보면 강대국과 대기업의 보이지 않는 횡포와 장악에서 우리들도 자유롭지 않다. 다만 우리는 기아들과 다르게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차이일 뿐이다. 현재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횡포로 인해 미세먼지, 지구온난화, 산림벌채 등 사회구조 문제들로 인해 빚어지는 피해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

 

희망은 어디에?

 장 자크 루소는 약자와 강자를 한곳에 모아두고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부추긴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는 자유보다는 규제가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연 법칙이 사회 정의를 보장해줄까? 법 역시 권력자들의 부정부패, 힘에 의하여 쉽게 무너질 것이 분명하다. 법이 정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사회 정의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 p.22

 

 희망은 서서히 변하는 공공의식, 즉 우리의 인식 변화에 있다. 사람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의 구조악을 위해 또다시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 지금,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후원도 좋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그들을 또다시 이 사회로 가두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3세계의 나라들이 독립,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변화는 아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런 작은 인식의 변화가 세계 여론에 영향을 주고,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을 형성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모든 시선은 나에게로 향했다. 내일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나의 모습, 독서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과자를 먹는 나의 모습.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의지를 갖게 해주었다. 선입견은 버리고 지금부터 추악한 자본주의의 진실을 항상 마음에 되새기며 올바른 소비 활동을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