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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습니다 (최지은 기자의 페미니스트로 다시 만난 세계)

괜찮지 않습니다 (최지은 기자의 페미니스트로 다시 만난 세계)

최지은알에이치코리아2017년 9월 22일
윤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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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화장실에 들어가, 칸 안에서 마주한 깨끗하게 사용합시다.”라는 문구를 보고 읊조리길,

 

   “죄송합니다. 깨끗하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대부분 겪었을 것이다. 화장실 벽면에 뚫린 구멍을 보고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것. 이전까지도 이것이 나는 혼자만의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들이 함께 공유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내게 되묻는다면, 용변을 보는 곳, 화장실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말할 것이다. 화장실 칸마다, 뚫려있는 구멍이나 나사의 수만큼 꽂혀있는 휴지들 혹은 붙여진 스티커들. 나의 두려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막혀있는 구멍과 가려진 나사를 보고 안심하며 용변을 본다는 건 참으로 가혹한 감정이다. 우리네는 화장실 내부가 깨끗할수록 거듭 두려움을 느끼는 세상에 산다. ‘restroom’, 그러나 더이상 여성에게 화장실은 ‘rest’의 공간이 아니다.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것은 표지 뒤편에 적힌 살아남은 여성이라는 어구가 내 마음에 시린 잔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살기위해 살거나 혹은 살아져서 산다. 어쩌면 살아남은은 전자에 가까운 생존 이유이다. 그러나 이 책은 후자에 가깝게 생존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살아남지 못한 여성들은 얼떨결에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어서, 우연히 여성으로 태어나서, 어쩌다 묻지마 범죄를 당해서 죽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묻지 마!”하고 운이 나빴다라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 문제인 걸까?

 

   이 책은 일상, 혹은 대중매체에서 은연중에 맞이하게 되는 여성이기에 겪는 경험에 관해 이야기한다(‘혐오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섣불리 운운하기에는 너무도 조심스럽고 무겁기에.). 한편으로는 여성이 살아가면서 평생을 느낄, 사회적 노이로제에 대한 원인을 밝혀주고 있는 것도 같다. 저자는 독자에게 괜찮다고 생각했던 어떤 불편한 것들이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은 그러한 책이다. 거북하다고 느꼈던 것이 실로 그대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어 조심스레 독자를 다독인다. 이 책은 실제 사건 중심으로 쓰였으며, 몰랐던 사건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마음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대중매체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된 장면을 재조명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서 저자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저, 독자에게 생각의 기회를 나누어 줄 뿐이다.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한 문장에 대해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졌다. ‘여자니까 밤길 조심해야 해라는 말, 누군가는 수없이 발화했을 것이고, 여성은 수없이 청취했을 말이다. 이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지만, 그래서 또 한편으로 쓸쓸하고 끝이 없는 의문을 품게 된다. 도대체 ?, ?, ?’. 성별로 인해 어두운 밤길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우리는 이 세상을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까. 저자가 그랬듯 지켜주겠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누군가가 지켜주는 세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혼자서도’ 잘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더는 침묵하지 않는 것이며, 그저 그뿐이다.  

 

   책 소개에서 저자는 끝의 시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책을 읽은 뒤, 나도 이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괜찮아요.”하고 멋쩍게 웃어넘기던 지난날들, 이러한 세상이 이제는 끝을 맺기를. 그리고 솔직하고도 의연하게 괜찮지 않아요.”라고 자유롭게 말하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외친다. 괜찮다고 착각했던 모든 이들에게, 당신은 사실 괜찮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