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여기 온 순간부터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 어느 한 가난한 달동네에 막 이사를 온 영희네 가족의 목표였다. 갈매기들이 하염없이 날아다니고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고추를 말린다. 아이들이 콧물을 흘리며 해맑게 얼음 땡 놀이를 한다.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들이 모여 있는 이 곳. 바로 ‘괭이부리말 마을’이다.
괭이부리말 마을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달동네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대략 일제강점기 때부터라고 한다. 일제가 여러 공장들을 설립하면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모이다 점점 그 수가 증가하여 결국엔 하나의 빈민촌을 이루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또 앞서 말한 영희네 가족처럼 이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고자 했다. 그렇다고 이곳에 치열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경쟁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모두 여건과 상황이 좋지 않아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공통점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때로는 협력하게 만들며, 함께 울고 웃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주목해서 본 점들 중 하나는 바로 ‘등장인물들의 성장’이였다. 이들은 모두 괭이부리말 마을에서 여러 고난과 사건 및 갈등을 겪으면서 한층 더 나아지고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숙자와 숙희는 중간에 엄마가 오랫동안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종종 티격태격 하기도 하지만, 숙자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서로서로 의지한다.
동수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그로 인해 하염없이 본드에 의지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후에 영호와 영희를 만나 마음을 열고 다가가 자신의 진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된다.
영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잠시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잡고 일자리를 얻어 열심히 일을 한다. 또한, 우연치 않은 계기로 동수네, 숙자네와 함께 살면서 마음속의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한다.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인 영희는 처음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잘 챙겨주는 한편 이곳을 어쩔 수 없이 버틴다는 심정을 갖고 있었지만, 이내 영호의 편지에 힘입어 마음을 열고 아이들에게 더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마을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 하나하나를 보면서 책 페이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혹은 아빠의 가출, 가족의 죽음, 형제자매 및 친구 사이의 다툼, 경제적 문제와 같이 이 책에선 다양한 사건이 등장한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갈등 및 사건을 통해, 우리와 전혀 먼 얘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 다 언제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흔히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일들이다. 어쩌면 이러한 고난과 갈등은 잠시 동안 우리를 아프게 하고 마음의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우리의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고 다음번엔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앞서 본 것과 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우리는 종종 나를 챙기고, 또 사는 데 급급하여 주변의 이웃들을 미처 보지 못하고 외면한다. 한번 씩은 나대신, 내 주변 사람들을 한번 바라보고, 또 안부나 응원의 한마디를 던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공동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