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정석 교수의 도시설계 이야기)
내가 도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 때는 작년부터이다. 학교 근처 자취방을 알아보던 중, 성북구 장수마을에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이 마을이 참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쭉 자란 나에게 ‘서울’은 번쩍번쩍하고 웅장한 건물이 가득한 우리나라의 수도였다. 간혹 주말에 부모님 혹은 친구들과 서울의 관광지를 구경하곤 했는데 특유의 시끌벅적함과 복작함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하면서도 매혹하였다.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며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마침내 나는 상경하였다. 내가 살게 된 장수마을이라는 곳은 내가 생각했던 서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올망졸망한 주택들이 제각기 모여 조화를 이루어 성곽을 따라 자연과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달라 매우 실망했다. 하지만 장수마을의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많아졌다. 태어나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왔는데 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웃의 정이라던가 성곽의 아름다움, 골목길의 재미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도시의 참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지금까지 나는 도시에 관심을 끊이지 않고 갖고 있다.
이번 학기 중 내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과목은 도시계획론이다. 이 과목의 과제로 인하여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의문이 조금 들었다. 도대체 튀는 도시는 뭐고 참한 도시는 무엇인가 말이다. 튀는 도시는 특색이 있는 도시라고 지레 짐작이라도 했지만 도무치 참한 도시는 추측이 되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참한 도시를 튀는 도시의 반대라고 생각하여 특색이 없는 도시라고 가정하였다. 그렇다고 하면, 특색이 있는 도시가 특색 없는 도시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나라의 도시가 저마다의 랜드 마크를 만들려고 매우 노력하는 추세인데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이렇게 읽기 전에는 정말 수많은 의심을 품으며 책장을 열었다.
저자인 정석 교수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근무를 하면서 서울의 많은 도시들을 계획하는 사업에 참여하신 분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사례를 들어 필자의 의도를 풀어나가는 형태이다. 예부터 우리나라의 조상들은 타국과 달리 자연을 굉장히 중시해 도시를 계획할 때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에 맞춰 어울리는 모습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근데 지금의 도시는 어떠한가. 서울만 보자면, 극히 소수의 지역 빼고는 정말 많은 지역들이 변화무쌍하다. 필자는 이러한 도시의 변화를 대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했는데 이에 발맞춰 정부는 우리의 오랜 문화를 담고 있던 많은 주거지들을 겉보기에 달콤한 정책들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더욱 편리한 환경에서 살게 해준다는 감언이설로 정부는 집값을 올려 가난한 사람을 근교로 내쫓고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하여 계층 간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 필자가 내세우는 가장 핵심인 문제는 도시를 변화시키면서 수많은 자연경관을 해쳤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한강이라는 매우 큰 강과 수많은 산들로 둘러 쌓여있다. 많은 시공업체들은 이러한 자연경관을 막는 ‘높고 뚱뚱한 건물’인 아파트를 건설하여 시민들에게 ‘전망 좋은 집’을 광고하며 분양하였다. 물론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멀리 있는 서울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겠다만, 아파트 밖의 시민들이 자연 경관을 보려고 할 때는 이 건물들이 막고 있어 볼 수 없겠다는 것이 함정이다. 참 이기적인 생각으로 서울의 많은 아름다운 모습들을 해쳤다. 해외에 있는 고풍의 건물들은 극찬하면서 어찌 우리나라의 것들은 다 무너뜨리고 편리함을 쫓아 많은 것들을 버렸는지 매우 안타까운 바이다.
지나간 날들을 후회해봤자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반성하고 지난날들의 문제점을 발판삼아 개선해나가면 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헌신하고 있는데 내가 이 책의 사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2009년 동소문동 재개발 반대 운동 승소 사건’이다. 이 운동을 앞장서 승리로 이끈 주인공은 놀랍게도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 ‘피터 바살러뮤’ 씨이다. 사람들은 그를 ‘한국인보다 한옥을 더 사랑하는 외국인‘이란 표현만큼 소개하곤 하는데 이는 마땅한 근거가 있는 표현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한국에 와 한옥에 매료되어 약 40여 년을 한옥에 살고 있다. 피터가 살고 있는 동소문동 한옥 주거지 일대는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되어 계속 그 곳에서 살기를 원하는 피터와 이웃 주민들이 재개발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후에 2008년,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내었고 2009년 마침내 승소하게 된 사건이다. 피터 씨는 이 사건 이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20년 이상 된 집은 무조건 노후건축물로 간주하고 재개발 대상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집이 무슨 냉장고입니까?”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나 역시도 장수마을에 사는 입장으로서 수없이 재개발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본 적이 있다. 물론 서울시는 현재 장수마을을 재개발구역에서 해제한 상태이긴 하지만, 이 마을에 사는 입장으로서 조금 불편할 때가 있긴 하다. 집까지 올라가는 언덕이 너무 높고 골목길이 좁아 잘 살다가도 편리함을 위해 이 지역이 재개발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도시는 우리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전자제품 따위가 아니다. 나는 정말 어리석은 생각을 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조상들이 지혜롭게 잘 계획하여 만들어주신 이 도시를 앞으로도 자연과 어떻게 잘 더불어 공존해 나갈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도시에 관련하여 정말 많은 책임의식을 느끼기도 했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관하여 많이 생각해보았다. 앞서 책의 제목에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으리으리한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한 도시를 계획하고자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깊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