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신 (아로파 세계문학09) - 상상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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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아로파 세계문학09)

변신 (아로파 세계문학09)

프란츠 카프카아로파2016년 6월 10일
윤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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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은 유명하기도 하고 언제나 초등학교 권장도서 목록에 실려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읽어봤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초등학생 때 교내 도서관 추천 코너에 꽂혀있던 것을 읽어봤었다. 그 땐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에 마냥 충격을 받았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 읽은 책과는 다른 책이라고 느낄 정도로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래서 같은 책도 여러 번 읽어보라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레고르의 가족 모두가 가장이었던 그레고르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어 더 이상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 하게 되더라도 그레고르의 가족은 무너지는 일 없이 상황에 적응해나간다. 봉급을 받아오는 가장이 필요한 건 맞지만 중요한 것은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봉급 그 자체다. 그레고르는 돈을 벌어오는 것 이외엔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돈은 다른 사람도 벌어올 수 있고 그레고르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그레고르가 벌레로서 더 편하게 기어다닐 수 있도록 그레고르의 방의 가구들을 모조리 빼버리는 부분이었다. 그레고르의 외관이 벌레로 바뀌어버렸다 해도 그것은 단순한 벌레가 아니라 그레고르라는 사람이다. 점점 그레고르의 벌레 모습에 익숙해져 갈텐데 그레고르의 이전에 사람이었던 흔적들을 지워버리면 그레고르는 정말 큰 벌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니까 그레고르를 대하는 태도도 점점 차가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 앞에 있는 게 커다랗고 말도 못 하는 벌레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망도 사라져버린다..
그레고르에 대한 가족의 이해는 차단된 상황에서 가족에 대한 그레고르의 이해의 여지는 남아있다는 점이 잔인했다. 차라리 그레고르도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도록 완전히 벌레로 변할 수 있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부질없을 것이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같은 고민이나 왜 벌레가 되어버린 걸까,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사람이 태어날 때 목적을 갖고 태어나지 않듯이 벌레로 변해버린 것도 이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벌레로 변해버려 부딪혀야만 했던 매순간에 대한 그레고르의 고군분투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단절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컸다. 그레고르는 장애물로 치부되고, 그레고르가 죽어도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레고르의 죽음을 새 출발 삼아 이제는 외동딸이 되어버린 그레고르의 여동생을 통해 미래를 꿈꾸며 끝나는 결말이 찝찝했다. 찝찝한 만큼 몰입이 굉장히 잘 되어서 읽고 난 후 정말 좋았던 책이었다. 또 시간이 지난 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