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소설집)
박은수
독특한 발상 속 깊은 이야기
<브로콜리 펀치>는 일단 제목부터 독특하고, 단편 소설이라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보였다. 물론 예상과 다르게 이 책의 내용이 어렵고 길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의 8가지 단편은 아버지의 화장한 뼈로 만든 화분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거나(<빨간 열매>), 사람의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하거나(<브로콜리 펀치>), 바다 위에서 죽기 직전에 외계인들에게 구해지고(<둥둥>) 이구아나가 내게 말을 거는 등(<나와 이구아나>) 독특하면서 재미있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고, 중간에 유머가 섞인 말도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고, 책장도 잘 넘어가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단편을 읽으면서, 마냥 재미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약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브로콜리 펀치>에서 손이 브로콜리로 변한 ‘원준’이 ‘나’에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이야기하는 장면, <이구아나와 나>에서 ‘나’가 수영 강사를 그만둔다는 동료의 말을 듣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기 시작하는 장면 등이 이런 느낌을 주었다. <브로콜리 펀치>에서는 ‘마음의 짐’이 커지면 신체 일부가 강낭콩, 고추, 브로콜리 등의 채소가 된다는 발상을 통해, 어느 순간 사람을 때리는 것이 힘들어진 복싱 선수 ‘원준’이 가지고 있던 만들어진 ‘미움’과 마음고생을 표현하였다. 이 장면에서 ‘원준’이 가진 괴로움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으면서도, 이상하고 허무맹랑한 소재로 개인의 마음 속 응어리와 같은 심도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구아나와 나>의 해당 장면에서, 수영 강사로서 일에 만족하며 살아온 ‘나'(화자)가 “수영, 솔직히 난 미래 없다고 생각해. (중략) 살길 찾아야지.”라는 동료의 말을 듣고 자신이 미래에 대한 위기 의식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빠지게 된다. 나도 가끔 내가 이 전공을 선택한 것이 맞는지,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어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 지와 같은 불안이 있기에, 이 장면이 더욱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이 단편은 나와 같은 불안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고,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단편도 있었다. <왜가리 클럽>에서 ‘양미'(화자)는 세 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2주에 한 번 주말마다 도림천에서 함께 왜가리를 바라보는 일명 ‘왜가리 클럽’에 가입하고, 가입 후 활동 첫 날 저녁 왜가리의 모습에서 느낀 것, 배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왜가리는 나도 집 근처 하천을 걸을 때 자주 볼 수 있는 은근히 흔한 물새지만, 그렇게 쉽게 볼 수 있으면서도 왜가리를 보면서 ‘왜가리가 있다.’ 이상의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하천의 왜가리의 모습에서 삶과 실패에 대한 태도나 교훈을 배운 클럽 회원들을 보면서, 이유리 작가의 발상의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글의 소재는 일상의 사소한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데, 해당 단편은 이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브로콜리 펀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벌어지는 판타지 소설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과 세상,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겨 있다. 다채로운 이상한 소재와 유머 감각이 있는 문장들로 재미를, 그 속의 주제로 깊이를 모두 챙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