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에 빠지기 - 상상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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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기

사랑에 빠지기

하비에르 마리아스문학과지성사2019년 10월 31일
한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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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히 독특한 글의 전개이다. 독백이 굉장히 많고 대화 글이 한 두장을 빼곡히 채운다. 보통 화자의 생각을 ‘~다.’의 문체를 사용한다면, 이 책에서만큼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일까?그럴 수 없어. 그런 일은 불가능한 일이야.>’ 라는 식의 생각을 나열한다. 한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길고 자세하게 나열되어 있는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의 구성이 전에는 읽어보지 못한 구성이라 제일 흥미 있던 점이다. 또한 주인공의 생각을 자세하게 묘사한 걸 읽으면서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검은 속내까지 읽는 느낌이었다. 들어야 하지 않아야 할 생각들, 인간의 구차함을 보여주는 부스러기 같은 생각들이 정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읽다 보면 내용 전개보단 주인공 독백이 길어지는 부분이 많이 있어 중간 중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읽다 보면 주인공의 심정을 들여다보면서 실제 그 현장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주인공의 심정을 온전히 다 이해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나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행동들과 말들이 눈에 보여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주인공도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생각도 추측해서 그 생각들을 나열했다. 보통 책이 전지적 작가 시점이면 그 사람의 생각을 나열하는데, 이 책에선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한 생각을 나열한다. 처음 읽어보는 구성이라 신선했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다른 인물 또한 개성이 상당히 강했다. 이 책에서는 그 인물의 대화를 정말 길게 많이 나열해 놓는데, 이 인물의 대화 방식도 상당히 특이하다. 한 주제에서 말하지 않고 온갖 생각나는 것들을 마치 마인드맵처럼 줄줄이 얘기하다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굉장히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집중하지 않고 중간에 흐름을 놓치면 다른 페이지를 읽었나 싶을 정도로 다른 얘기를 많이 한다. 흐름을 따라잡기가 좀 힘들었다. 주인공은 이 인물의 대화를 좋아했다고 했는데 나로서는 공감이 안 가서 넘어간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인간은 생각을 이렇게 까지 할 수 있구나를 느끼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내용 자체는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살인 사건을 파헤쳐 가는 내용인데 주인공이 직접 알아가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이 꽤 특이하고 재밌었다. 은근한 반전이 있어 뒷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글이 어렵지 않아서 술술 읽히고 시간만 있다면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은 모두 정당화될까? 책에서는 불처벌(처벌 받지 않은 범죄 행위)과 사랑을 연관 지어 말하고 있다. 소재 자체는 흔하지 않은 소재였다. 사랑을 말하는 이 책의 처음은 죽음이다. 죽음으로 시작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내용이 나오는데,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행위를 정당화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사랑으로 시작한 행동은 모두 옳은 행동일까? 그렇지만 나는 이 인물들이 말하는 사랑의 형태가 변해 있다고 판단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시작된 부탁,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은밀히 진행했다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은 온전히 희생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이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감정이 사랑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의 아픔을 평생을 모르는 것이 과연 상대방을 원한 것일까? 행복을 같이 나누는 것도 사랑이지만, 아픔을 온전히 공유하고 함께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랑이다. 설령 치유할 수 없다고 해도, 곁에 머무르며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겔은 회피했다. 루이사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건 사실 온전히 미겔의 이기심이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더라도 함께 하고 싶어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 또한 사랑에 대한 희생이다. 그렇지만 미겔은 그걸 견딜 자신이 없었고 결국 친구한테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이 참 안타까웠다. 참 이기적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잔인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결말도 결국 마리아는 디아스 바렐라가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화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전한 이별을 한다. 이것도 진정한 사랑의 형태라고 느껴졌다. 사랑하지만 자신의 곁에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상대방을 위한 온전한 마음, 전적인 희생이 사랑이다. 온전한 사랑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사랑은 줄곧 질투나 미움으로 변질되기가 쉽다.오로지 본인의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이므로 상대방을 생각하기보다는 이기심에서 나온 마음이다. 사람은 줄곧 늘 본인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사랑의 형태가 변질된다. 그래서 그 순수하고 전적인 사랑을 지켜내는 것이 힘든 것 같다.  희생을 하는 것 자체가 이타적인 것이기에 본인을 우선시하는 사람의 성향 상 사실 사랑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변질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참 알 수 없는 존재 같다.
 그리워하던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불행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을 사람을 약하게 한다 등 생각해볼 만한 철학적인 내용들이 꽤 있다. 독백이 워낙 길어서 흐름이 좀 끊기는 기분이 들어서 살짝 아쉽고, 성적인 묘사가 꽤 있어서 어린 독자가 읽기엔 적합하지는 않지만 글 구성 자체가 특이해서 사람의 생각을 파헤쳐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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