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장편소설)
처음 나는 김영하 작가님을 자세히 몰랐다. tvn에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단편집인 <오직 두 사람>의 줄거리를 보고 책을 구매해 처음으로 김영하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오직 두 사람>을 읽고 가독성이 좋아서 책을 빠르게 읽을 수 있었지만 깔끔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을 읽기가 꺼려졌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이 나왔지만 원작인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는 성격상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선 작품을 영화로 먼저 접하고 싶지 않았다. 앞선 책에서 느낀 부담감으로 인해 책을 읽기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목표했던 책을 읽은 성취감이 있기에 다행이라 생각된다.
책이 두껍지 않고 페이지당 글자수도 널널하게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그 전 책과 마찬가지로 책을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정말 ‘쉽게’ 읽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쉽게’ 읽히는 것이 문제였던 건지 마지막에 나에게 안겨준 큰 반전은 매우 강렬했다. 나름 추리를 해가며 읽었던 앞부분의 내용을 마지막의 반전이 비웃기라도 하듯이 뒤엎어 버렸다. 내용의 세계관이 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었다. 치매를 가진 노인이 이렇게 정교한 세계관을 구성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치매 걸린 노인의 생각으로는 완전하고 빈틈없는 관계와 정교한 세계관을 새롭게 구성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치매 노인이 타인의 표정과 감정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노인의 허구 속 세계관으로 만든 것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처음 줄거리에 얽매여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마지막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틀에 맞춰 놓고 추리를 한 까닭 때문이었다. 소설 끝의 해설과 김영하 작가의 말을 보고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내 관찰력이 앝음을 실감하고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연쇄살인범 김병수와 그의 딸 김은희, 그리고 그의 딸을 노리는 새로운 연쇄살인범 박주태.
김병수는 일흔 살의 노인으로 30년 동안 연쇄살인을 하다 은희의 엄마를 마지막 희생양으로 25년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묵직하고 깊이 있는 남성적인 문체로 소설이 전개되어 김병수 노인에 몰입된 채 소설을 읽었다. 노인은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특징이 살인을 하고 나서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해 지속적인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 듯싶다. 마지막 살인 후 25년 동안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채 피해자의 딸을 입양해 키운 점도 특이했다. 이 점은 영화<공범>에서 김갑수가 유괴한 손예진을 키운 점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피해자가 부탁한 말을 지키기 위해 키워온 줄 알았던 딸인 김은희는 존재하지 않았고 사실 치매 노인을 돌봐주는 사회복지사였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박주태를 연쇄살인범이라 직감한 김병수는 그와 묘한 긴장감이 흐르며 대결구도를 형성했지만 박주태는 사실 형사였다. 현실에서 없는 안형사는 박주태와 오버랩되어 김병수에게 더욱 혼란을 안겨주었다. 김병수의 죄책감이 가상의 인물인 안형사를 통해 드러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고 조각 조각난 기억들을 맞추려 노력한 김병수의 노력은 자신과의 대결을 위한 것으로 되었다. 기억들이 균열이 생겨 매치가 되지 않아 혼돈의 상태인 김병수는 누구를 위하여 치열하게 과거, 현재, 미래의 계획을 구상했을까? 승자도 패자도 없이 암전됐는데 불을 켜서 초를 찾으라고 하는 것처럼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아닌가 싶다. 천재적인 연쇄살인마로 생을 마감할 줄 알았지만 자신이 상정한 세계로 인해 무너지는 것은 인생은 계획대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