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장편소설)
9살의 어린 나이에 한강이 겪었던 광주에서의 잔상이, 인간의 폭력과 참혹함에서 결국은 존엄으로 나아가려는, 유려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어진다. 소년이 뚜벅뚜벅 걸어서 영혼이 되어 지나간 이야기를 지금 여기의 이야기처럼 그려낸다.
5월의 광주의 시공간에서 펼쳐진 참혹한 학살과 폭력의 잔인성을 마주한 그녀의 문장은 세심하고 소상하며, 독특하고 낯설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필사하고픈 유혹의 아우성을 만들어낸다. 첫 장에서 인칭은 내가 당신을 지칭하는 너이다. 나는 혹은 독자는 ‘너의 행동과 시선을 따라가면서 영화의 한 신 한 신의 스크린을 들여다보듯 생동감에 젖게된다.
한강의 서술방식은 독특하다 그녀의 배경묘사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논리성을 형성한다. 가령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은행나무를 지켜본다.’에서 너의 행동을 둘러싼 배경은 가지사이의 바람의 형상으로 표현되고, ‘공기틈에 숨어져 있던 빗방울들이 튕겨져 나온다’고서술한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껴진다. 그것이 나뭇가지의 흔들림에서 인지하듯이 너라는 존재가 작고 마른 소년이 5,18광주의 아수라장에서 존재함이 잘 보여지지 않지만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처럼 작고 여린 소년이 그린 형상과 울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이다. 그 중 하나의 색깔인 폭력과 잔인함을 어떤 치유의 과정을 거쳐 인간의 존엄성으로 껴안을 수 있을까라는 필자의 숙고와 힘든 고민의 흔적을 나는 동호엄마의 투박한 독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작은 형이 물러준 교복이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겨우 몸에 맞았던 작고 여린 체구의 동호였고, 그런 동호가 너무 예뻐 한없이 뒷모습을 지켜봤던 동호 엄마였다. 동호엄마의 진솔한 사투리의 울림은 컸다. 한 밤중 시계소리 마저 잠든 고요한 시간에 작은 미세한 울림이 쿵하며 심장에 된소리를 자아냈다.
정대를 찾아 해매는 동호는 선주누나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라고 한강은 서술하고 있다. 일지도 모른다. 라는 추측성 화법에 상당히 감정이입이 되어 나는 정대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년이 온다’ 속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치욕이 되어 일생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함에 괴로워하며 수 십 년이 흐른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 이지만 현재형의 제목을 붙였다.
과거의 상처를 딪고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소설은 역사서로써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려 하면 할수록 덧나는 인생을 우리세대가 이해한다는 것은 자만이며 과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아린 마음을 안고 느끼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