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선병선
공산주의. 라는 단어가 제시된다면 인식은 좋다기보다는 나쁠것 이다.
내가 유년기 였을때 공산주의는 근엄한 지도자가 붉은 배경을 바탕으로 열맞춰 행진하는 군인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는 건 줄 알았다.
아니면 이따끔 핵무기로 위협해서 민방위 훈련을 하게 할때나 떠오르다 사라지는 그런 단어 였다.
그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내가 유토피아라는 책을 읽으면서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던 것 이다.
사실 현대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유토피아의 문화는 이해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나는 읽으면서 납득 해 버린 사람이지만.
배금주의가 천시 되는 풍토는 미뤄 두더라도 결혼전에 알몸으로 서로를 확인 한다거나 불치병 환자에게 가망이 없음을 통보하고 생명박탈을 선택 해 주는 것을 보면 현대 문명보다도 더 진보적인 사회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린아이나 노예제도 같이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저자가 16세기의 사람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정말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일 것 인가.
현대 사회에서 유토피아의 이론을 대입 했을때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를 생각 하면 나의 의견은 그렇다. 이다.
먼저 유토피아는 엄청난 전제 조건이 있다.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는것. 그리고 광물자원과 농작물이 풍부한 것.
현대 사회를 지배 하고 있는 것이 배금주의이며 자본주의이다. 유토피아의 관점에서 본 다면 현대 사회는 디스토피아의 길로 정확히 가고 있는 셈이다.
토마스 모어가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성장 했을 시의 문제점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도 이정도로 발전 할 지는 몰랐을 것이다.
또한 현재 1차 산업의 미래는 두 가지 라고 생각한다. 망하거나 흥하거나. 1차 산업이 주로 이루어 지고 있는 유토피아의 미래는 암욿할 것이다.
외국인들의 교류를 차단하는 쇄국정책 속에서 쇠퇴하거나.
그래도 토마스 모어가 경고한 문제점들이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유토피아의 요소는 포용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유토피아는 종교적 자유를 미트라스라는 단어로 모두 통합하여 종교적 분쟁을 없앴다.
외국인들 역시 유토피아에서는 성실한 노동이 전제된다면 부유하진 않아도 여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민을 온다는 점은 놀랍게도 정확하다.
노동을 해도 가난한 사회. 돈이 곧 실력으로 간주되는 현대 사회에서 유토피아는 우리에게 조용히 간언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곳이 유토피아는 고사하고 디스토피아만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