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장편소설)
인간이라는 종의 기저에는 무엇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는 여러 설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어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중 작가가 말한 ‘종의 기원’은 ‘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내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악으로부터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종’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악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독자가 그 악을 알아채고 파악하여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유정 작가는 우리의 본성 안에 숨은 악, 즉, ‘어두운 숲’을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인 유진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나서야 자신의 어두운 숲을 깨닫습니다. 26년 동안 받아온 교육과 길러온 사회성으로 억눌러놓았던 자신의 본성을 자신의 삶이 위협당하고 나서 깨닫게 됩니다. 그는 약을 먹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발작을 단지 ‘개병’이라 취급하며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자신의 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요. 유진은 자신의 어두운 숲을 보지 못한 대가로 그 악에 잡아먹히고 맙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신의 기원을 알아챈 유진은 이를 자신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이용합니다. 결국 연쇄살인범인 유진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악인인 유진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지만 잡히지 않고 새롭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대다수의 소설은 권선징악의 형식을 보이고 특히나 유진과 같은 연쇄살인을 벌인 살인범의 경우에는 엄벌을 받거나 자신의 죄에 대해 뉘우치고 끝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유진은 끝내 잡히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습니다. 이 의구심은 작가가 의도한 점이라 생각됩니다. 죄를 저지른 유진이 자신의 ‘악’을 알아채고 이를 다스릴 줄 앎으로써 자신을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깨달았음을 의미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어두운 숲’에 대해 알아채어 자신의 무의식을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기를 작가는 바랍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26년간 키워준 어머니를 죽인 유진이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더구나 유진의 어머니가 살해당한 모습의 묘사는 인간의 무의식의 잔인함에 기함을 토하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상상 속의 ‘유진’이 ‘나’로 바뀌어 그려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인지했을 때 ‘나무’를 보게 되었고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을 때는 비로소 ‘어두운 숲’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종의 기저에 대해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며,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 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논리와 함께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유진’에 비쳐 보이지는 않는지 자신의 심연을 살펴보고 무의식을 의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