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합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해.’
내가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게임에서 나온 위 대사를 듣고 난 후부터였다. 게임 속 좀비 바이러스로 황폐해진 사회에서 사람과 좀비를 끊임없이 죽이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의 마지막 대화인데, 나는 게임을 하는 내내 살기 위해 죽이는 삶을 살면서까지 살아가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살아갈 이유가 없다면 죽어도 좋지 않은가? 삶의 이유를 왜 찾아야 하지? 나는 그 이유를 찾거나, 찾지 않을 이유를 찾기 위해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가야 했던 유대인들의 삶을 살펴보기로 했다. ‘쥐’는 이러한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 분명하다.
조금은 섬뜩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그림체로 그려진 이 책은, 유대인을 쥐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나치는 쥐를 잡는 고양이로 나온다. 쥐. 먹이사슬 하위 층에 있는 동물, 보기만 해도 혐오스럽고 죽이는 것이 급한 동물.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쥐만도 못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홀로코스트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그에 대한 반증은 수두룩하다. 그 당시 수용소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은 어떤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을까? 화목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기도, 우울증에 빠져 삶의 고비를 넘나들기도,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목표나 이유를 찾기도 전에 나치에 의해서 무차별적으로 죽어나간다. 왜 톱밥 섞인 빵을 먹으며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지도,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면 죽임 당하는지도, 명령에 불복종하면 공개처형 당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대로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의 유일한 삶의 목표는 살아 돌아가는 것이 되었다.
죽느니만 못한 삶. 유대인들은 수용소에서 딱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 아직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티푸스에 걸려도 일어나 일을 한다. 힘들게 하루 더 살 바에야 편하게 하루 일찍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살려고 발버둥 친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 돌아가겠다는 신념 하나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버틴다. 누군가가 죽음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처한다면, 앞뒤 불문하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은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이 된다. 본능적으로 사람을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왜 살고 싶을까? 혹시 아무도 알 수 없는 죽은 그다음이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나에게 소중한 존재를 계속 보고 싶기 때문에? 책의 주인공은 또 다른 수용소에 갇힌 부인을 만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존한다. 이 책은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끔찍한 광경을 덤덤하게 풀어내며 그들이 살아야 하는 저마다의 이유,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진상, 살아남은 후의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나아가 읽는 이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난 혼자서 빈 집에 들어갔어. 우린 둘 다 우유를 정말 실컷 마시고는 밖을 둘러봤지. 쉬베크는 농촌 출신이었거든. 그는 날마다 닭 한 마리씩을 잡고 젖소에게서 우유도 짜냈지. “자! 이제 다시 사람 같아 보이는구나!” “나도 그래. 단지 끅!- 구역질이 나는 것만 빼놓고 말이야.” 우리 위가 우유와 닭을 먹고 충격을 받은 거였어. 우린 심한 설사를 했지.’ -p.111
늘 빵 한 조각과 수프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유대인의 위는 우유와 닭을 버티지 못할 만큼 상해 있었다. 나는 아플 때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배고플 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직 살아있음에 다행임을 느꼈다. 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불행하니 내 불행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것이 아니다. 불행한 와중이라도 그저 의지가 닿는 한, 억압받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에 안도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삶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이유를 찾을 수도, 더욱 절망감에 빠질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삶이라는 것을 주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도 자유롭게 살지 못했던 유대인들. 그들의 역사를 누군가는 기억해야 할 것이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그 행보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 모습이 지닌 주체성,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목적이 사는 것이 된 경위를 생각해 보라. 삶의 모든 것에 있어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