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식의 역습 (오만한 지식 사용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 - 상상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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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역습 (오만한 지식 사용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

지식의 역습 (오만한 지식 사용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

웬델 베리청림출판2011년 7월 13일
김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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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웬델 베리(Wendell Berry)이다. 미국의 시골 중의 시골이라 하는 켄터키에서 농사를 지으면서(자급자족한다고 한다) 글을 쓴다.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 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전기산업비판, 컴퓨터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에 대한 비판 글을 접하면서 웬델 베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웬델 베리는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고, 1956년산 타자기와 연필로 글을 쓴다고 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고, 타자기와 연필로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취향문제가 아니라 대규모 전력 산업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즉 그는 조금의 편리함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거나, 에너지 문제에 있어 대형 기업이나 산업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 인구 1000만이라는 서울(지금은 950만 9,458명)에 살고, 삼성 노트북으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하는 나로서는 좀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 같다. 특히 온라인 수업덕분에 인터넷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웬델 베리는 이런 산업체제에 의존하는 것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특히나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도시중심적인, 전력과 석유에 의존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을 다룬다. 그래서 웬델 베리에 대해 알아보고 읽어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 <지식의 역습 The Way of Ignorance>은 총 4부(1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2부 더 나은 경제가 필요하다, 3부 생태적이면서도 경제적인, 4부 희망을 주는 정치)로 구성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인간의 무지를 궁극적으로 치유할 수는 없다.’,’어떤 문제들은 영영 해결되지 않으며 어떤 질문들은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편견과 결함과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인간이 습득한 지식의 양은 언제나 무지의 양과 똑같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이 책의 글들에 대한 전제가 될 것이라 한다. 기술적 특이점, 인공지능, 사이보그화 등등 기술혁신으로 인간이 무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의 위치에 이를 수 있다는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웬델 베리는 무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속성이라 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무지의 길은 “이웃 사이의 사랑과 친절, 염려와 관심, 적당한 규모, 검약, 올바른 노동과 생활”이라 한다. 즉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컨대 무지의 길이란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와 효능을 제대로 알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며,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적절한 규모로 일하는 것이다.”
  1부 1장에서는 괜찮은 개인주의와 위험한 개인주의를 나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의 선조라 불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개인주의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공공의 이익과 일치함으로 꽤 괜찮다고 한다. 위험한 개인주의란 신, 정부, 공동체, 이웃, 후손도 아랑곳않고 하고싶은데로 하는, 대표적으로 자신의 재산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발상이 위험하다고 한다. 재산권을 절대적 권리로 인정하면, 소유주가 일시적 이익을 위해 영구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개인주의는 위험하다고 한다. 특히 대기업이 ‘법인’이라는 것으로 인간의 지위를 획득할 경우, 대기업은 이런 과격한 개인주의자가 되어 자기 자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사람들의 권리는 이런 극소수 법인들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라”라는 교리를 따르기보다는 돌봄, 믿음, 친절, 평화의 언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 2장의 <무지의 길을 가라>에서는 인류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나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등의 생각은 오만한 무지라고 한다. 최근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을 말하는 듯 이런 문구가 있다.”오만한 무지에 의해 응용된 현대 과학(화학, 핵물리학, 분자생물학 등)은 여섯 살짜리 아이가 모는 자동차, 또는 원숭이의 손에 쥐어진 장착된 권총과 닮은꼴이다. 오만한 무지는 세계화 경제를 장려하면서도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세균과 질병의 국제적 확산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오만한 무지는 평화에 대해서는 고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전쟁을 일으킨다.-p.20″ 이 책이 2007년에 나온 것을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후 2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엘리엇이 말한 ‘무지의 길’을 따라간다고 한다. 엘리엇의 <이스트 코커> 중 일부를 인용한다. “지식은 형식을 만들고 왜곡한다./형식은 매 순간 새롭기 때문이다./그리고 매 순간은 우리의 존재 전체에 대한/새롭고 충격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 모든 창조물은 새롭고 독자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때문에 새로움이 왜곡된다고 말한다. 
  1부 3장과 4장에서는 삶과 노동의 목표, 풍성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오래 사는 것만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오래사는 것보다 ‘완전한 삶’을 이상으로 보는 듯하다. 삶과 노동의 목표는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것은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해야 하고, 개개인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옛날부터 인류는 자기 소명을 인식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따르며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는 삶을 모범이나 이상으로 여겼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결혼가고 가정을 이루며 가족을 부양하는 삶, 이웃과 넉넉하게 어우러지는 삶, 자기 지역의 자연에서 얻은 것들을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삶, 자기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늙어가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로 남는 삶,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좋은, 또는 신성한 죽음을 맞이하는 삶”이라고 한다. 
  2부 ‘더 나은 경제가 필요하다’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자급자족 경제가 산업화때문에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작은 하천과 장소를 무시하면서 대륙과 해양을 깨끗이 유지할 수는 없고, 이런 작은 파괴가 쌓이면 심각한 파괴 양상이 드러난다고 한다. 또한 더 나은 경제, 즉 지역사회를 살리는 경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말을 이용한 삼림업 등, 지역사회에서 벌고 쓰면 더 좋은 경제 효과가 난다. 
  3부 ‘생태적이면서도 경제적인’에서는 트랙터가 몰아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우리는 자연을 이길 수 없고,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건강, 경제를 파괴함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러면 도시 주변부,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로 지금의 정보화 사회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흐르는 정보는 추상적이거나 보편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중심에서 개발한 것들이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특수성과 관련 없이 획일적으로 쓰인다. 지역 문제에 대해서 최적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이 가진 지역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런 지식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으며, 그 장소를 벗어나면 무지와 별반 다르지 않기’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인간의 소통 수단에 한계가 있음을 잊지 말자고 한다. 가령 농사일같은 경우는 언어, 정보는 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즉 정보가 아닌 오직 경험과 협력을 통해서만 습득 가능한 지식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 보호에 있어서, 특히 토양 문제에 있어서 윤리보다 지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그가 느끼기에 대부분의 목장 주인들은 윤리 관념은 그대로이지만, 목초지가 훼손되지 않게 가축을 제대로 통제하자 풀이 다시 자랄 시간이 충분히 보장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4부의 제목은 ‘희망을 주는 정치’이다. 지금까지 보면 알듯이, 사회, 삶, 경제, 생태, 정치 이런식으로 구성이 된다. 그는 책 곳곳에서 자연이 주는 즐거움, 모든 존재는 얽혀 있고, 그런 것들이 소중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무슨 내용을 말할지 알아보자. 첫 장에서는 인권과 정부의 기밀 유지에 대한 ‘업무상 필요’와 대조로 시작한다. 인권을 ‘자연법과 신법’에서 비롯된 권리라고 명시한 데는 정부 권력보다 높은 곳, 정부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인권을 두기 위해서이다. 국가의 목적은 애초부터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 장에서는 2차 세계대전 전에는 미국이 다수가 소유한 나라였지만, 소수가 소유한 나라, 몇몇 대기업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나라가 되어가는데, 역대 모든 정부가 공공연히 이런 길을 걸어왔고 이런 변화에 반대하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미국인)는 미국을 파괴했다. 스스로 파괴했다고 말한다. “우리 경제는 발전이나 보존이 아니라 착취를 목표로 한다.” 즉 대기업은 지역 주민을 다른 곳보다 싼값에 착취할 수 있을 때까지만 머물고 그들이 떠나간 곳은 모두 텅 비었고, 죽음만이 있다. 이런 파괴가 자행되는 이유는 우리가 경제학의 두 가지 거짓말을 믿고 살아가기 때문이라 한다. (“1.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다. 2. 우리 지역의 경제를 대기업에 넘겨주어도 괜찮다.”) 이런 경제적 폭력, 파괴에 대한 책임은 미국 국민에게 있지만, 정부 또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개인이나 공동체는 이런 경제적 침략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주 정부와 연방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 
이런 파괴는 문제가 있고 더 나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장소를 존중하자. 둘째, ‘산업을 유치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셋째, 규모의 경제에 정직하게 대처하자. 마지막으로 우리의 토지를 구석구석 돌보는 일에 절대적인 우선순위를 부여하자.”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실제 경험에 기초한 글쓰기를 위해 언제나 ‘경험을 상상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기억이나 사실의 기록도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사실을 넘어 그림을 완성한다고 한다. 수많은 작가들과 책들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오랜 세월 웬델 베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책과 작가는 성서, 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 밀턴, 블레이크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난 뒤 느낀점: 한국어 제목은 지식의 역습, The Way of Ignorance를 직역하면 무지의 길이다. 제목만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잘 짐작이 안 갈 수 있다. 지식의 역습이라니? 무지의 길? 우리는 ‘아는 것이 힘’, 지식은 좋은 것, 무지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지식, 지혜는 생존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한계,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지식추구를 비판한다. 즉, 그런 지식추구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해만 입힌다는 것이다. 지식을 통해 인간의 모든 고통을 없애고, 수명을 무한정 연장시키는 일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고 한다. 무지의 길을 가자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자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유명한 책 <호모 데우스>에서는 인류의 다음 목표가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라 한다. 즉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의 뇌에 컴퓨터를 심는다고까지 한다. 기술적 특이점이 오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아니면 정치,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소수만 그 혜택을 누릴지라도 어쨌든 인류는 신이 되었기 때문에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한다. 웬델 베리는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은 존재하고, 한계는 없앨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기술의 무한 발전이 오히려 실패로 끝나고 파멸로 끝난다고 한다. 중심이 주변을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변이 자치하고 자족할 수 있게 되어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진다.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는 독자 개개인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자급자족하고, 지역에서 먹고 살기. 중심은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해야 하지 착취해서는 안된다 ‘등이 인간다운 삶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해외에 생필품을 의존하면서,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모든 경제가 얽혀, 도시에서 살면서 스스로 먹고 살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력은 물질의 풍족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풍족함의 대가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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