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세계문학전집 19)
[2017 베스트리뷰 공모전 수상작]
소설 ‘파리대왕’을 처음 접하였을 때 소설의 제목이 나로 하여금 궁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파리대왕이 무엇을 의미할까? 처음으로 떠올리게 되는 일상생활 속의 그 파리인가, 아니면 다른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무척 궁금하였다. 처음 일을 때에는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소설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고 읽어보니 심오하고 재미있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파리대왕’은 문명과 야만, 권력욕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린 아이들을 등장시켜 표현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이 나올 당시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10년 후의 상황으로, 전쟁에서 일어났던 대학살과 공포는 합리와 이성을 중시하던 서구문명에 ‘과연 인간은 이성적인가’에 대한 커다란 의구심을 느끼게 하였다.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문명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무인도에 표류되어 그 곳 에서 각자 살아가는 것이다. 무인도에 갑자기 떨어진 아이들은 아마 매우 무서웠을 것이다. 무서움에 떨던 아이들은 각자 할 일을 찾기 시작한다. 모든 무리에는 대장이 있다. 맨 처음 아이들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뱃고동을 울려야만 말을 할 수 있거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 생활한다. 하지만 언제 무인도에서 나갈지 모르는 아이들의 불안은 커져 하나의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냈다. 바로 ‘잭’과 ‘잭을 따르는 무리’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체면을 버리지 말라는 랠프의 말을 무시하고 점점 포악해져 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에 많이 놀랐다. 잭은 조금 더 강하고 인간의 이성 뒤에 감춰왔던 본능, 즉 잔인함과 포악함을 아이들에게 어필하며 자신의 무리로 만들어나간다. 이로하여, ‘잭’과 ‘랠프’의 집단으로 나뉘었다.
어른들의 세계에는, 나아가 하나의 집단에는 반드시 대표자가 생긴다.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는 무인도에 표류된 아이들에게서도 권력욕이 생기고 이를 위해 서로 대립하며 아이들은 점점 포악해진다. 잭의 일행은 마치 야만인들처럼 피를 바르는 행동을 하고, 결국 자신들의 말에 불복종하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외부에 적을 만듦으로써 내부는 더욱 단결한다. 자신의 무리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일은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이러한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좋지 않은 모습이 아무런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무아도에 남겨진 아이들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어느 날, 잭의 무리 중 한명은 동굴에서 알 수 없는 생명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생명체의 실체에 대해 알 리 없는 아이들은 그 존재를 ‘유령’이라 믿기 시작한다. 어른 하나 없는 무인도에‘유령’이란 공포의 대상이 생기자, 아이들의 불안이 더욱 높아진 나머지 그 두려움은 아이들의 이성을 완전히 놓게 만든다. ‘유령’이라는 존재를 자신들의 무리의 말에 불복종하는 대상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 과정이서 현대 문명의 상징인 ‘돼지'(piggy)는 돌에 맞아 뇌수가 깨진 채 살해당한다. 사이먼 또한 그 작은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공포를 누그러뜨리려 하지만 살해당하고 만다. 그 진실이 아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할 수 있는 ‘필요악’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유령’은 무서워하면서도, 정작 더욱 무서운 존재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잭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랠프를 죽이기 위해 이성을 잃고 산에 불을 지른다. 마지막까지 랠프는 이성을 잃지 않고 잭에게 동의를 구하지만 이미 잭의 무리는 순수했던 ‘친구’가 아닌 한 사회의 악의 무리로서 랠프의 말을 무시하며 자신들을 방해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불덩이가 된 섬을 보고 온 순양함에 의해 아이들은 구조된다. 열 살 안팎의 소년들이 살인을 태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할 무렵, 어른에 의해 구조된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에게어른이란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그 앞에서 나쁜 짓, 즉 살인을 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한 어른의 등장과 함께 아이들은 예전의 온순했던 때로 돌아온다. 마치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환상이고놀이였던 것처럼……. 그렇게 랠프는 순양함의 구조 덕분에 살아났지만, 순양함의 어른들은 또 누가구조해주어야 할까? 아이들에게 이성적인 존재로 보이는 어른들도 결국 싸우러 가는 길이거나, 혹은싸움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어른들 또한 적에 맞서 싸운다, 랠프와 잭이 맞서던 것처럼. 또 만약, 랠프가 살해당한 뒤, 잭의 무리가 어른들에게 발견되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살인을 실토했을까’라는 의구점이 든다.
파리대왕의 상징은 여러 곳에서 내제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고발이,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통해 표현되어있어 나에게 여러 생각을 갖게 해 준 책이다. “귀신은 무섭지 않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언제 어디서라도 보편타당성이 있으며 살아있는 것, 즉 살아 있는 인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욕망이 있다. 권력을 가지고 싶다, 돈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 내 것은 아니지만 가지고 싶다. 이러한 내제되어 있던 욕망이 민주주의를 깨고 인간의 본성에만 맡기게 된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이성과 윤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극도의 흥분 상태가 극에 달해 있을 때, 갑자기 마주하게 된 문명 앞에선 그냥 ‘어린 아이’ 모습 그대로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윌리엄 골딩은 ‘파리대왕’을 통해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단지 ‘그것이 옳은 것인가,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묻고 있는 듯 하다. 세상에게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세계 2차대전을 치루고 대학살과 공포를 겪은 당시의 상황에서 그는 인간의 본성은 이성적이지 않다라는 메세지를 어린아이를 통해 던진 것이다.
순수한 어린아이를 통해 이런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룬 이야기는 나에게 더 크게 와 닿았고,문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만을 위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인간의 욕망’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이토록 모든이가 바라고, 숨겨온 본성앞에 무너지게 되는 것일까. 이 소설은 우리 주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새로운 시각으로 성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