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햄릿 - 상상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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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민음사2009년 1월 20일
박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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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고등학교 시절 읽고 이번에 영문과 수업 때문에 다시 찾게 된 햄릿. 역시 몇 년 전 읽은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땐 단지 셰익스피어의 표현력에 감탄하며 극 작품의 생소함에 적응하는 것에 집중해 읽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다른 부분에 더 눈길이 갔다. 그 유명한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따위보다는, 바로 폴로니어스가 딸 오필리아에게 해주는 연애와 이성에 대한 조언이 적힌 장이었다.

  오필리아의 아버지는 오필리아에게 네 생각을 발설하지 말아라. 절도 없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도 말고. 친절하되 절대로 천박해지면 안 된다. 있는 친구들은 겪어보고 받아들였으면, 그들을 네 영혼에 쇠고리로 잡아매라. 귀는 모두에게, 입은 소수에게만 열고 모든 의견을 수용하되 판단을 보류해라. 지갑의 두께만큼 비싼 옷을 사 입되 요란하지 않게, 고급으로 야하지 않게.”라든가, “난 알아, 피가 끓을 때면 영혼이 얼마나 아낌없이 혀에게 맹세를 빌려주는지. 얘야, 열보다 빛을 더 발하는, 그 두 가지를 약속하면서 동시에 꺼지는 이 섬광을 불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햄릿 왕자로 말하자면, 그는 젊고, 네게 주어진 행동반경보다 더 넓게 움직일 수 있다고만 믿어라. 한마디로 오필리아, 그의 맹세를 믿지 마라. 그 맹세란 놈은 겉옷과는 색깔이 다른 중매쟁이일 뿐만 아니라 불경한 청탁을 애원하는 자이며, 더 잘 속이기 위하여 성스럽고 경건한 뚜쟁이처럼 속삭이기 때문이야.”와 같은 교훈들을 기억에 새겨준다. 비록 폴로니어스가 작품 전반적으로는 자기가 무슨 대단한 책략가라도 된 것마냥 착각하는 주책맞은 늙은이, 예컨대 이 작품의 플롯을 비극적 결말로 이끌어주는 희극적 요소 따위로 쓰인 캐릭터일지 몰라도, 자신의 딸 오필리아에게 사랑을 담아 해주는 이 조언들만큼은 내 마음에 깊게 와닿았다. 경험이 부족했던 고등학생 시절 이 부분을 읽었을 때에는 무슨 천박해지지 말라니처녀 몸을 뜸하게 드러내라니 등 너무 가부장제적인 이야기네 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역시 고전은 고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경험을 겪고 조금 더 성숙한 내가 되어 이 부분을 다시 읽으니 가부장제고 뭐고 아빠가 딸에게 해주는 이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는 조언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새롭게 들었다. 그러나저러나, 이 작품에 오필리아와 햄릿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게 비중이 적지는 않다는 걸 이번에 읽었을 때 처음 인지했을 정도로 예전엔 내 눈에 잘 안 들어왔었나 보다. 실제로 작품에 비중이 크게 실리지 않긴 했지만 내 머릿속에선 오필리아와 셰익스피어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셰익스피어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그걸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던 오필리아,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아빠를 죽이는 일을 겪은 오필리아의 심정이 어땠을지 공감이 가서 마음이 짠해졌다. 오필리아가 부디 다음 생에는 햄릿 왕자와 달달한 사랑만을 하길 바라본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선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죽어갈 때까지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비극이 다뤄진다. 개인과 가족, 그리고 국가를 넘어선 우주적인 차원에서까지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포괄적이다. 그 많은 주제들 가운데 이번에 읽을 땐 이성과의 관계라는 주제에 더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또 다른 내가 되어 이 책을 읽을 때는 또 어떤 문제가 나에게 가장 와닿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떤 부분을 감명 깊게 읽을지 모르겠다. 햄릿은 그래서 고전이고, 시간이 지남에도 계속해서 읽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