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독서 문학기행

2019-2 '삼선동 학생들' 문학기행문

2019년 12월 6일 2016

 

직접 가보는 80년대

-『원미동 사람들』 문학기행-

 

‘삼선동 학생들’

팀원

도서관 정보문화 트랙

1711043 박수민

1711071 윤나현

1711083 이슬희

1711086 이유미

1711118 한유린

 

 

선정도서

『원미동 사람들』은 부천시의 원미동을 배경으로 한 양귀자 작가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우리는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두가 대학교 입학 전에 학교에서 양귀자 작가의 단편들을 한두번은 본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읽어본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동안 단편 몇 개만 알고 있던 해당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나와 조원들은 이 책이 우리가 드라마 등의 매체로만 보았던 80년대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문학기행에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80년대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원미동 사람들』을 문학기행 도서로 선정했다.

 

문학기행 테마

우리의 문학기행 테마는 직접 가보는 80년대이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88>은 서울의 쌍문동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시대를 기준으로 풍족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80년대는 정치적 혼란의 시기임과 동시에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이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은 이러한 낭만적인 80년대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시대의 중심에서 떨어져 나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이 시기의 서울이 어떤 곳이었는지, 왜 『원미동 사람들』의 등장인물들은 원미동을 최후의 보루라고 느꼈는지를 알아보고자 문학기행의 테마를 ‘직접 가보는 80년대’로 정하게되었다.

 

일정

일자 방문장소
2019.11.08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2019.11.22 부천시향토역사관

원미공원 문학동산

원미동 사람들 거리

 

2019.11.08 일정

서울생활사 박물관 앞에서 2시에 모였다.

서울의 과거를 잘 알려주는 장소들을 방문하여 80년대에 서울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알아보았다.

-서울생활사박물관-

대중문화와 문학작품 속 서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전시가 진행중이며, 서울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

생활사 박물관은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다양한 생활 박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오래된 물건들과 그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우리는 80년대의 생활상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원미동 사람들』에 자주 등장하는 형제슈퍼와 비슷한 이름의 형제상회 간판을 발견하여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고도성장기의 서울이라는 이름의 상설전시를 운영 중이다. 해당 전시는 해방 후 서울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고도성장기의 서울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사람들이 왜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7,80년대의 아파트 내부 구조를 재현해 놓아 그 시기 사람들의 주거생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2019.11.22 일정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인 부천시 원미동을 방문하여 작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고자 했다.

부천향토역사관 앞에서 10시에 모였다.

 

-부천시 향토 역사관

부천시의 향토 역사자료를 전시하는 곳으로 부천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일정에 추가하였다.

우리가 장소선정을 위해 정보를 찾았을 때는 해당 역사관에서 부천의 발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방문한 결과 관련 전시는 이미 종료되었고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부천시에서 발굴된 구석기, 신석기 유적 뿐이었다. 당일 몸이 좋지 않았던 팀원 2명은 조금 늦게 원미공원에서 만나기로 하여 향토역사관에서는 아무런 소득없이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원미공원 문학동산

『원미동 사람들』의 단편 중 하나인 『한마리의 나그네 쥐』의 배경이 된 원미산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곳이다.여기서 모든 팀원들과 모일 수 있었다. 원래의 목적은 원미공원에 위치한 문학동산을 방문하고 원미산을 일부분을 보면서 작품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우리가 방문한 당일에 원미공원은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덕분에 몸상태가 괜찮았던 팀원 몇 명만 공원 초입을 둘러보고 왔다. 전체 공원을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한마리의 나그네 쥐』의 등장인물이 왜 원미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원미동 사람들 거리

『원미동 사람들』의 등장인물의 특징을 살린 동상과 부조, 조형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부천을 방문하는 일정에서 유일하게 계획대로 방문할 수 있었던 곳이다. 강노인, 몽달씨, 김반장과 같은 『원미동 사람들』의 등장인물을 조각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단순히 조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미동 사람들』의 여러 구절들을 적어놓은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었다. 책으로 읽을 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던 문구들도 맑은 날씨의 야외에서 마주하니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팀원 개별 후기

박수민

문학기행 첫날 방문할 장소가 두 곳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점심을 먹고 느즈막한 시간에 만났다. 생활사 박물관은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여러 물건들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원미동 사람들의 첫 단편인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에서는 은혜네 가족이 택시를 부르려다 돈을 아끼기 위해 트럭 짐칸을 타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생활사 박물관의 첫 전시부터 그 시기에 만들어진 택시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이번 박물관 방문이 80년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은 옛날 물건들과 관련된 해설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이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깊었던 것은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했던 가재도구들이었다. 현재에는 판매되지 않는 옛 가전제품이나 식품 등을 통해 원미동의 형제슈퍼에서는 이런 것을 팔았던 것일까 하는 상상을 해볼 수 있었다. 특히 이러한 상가의 모습을 전시하는 곳에서 형제상회라는 간판을 발견해 더욱 재미있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서울 역사 박물관에서는 7,80년대의 발전 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거기서는 사람이 가득 차게 된 서울의 모습과 왜 그렇게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들었는지를 확인했다. 특히 80년대 서울의 뒷골목 식당을 재현해 놓은 모습과 아파트의 내부를 재현해 놓은 것이 인상깊었다. 첫날 일정을 통해 우리는 80년대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것을 사용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두번째 일정이었던 부천 방문은 생각한대로 진행되지 않아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부천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름이 원미동 사람들인 가게의 현수막을 보아서 그런지 가는 동안에는 계속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원미동을 직접 방문한 이유는 그곳에 남아있는 옛 부천의 모습을 확인하고 그것을 서울의 80년대와 비교해보자 해서였다. 하지만 방문하기로 한 곳의 갑작스러운 공사와 전시실 변경 등으로 이러한 것을 모두 확인하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서울에서 부천으로 가는 길 내내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제로 원미동까지 가는 길은 2시간 정도가 걸렸고 지하철 환승과 버스 환승까지 모두 해야 해서 굉장히 피곤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도착한 원미동의 날씨는 맑았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적어 쾌적하게 느껴졌다. 원했던 방문은 모두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인 원미동을 직접 보고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윤나현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마주한 전시품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몇 번 접해본 적이 있어서인지 낯설지는 않았다. 그 당시 유행이었던 가방이나 신발, 지금과는 다른 음료수 병들의 모습, 옛날 교복, 도시락 등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물건들이지만 당시에는 흔한 물품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생활사박물관과 조금 비슷한 전시였지만 생활사박물관은 말 그대로 생활사(史)에 초점을 두었다면 서울역사박물관은 역사적인 사건, 맥락에 대해서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룬 느낌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울의 발전, 개발사업,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 등 더 큰 범위에서 서울에 대해 알게 해 주었다.

서울에서의 80년대를 박물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았으니 다음으로는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인 부천 원미동에 가게 되었다. 부천 원미동은 처음 가 보는 곳이었다. 원미동이라는 지명은 낯설지 않았지만 방문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원미동이나 어디나 누구나가 살고 있는 동네의 모습일 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내가 짐작할 수 있던 것은 서울만큼의 도시의 모습은 아닐 거라는 것이었다.

기억에 남는 건 원미동 사람들 거리였다. 강노인, 김반장, 몽달 시인의 동상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원미동 사람들>의 발췌문이 눈에 띄었다. <원미동 사람들>의 표지를 보면 원미지물포, 행복사진관, 써니전자 등등의 상가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 책의 표지 덕인지 단조로움을 상상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막상 원미동사람들거리는 상상했던 풍경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부천에서의 문학 기행은 원미동을 완전히 알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책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80년대 부천 원미동은 작은 동네를 연상하게 되고. 이사가 잦은 동네이며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부천으로 들어오게 되는 그런 인상이었다. 그러나 실제 방문하게 된 원미동은 조촐한 모습은 아니었다. 길은 복잡했고, <원미동 사람들>에서만 만나 본 조그만 상가 몇 개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3~40년대 시간의 흐름 때문에 당연히 생겨난 변화된 모습이지만 부천 원미동의 모습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한 번의 방문을 통해 원미동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실제 원미동을 걸으면서 책에서의 그 거리는 어디의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하면서 걷게 된 것 같다. 책을 다시 한번 더 읽게 되면 지금보다는 미숙한 80년대의 모습이겠지만 조금은 더 익숙하고 선명한 원미동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슬희

11월 8일과 11월 22일 2일 동안 동기들과 함께 서울의 박물관과 부천의 원미동과 원미동사람들 거리에 다녀왔다. 문학기행의 테마도서로 선정한 원미동 사람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주민들의 동네, 그들이 살고 싶어했던 서울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서울과 부천의 80년대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으며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부천과 서울의 여러 장소를 다녀왔다. 11월 8일에 서울의 생활사 박물관과 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생활사 박물관에서는 우리는 서울의 변화하는 모습을 봤다. 역사박물관에서는 좀 더 세밀하게 80년대의 모습과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며 도시의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도심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볼 수 있었다.

11월 22일 부천에 가는 날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늦게나마 도착한 원미공원은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도 상에 표시된 진입로가 막혀있었다. 오래 걷기 힘든 나와 다른 친구를 두고 다른 친구들이 원미공원 주변을 다니며 다른 진입로가 있을까 싶어 찾고 있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우리가 오는 날에 맞춰 원미공원이 공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미공원엔 발도 못들이고 원미동 사람들 거리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다른 점은 부천의 교통사정이 생각보다 좋지 못했던 점이었다. 서울의 버스보다 긴 배차 시간, 멀찍이 떨어진 버스정류장 등 원미동 사람들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결국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 택시를 타고 갔다.

그렇게 도착한 원미동 사람들 거리는 정말 작았다. 원미동 시인 몽달씨의 동상, 김반장의 동상등 동상과 소설 속의 내용을 인용한 일부 장식물만 있었다. 우리가 바랬던 세세한 원미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 원미동 사람들 거리를 보고 우리는 급히 다른 장소를 물색해봤다. 적절한 장소는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원미동 사람들 거리에서 나와 각자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 나뉘었다.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떠났고 버스를 타기엔 거리가 애매하게 남은 사람들은 역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와중에 친구들과 주변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천은 늦은 오후임에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보다 차량이 많았다. 또한 주변의 상가도 대부분은 문을 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가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상가들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종류의 물건을 파는 상가 보다는 창고처럼 쓰이는 경우가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수도권이라고 하지만 서울과 꽤나 큰 차이를 보여주는 모습에 작게나마 어색함을 느꼈다.

우리의 문학기행 주제는 직접 가보는 80년대이다. 문학기행을 시작하며 여러 박물관에서 80년대의 기록과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이렇게 문학기행을 다녀오면서 80년대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서울과 그 주변의 도시간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직접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유미

‘원미동 사람들’ 문학기행은 서울과 원미동의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과 부천 두 곳을 두 번에 나눠 찾아갔었다. 서울에서는 서울 역사박물관과 서울 생활사박물관을 통해 60년대부터 현대까지 당시 서울의 도시화, 인구집중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었는지, 서울생활의 모습은 어땠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원미동 사람들’의 사람들에게는 서울이 마음속 이상향과 같은 곳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메리칸 드림’과도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내에서도 서울의 급격한 상경으로 인신매매, 윤락가, 서울 변두리에 도시빈민문제로 달동네가 생겨났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이상을 찾아 떠났지만 이미 급격히 늘어난 인구로 범죄나 빈민, 도시생활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원미동 사람들’ 같은 문제도 있었던 것이다. 서울의 박물관들은 규모가 굉장히 크고 시대별로 서울의 모습과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어서 좋은 기억이 되었다.

나에게는 부천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았는데, 서울과는 많이 다른 이유에서였다. 문학기행 외에도 부천을 가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가기 전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부천에서는 이동시간과 동선을 고려해 부천시 향토역사관, 원미공원 문학동산,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를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향토역사관은 테마를 바꿔서, 원미공원은 공사로 인해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 한 곳만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부천을 돌아다니면서 들었던 의문이 있었는데 ‘여기가 서울이었다면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였다.

부천의 전체적인 느낌은 회색빛 도시였다. 분명 사람이 살고 있음에도 밖으로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가게는 실제 운영 중이었고 간판은 90년대 느낌에 화려한 간판이지만 문을 닫은 것처럼 되어있었다. 거리도 사람이 없고 차들만 존재해 삭막하게 느껴졌다. 향토역사관의 공지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도, 사전조사에서도 이러한 정보들을 찾기 힘들었던 점도 부천, 원미동이 지금까지도 서울에 비해 발전이 느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라면 SNS, 홈페이지, 인터넷을 통한 정보가 활성화됐겠지만 부천, 원미동은 서울에 비해 20대 사람들도, 지원도 적어 이러한 내부적 운영도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거리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고, 가게는 겉으로 운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이 몰리는 곳 정도만 일반적인 가게가 있었다.

서울과 부천을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문학기행으로 다녀오고 느낀 것은, 서울에서는 서울생활모습과 도시화의 진행과정, 그로인한 어두운 면들 또한 볼 수 있었다. 원미동 사람들의 등장인물들이 서울생활을 바랬지만 서울에서도 많은 문제점 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원미동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인 서울과 타지역관의 차이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지역불균형의 필요성을 몸소 느껴보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유린

문학기행 첫날 우리가 방문한 곳은 서울 생활사 박물관, 서울 역사박물관이었다. 서울 생활사 박물관은 해방 이후 서울의 결혼 풍경이나 의복, 교실과 같이 문화를 위주로 다뤘다면, 서울 역사박물관은 서울 개발, 주택 건설 같은 배경을 집중적으로 전시하는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서울의 인구 증가 현상이었다. 1951년만 해도 64만 명이었던 인구수는 점점 늘어나 1954년에는 124만, 1960년대 서울의 인구수는 244만 명이다. 2배 가까이 늘어나는 인구수에 아파트 개발도 되지 않았던 서울의 모습을 고려한다면, 그때 당시 인구가 미어터지는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은 확실히 어려웠던 일이 맞는 것 같다. 『원미동 사람들』 의 첫 주인공인 은혜네 가족은 서울을 떠나 부천 원미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은혜네 가족이 서울에서 살던 집은 임시로 내놓은 집에 전세로 들어간 것이었는데, 그 집이 금세 팔리게 되어 가게 된 것으로, 긍정적인 의미의 이사는 아니었다. 나는 은혜네 가족이 가난하여 부천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마냥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1960년대의 서울 양상이 20년 뒤인 1980년대까지 이어져, 은혜네 또한 결국 서울을 벗어나 부천에서 자리 잡게 했다. 그 외에도 1980년~ 1990년대 사이의 가게와 외상 장부, 아파트 내부의 방 모습을 실현해둔 것에 실제 그 당시 사람들이 쓴 물건들로 전시해둔 모습도 당시의 서울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서울의 1980년대를 느껴보았다면, 원미동의 모습 또한 느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우리는 두 번째 장소로 부천을 꼽았다. 원래 계획은 부천향토역사관, 원미 공원에 있는 문학동산과 원미 어울 마당이었으나 부천향토역사관은 우리가 알고 싶었던 부천 주민이나 지역개발에 관련된 전시를 하지 않았고, 원미 공원은 정비 사업으로 인해 이곳저곳에 출입금지 팻말이 놓여 있어 완공되는 2020년 3월까지 제대로 된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거의 3시간에 걸쳐 도착한 곳이기에 좀 더 알아보고 올 걸 그랬다는 후회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도착한 원미동 사람들 거리가 섭섭한 마음을 조금 달래주었다, 원미동 사람들 거리는 『원미동 사람들』을 기반으로 소설의 내용과 몇몇 인물들을 동상으로 만들어 세워두고 있다. 소설 속에서 성격으로만 느껴볼 수 있었던 모습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 인물을 알려주는 부분은 바래져 잘 읽을 수는 없지만, 표정만 봐도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옆에 적혀져 있는 문장을 읽으며, 『원미동 사람들』의 내용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였다.

『원미동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루는 내용의 소설이다. 우리가 살펴본 원미동은 물론 그 시절의 원미동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겠지만,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거리를 거닐어봄으로써 하루쯤 『원미동 사람들』의 일상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1980년대의 원미동을 그린 『원미동 사람들』처럼 우리들의 일상도 미래의 사람들에게는 『원미동 사람들』과 같이 소설로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2일간의 짧았던 문학기행을 마무리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