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 '강릉 새내기' 문학기행문
‘강릉 새내기’문학기행 보고서
주제도서
홍길동전, 사임당의 뜰
○탐방 장소①: 오죽헌(강원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 오죽헌)
○탐방 날짜: 10월 31일(목요일)
○선정 도서: 사임당의 뜰
○탐방 후기: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되었다.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고 한다. 오죽헌 입구에는 오죽헌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다. 세계 최초로 모자가 화폐의 인물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 탄생지’라고 쓰여 있었다. 훌륭한 어머니 덕에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고, 훌륭한 아들 덕에 어머니가 칭송받는 선순환을 이루었다. 오죽헌의 입장권을 구매하고 오죽헌 안내 팸플릿을 들고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율곡이에 동상이 있었고 한자로 ‘견득사의’라고 쓰여 있었다. 견득사의는 이득을 보거든 옳은 일인가를 생각하라 하는 뜻이다. 많은 깨달음을 주는 글인 것 같다. 더 들어가서는 신사임당이 초충도에 그린 식물들로 만든 화단이 있었다. 초충도에 나온 식물들이 화단에 심겨 있었고 신사임당 빛의 일기에 나온 주인공인 이영애와 송승헌의 핸드프린팅이 있었다. 이제 우리의 목적지인 오죽헌을 향해 걸어갔다. 오죽헌을 가기 위해서 지나가야 하는 ‘자경문’이라는 문을 지나갔다. 율곡이이가 자경문이라는 자기 경계의 글을 쓴 것에서 이름을 따와서 1976년에 건립한 문이라고 한다. 문을 지나가 오죽헌의 전경을 바라보았을 때 팀원 모두가 진짜 아름답다! 고 탄식했다. 오죽헌의 문으로 들어가면 사당인 문성사가 나왔고, 사당 안에는 율곡 이이의 초상화가 있었다. 사임당께서 용꿈을 꾸고 율곡 이이를 낳았다고 하여 몽룡 실이라는 이름이 붙인 방 안쪽에는 신사임당의 그림이 있었다. 율곡 이이 선생이 학문을 수양했던 마루방에는 격몽요결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격몽요결에서 말하는 ‘인생을 망치는 8개의 나쁜 습관’에 대해서 읽었다. 놀 생각만 하는 습관, 하루를 허비하는 습관,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습관, 헛된 말과 글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는 습관, 풍류를 즐긴다며 인생을 허비하는 습관, 돈만 가지고 경쟁하는 습관, 남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습관, 절제하지 못하고 재물과 여색을 탐하는 습관이 인생을 마치는 8개의 나쁜 습관인데, 우리 팀원 모두 위의 습관을 지니고 있어서 속상했다. 인생을 망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사당을 지나니 오죽헌의 상징인 오죽들이 심겨 있었다. 그리고 오죽헌의 거주공간이 있었다. 오죽헌의 안채와 사랑채는 옛날 양반집의 거주공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사랑채 옆으로는 어제각이 있었다. 어제각은 정조가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과 실제로 사용한 벼루를 직접 보고서 다시 돌려보내며 잘 보관하라고 하였고 그 여명에 따라 보관하기 위해 만든게 어제각이다. 오죽헌을 관람하면서 느낀 점은 굉장히 잘 보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죽헌을 보고 나와서 율곡기념관을 갔다. 율곡기념관에는 오죽헌, 율곡이이, 율곡 이이의 동생인 이우, 그리고 이우의 후손들과 관련된 전시가 이루어져 있었다.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나고 자란 오죽헌은 검은 대나무의 오죽과 잘 보전된 기와집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름다운 공간을 눈에 담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 공부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이 오죽헌의 안내판에서는 신사임당보다 율곡 이이의 설명이 많아서 신사임당의 생애에 대해서는 많이 알 수 없었다. 신사임당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이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탐방 장소② :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강원 강릉시 난설헌로193번길 1-29)
○탐방 날짜: 10월 31일(목요일)
○선정 도서: 홍길동전
○탐방 후기:
초당마을에서 순두부와 순두부 젤라또를 먹고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을 갔다. 기념공원에는 기념관도 있었고 허균과 허난설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난설헌 허초희와 교산 허균의 이야기와 자료가 수집되어 있었고 탁본인쇄체험도 할 수 있었다. 간결하게 정리한 문구와 오래된 작품들,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모형들, 흥미롭게 제작된 비디오 등을 통해 허난설헌이 어떤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떻게 천재 시인으로 거듭났는지 알 수 있었다. 허난설헌의 시문집 <난설헌집>도 볼 수 있었다. 시대를 뛰어넘은 능력을 갖춘 여자로서의 삶이 고달팠던 허난설헌은 유언으로 자신의 글을 모두 태우라고 하였지만, 허균은 누이의 찬란한 글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허균이 기억력으로 출간했다고 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강릉 초당동 고택이 있었다. 허난설헌이 태어나고 허균이 살았던 생가이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9호이며 토담이 주변의 솔밭과 조화를 이룬 명당 위치라고 한다.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허엽의 집안은 당대에 손꼽히는 문장가 집안이었어. 허엽을 비롯해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둔 허성, 두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허봉·허초희·허균 다섯 사람은 5문장으로 불릴 만큼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여느 사대부 가문과 달리 집안 분위기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당시의 여성들 대부분이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했는데, 허난설헌은 어린 시절 ‘초희’란 어엿한 이름으로 불렸다. 허난설헌은 글재주와 그림 솜씨도 빼어나, 가히 신동이라 불렸고, 8세 때에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은 허난설헌의 삶이 참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허난설헌이 살면서 가장 후회한 세 가지가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남편과 결혼한 것이라는데 조선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서 겪었던 모든 불평등한 점으로 인해서 허난설헌의 뜻을 이루지 못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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