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삶을 마주할 때 드러나는 보편적인 얼굴과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한 책이다. 우울에서 시작해 사랑에 이르기까지- 불안, 분노, 중독, 광기를 거쳐 흐르는 감정의 배열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인간이 심리적 고통을 지나 회복과 연결로 나아가는 내면의 여정을 담고 있다.
“해부학적으로 보아도, 뇌에서 감정에 물드는 경로는 자연스럽고 풍성하다.“ 감정은 특정한 하나의 회로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우울이라는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우울을 ‘어둡다’, ‘고립되었다‘는 말로 단순화하지만, 뇌 속에서 우울은 고립된 감정이 아니다. 편도체는 과활성화되고, 전두엽의 기능은 저하될 때 뇌는 위협과 불안을 과도하게 감지하면서도 이를 이성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그 결과 사람은 현실보다 더 깊은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내부에서 끊임없이 ‘연결하고 싶은 욕망’과 ‘두려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불안정한 감정의 파동은 개인을 넘어, 지금 이 시대를 흔든다. 지금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는 불확실하고, 관계는 느슨하며, 미래는 지나치게 유동적이다. 소셜미디어는 타인의 일상을 비교하게 만들고, 끊임없는 선택과 경쟁은 사람들로 하여금 늘 ‘무언가 놓치고 있는 듯한 불안’을 안고 살게 만든다. 이 불안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한 정서의 유행처럼 퍼졌다.
결국 분노와 광기의 문을 열 수 있는지를 조용히 직시하게 만든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분노를 ‘리비도(욕망 에너지)의 좌절에서 비롯된 공격성’으로 보았다. 억눌린 감정은 무의식에 쌓이고, 그것이 해소되지 못할 때, 자아는 외부 대상에 그 감정을 투사하거나 전이하게 된다. 즉, 원래는 나를 향했던 좌절이 타인을 향한 공격으로 바뀌는 것이다. 분노는 이렇게 나를 보호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이자, 억압의 부작용이다.
분노는 결국 감정을 더 이상 품지 못한 자아의 비명이다. 억눌린 감정이 외부로 튀어나오고, 그것조차 제어되지 않을 때 사람은 내면의 허기를 숨기려 중독에 기대게 된다. 그리고 그 끝, 감정이 말로도, 행동으로도 다 표현되지 않을 때 우리는 광기를 마주한다.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언어를 잃고 터져나올 때, 인간은 현실의 틀을 벗어나고 만다. 광기는 무너짐이지만, 어쩌면 가장 절실한 생존의 몸짓일지도 모른다.
이후의 사랑은 상처를 지닌 존재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려는 감정의 회복점이자 출발선이다. 『마음의 여섯 얼굴』은 말한다. 인간은 무너지고도, 다시 사랑을 찾아 나선다고. 사랑은 완전한 상태에서 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부서진 마음들이 다시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때 시작된다.
사랑은 가장 오래된 감정이지만, 가장 회복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사랑을 감정의 종착역이 아닌, 다시 감정의 회랑을 순환하게 하는 다정한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우울에서 불안으로, 불안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중독과 광기로 이어진 감정의 여정은 결국 사랑 앞에서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다짐이 된다.
이처럼 “감정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깊은 직관을 가장 빠르게 직접 전달해주는 전령이며, 이성적 사유 자체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따라서 우울은 불안으로, 불안은 분노로, 분노는 중독과 광기로, 그리고 마지막엔 사랑으로 가는 감정의 연쇄 속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이는 정서적 회랑이며 삶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의미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
마지막 여정으로 나아가는 사랑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 삶에 있어 필연적이면서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디딤돌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뇌피셜이 존재했다. 그런데 사랑은 단순한 연결과 기쁨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다시 손을 내미는 감정이었다. 결핍과 고통을 껴안고 타자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행위였다.
무너진 마음의 잔해 위에 피어나는 감정이라 더 특별하다. 상처는 회복되고,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포되기 때문에 감정을 회복하려는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즉 부서진 채로도 여전히 타자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의지 그 자체다. 그 의지는 단순히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어둠과 약함까지 조심스레 꺼내어 누군가 앞에 놓는 일로 이어진다. 그래서 사랑은 맨몸으로 타인 앞에 서는 가장 용기 있는 감정이며, 가장 조심스러운 고백이 된다.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사랑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다.
프로이트는 사랑을 ‘리비도 에너지의 건강한 방향 전환’이라 말한다. 자기애에 머무르던 감정이 타인을 향해 이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아의 경계를 넓히고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사랑은 관계를 맺겠다는 감정적 선언이자, 두려움을 안고 건네는 손짓이다. 또, 뇌과학의 언어로도 사랑은 특별하다.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사랑의 순간마다 뇌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신경화학적으로 확인시켜준다.
“사랑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자신의 경계와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경계 주변에서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타인을 침범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먼저 나의 한계를 이해하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타인의 경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해보다는 기다림이고, 소유보다는 머무름이기에 가장 약해졌을 때, 가장 약한 감정으로 가장 강한 선택을 해야 하니까.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문득, 사랑이 감정의 종착점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게끔 하는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과 불안, 분노와 광기까지 지나온 사람만이, 더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 결국 감정의 끝에서 사랑은, 감정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인간다운 얼굴이었다.
”사랑을 놓지 않을 힘을 가진 사람만이
사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