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소설’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먼 미래,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 어려운 과학적 개념, 우주 등… 뭔가 방대하거나 웅장하고, 무엇보다도 기계나 유전 공학 등 대체로 ‘과학적’인 요소들과 관련된 것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천 개의 파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이고 과학적인 SF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가 배경인 SF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이다. <천 개의 파랑>은 제조 과정의 실수로 조금 특별해진 기수 휴머노이드 로봇과, 그 로봇의 파트너 경주마, 그리고 둘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는 그 중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소수자(장애인), 보호되지 않는 동물의 권리 등 현재의 사회 문제를 녹여냈다. 또한 로봇에 비해 낮은 능률과 높은 인건비를 이유로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기술 격차를 통해 더욱 크게 다가오는 빈부격차, 기계에 대한 지원 집중으로 복지 측면에서 소외되는 인간 등 근 미래에 제기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들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이 발전한 미래 배경이지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시민들의 이야기,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우려를 통해, 책 속의 세계관이 독자가 살아가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공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적인 SF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천 개의 파랑>은 현대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통용되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현실에 가까운 SF 소설이 되었다.
“애초에 천천히 달리는 것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349p)
현대는 이른바 ‘무한 경쟁 시대’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많이 심한 편이다. 남보다 더 나은 성적, 더 나은 대학, 더 나은 회사와 연봉 등을 위해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쉼 없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는가. 사실 인생이라는 경주에도 속도에 대한 규정은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그 경주의 대다수의 참가자와 관중들이 빠르게 달려서 남들과 비슷하게 특정 구역을 통과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고, 천천히 달리는 사람에게 야유를 보낸다. 위에 나온 구절처럼,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달리는 것은 규칙 위반이 아님을 깨닫고, 가끔은 하늘도 좀 바라보면서 ‘천천히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독특한 발상 속 깊은 이야기
<브로콜리 펀치>는 일단 제목부터 독특하고, 단편 소설이라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보였다. 물론 예상과 다르게 이 책의 내용이 어렵고 길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의 8가지 단편은 아버지의 화장한 뼈로 만든 화분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거나(<빨간 열매>), 사람의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하거나(<브로콜리 펀치>), 바다 위에서 죽기 직전에 외계인들에게 구해지고(<둥둥>) 이구아나가 내게 말을 거는 등(<나와 이구아나>) 독특하면서 재미있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고, 중간에 유머가 섞인 말도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고, 책장도 잘 넘어가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단편을 읽으면서, 마냥 재미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약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브로콜리 펀치>에서 손이 브로콜리로 변한 ‘원준’이 ‘나’에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이야기하는 장면, <이구아나와 나>에서 ‘나’가 수영 강사를 그만둔다는 동료의 말을 듣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기 시작하는 장면 등이 이런 느낌을 주었다. <브로콜리 펀치>에서는 ‘마음의 짐’이 커지면 신체 일부가 강낭콩, 고추, 브로콜리 등의 채소가 된다는 발상을 통해, 어느 순간 사람을 때리는 것이 힘들어진 복싱 선수 ‘원준’이 가지고 있던 만들어진 ‘미움’과 마음고생을 표현하였다. 이 장면에서 ‘원준’이 가진 괴로움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으면서도, 이상하고 허무맹랑한 소재로 개인의 마음 속 응어리와 같은 심도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구아나와 나>의 해당 장면에서, 수영 강사로서 일에 만족하며 살아온 ‘나'(화자)가 “수영, 솔직히 난 미래 없다고 생각해. (중략) 살길 찾아야지.”라는 동료의 말을 듣고 자신이 미래에 대한 위기 의식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빠지게 된다. 나도 가끔 내가 이 전공을 선택한 것이 맞는지,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어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 지와 같은 불안이 있기에, 이 장면이 더욱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이 단편은 나와 같은 불안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고,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단편도 있었다. <왜가리 클럽>에서 ‘양미'(화자)는 세 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2주에 한 번 주말마다 도림천에서 함께 왜가리를 바라보는 일명 ‘왜가리 클럽’에 가입하고, 가입 후 활동 첫 날 저녁 왜가리의 모습에서 느낀 것, 배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왜가리는 나도 집 근처 하천을 걸을 때 자주 볼 수 있는 은근히 흔한 물새지만, 그렇게 쉽게 볼 수 있으면서도 왜가리를 보면서 ‘왜가리가 있다.’ 이상의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하천의 왜가리의 모습에서 삶과 실패에 대한 태도나 교훈을 배운 클럽 회원들을 보면서, 이유리 작가의 발상의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글의 소재는 일상의 사소한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데, 해당 단편은 이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브로콜리 펀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벌어지는 판타지 소설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과 세상,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겨 있다. 다채로운 이상한 소재와 유머 감각이 있는 문장들로 재미를, 그 속의 주제로 깊이를 모두 챙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저마다의 크고 작은 어려움에 부닥칩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어려움과 함께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유리 작가님의 ‘브로콜리 펀치’는 여덟 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입니다. 각 단편마다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개중에는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금세 털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빨간 열매’), 오랫동안 힘들어하다 조금씩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손톱 그림자’). 버티기 힘든 역경이 밀려올 때 브로콜리가 자라다가도 주변 사람들의 격려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도(‘브로콜리 펀치’) 힘든 일을 피하는 과정에서 미워하는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 일도 있죠(‘평평한 세계’). 사실 그렇게 힘들었고 자책했던 일도 돌아보면 별반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정말 중요한 건 실패가 아니라 왜가리처럼 앞으로도 한 번 한 번의 시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까요(왜가리 클럽). 멕시코까지 바다를 헤엄쳐 가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목표를 가지도 최선을 다한다면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도전을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는 어느 이구아나처럼 말이에요(‘이구아나와 나’).
이렇듯 고난에 대해 다양한 대처를 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독자에게 다정한 위로로 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구의 증명>>은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라는 이 책의 유명한 구절로 알게 되었다. 식인에 대한 표현이 판타지 계열의 소설이라고 생각해 처음 이 구절을 들었을 땐 거부감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간간히 유튜브에서 이 책과 관련된 플레이리스트를 접하게 되었고, 플레이리스트 영상에 적힌 댓글은 이 책을 추천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댓글 중 하나가 ‘사랑이 분홍색이 아니라 회색을 띨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 책.’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200 페이지가 안 되는 소설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인 담과 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 클 때까지 서로밖에 없는 관계다. 읽으면서 누구 하나라도 무너지면 끝나는, 위태로운 관계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끝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상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관계성이 내게 조금 버겁게 다가왔다. 둘 사이는 약간의 거리감도 없다. 바람 한 점 드나들 곳 없이 붙어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흔한 커플들처럼 사랑스럽다거나 따사로운 봄날 같아 보이지 않다. 서로에게 서로가 없으면 안 되니까, 틈 없이 껴안은 채 살아가는 담과 구다.
구가 죽은 뒤 담의 감정에 집중해 읽으면 우울감이 가득하다. 그런 감정선도 정말 좋았고 마음에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구가 죽게 된 사연이 더 안타깝게 가슴에 와닿았고 구의 감정선이 잘 느껴졌다. 구는 담을 사랑하지만 사랑한 만큼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담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난 사랑이 아니라 우정에서마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없어야 더 잘 되지 않을까, 같은 자존감 낮은 생각이 날 지배하고는 해 구가 담에게 자신에게서 떨어지라고 한 말이 나를 벅차게 만들었다. 그 말을 들은 담의 생각을 읽을 때, 내 주위 사람도 저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쓰인 의도와 내가 받아들인 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난 그러지 않았던가. 살아가기 위해 죽은 구를 먹은 담은 담 자체로 구가 증명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있었던 존재조차 되지 못할 테니까. 담은 구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담은 먹지 않으면 구처럼 죽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지 않았을까. 나는 구나 담의 생각보다 생활에 더 집중해 읽었다. 대학을 가지 않는다든가 공장을 다닌다든가 그런 생활.
다음에 꼭 다시 이 책을 읽어볼 것이다. 실은 받아들이기 거북할 정도로 내용이 암울해 읽다가 중간중간 포기한 순간도 있었다. 읽고 나서 책을 덮을 때면 숨이 벅차는 순간도 있었지만, 끝까지 읽고 싶었다. 읽는 순간은 짧게 지나갔지만 쉬는 기간이 길어 독서 기간이 길어졌다. 다음에 읽는다면 한 번에 다 읽어 책을 이해하고 싶다.
–
독서 기간 : ~2023. 07. 12.
인간관계는 참 복잡한 것 같다. 어쩌면 정답이 없는 시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네기는 여기서 정답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정답은 없는 시험이기에 카네기가 쓴 말들은 완벽하지 않다. 현대 시점에서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나의 경우에는 마지막 챕터인 결혼에 관한 부분이 그랬다. 정말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한 말들은 새겨들으면 좋을 것이다. 아마도…?
김승옥 작가님의 수상작품집 중에서도 ‘포도밭 묘지’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어 이 리뷰를 쓰게 되었다. 포도밭 묘지에서는 그 시대의 상황이 잘 담겨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이 아닌 취업에 바로 뛰어들고, 취업 과정에서도 성적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외모 등의 이유로 채용되지 않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학벌이 중요해 대학과 회사생활을 동시에 하지만 이 조차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등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그 시대의 사회문제를 여실히 볼 수 있어서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이 책 속 시대 상황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 또한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 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 해맑고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책 속 주인공들이 웃음을 잃게된 이 안타까운 일이 더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노력하고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 드라마를 보고 난 뒤 흥미가 생겨 책을 읽게 되었다. 드라마도 책도 모두 읽은 다음 들었던 생각은 주인공인 안은영이 참 매력적인 사람이며, 나의 주변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은영은 자신이 뛰어나다거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밖에 젤리들을 처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운명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학생들을 위해 울분을 참아내고 뛰어나가는 것이다. 기존의 우리들이 봐왔던 흔한 영웅들의 마인드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쪽이 어쩐지 작품을 보는 나에게 조금 더 와닿았고, 또 공감이 되었다.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 덕분에 사건이 무사히 해결되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젤리와 이를 처치하는 무기들 등이 굉장히 특색있으면서도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감상했던 작품이었다. 매력적인 소재와 매력적인 주인공, 그리고 정세랑 작가님의 매력적인 필력이 함께 모여 시너지를 일으킨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