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1

 의학 소설로 실제로 작가가 의사였던 경험을 살려 구체적이고 현실감 느껴지는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나츠메 소세키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괴짜 내과 의사입니다. 괴짜인 것은 제쳐두고 실력 하나는 보장되어 그 실력을 바탕으로 환자를 치료해나가는 내용인데 본 에피소드에서는 29세 췌장암 환자와의 대립을 다루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리고 싶은 의사와 남은 시간을 병원이 아니라 가족 곁에서 보내고 싶은 환자 둘 다 잘못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립되는 것이 슬픈 상황인 것입니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저에게 좋게 여겨져 의학 콘텐츠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행복한 왕자

 어느 마을에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행복한 왕자라는 동상이 있었습니다. 한 제비는 왕자와 만나게 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왕자는 제비에게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보석들을 불쌍한 이들에게 나눠달라 부탁을 하게 됩니다. 제비는 왕자를 두고 갈 수 없어 겨울이 오기전에 남쪽으로 떠나야 했으나 그의 곁을 지키며 부탁을 계속 들어주다 그의 곁에서 동사를 하고 맙니다. 왕자 또한 보석을 계속 나눠주다 보니 볼품이 없어졌고 마을 사람들은 동상을 철거하고 그 심장까지도 용광로에 녹여 쓰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책은 흔히 알고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비슷한 얘기와 많이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동상이 불쌍하게 여겨지나 결국 천국에 가는 모습에 안심이 되며 이러한 삶은 나로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단편선)

 톨스토이 단편선 중 좋아하는 작품으로 작품 제목 그대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원래 하느님의 명을 받들던 대천사 미카일이 죄를 저질러 속세로 떨어지게 되는데 내려오면서 받은 세가지 질문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을 그를 거둬준 구두장 세묜 견습공 생활을 하며 깨닫게 되는 내용입니다. 답은 뻔하다면 뻔할 수 있지만 그를 표현하는 과정이 수려하게 표현되어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오로라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때때로 어떤 믿음은 이기적이다. 나는 믿음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믿는다는 말은 너를 믿고 있으니 나를 실망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다가왔고 그 믿음은 상대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부담으로 다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이기심 전에는 외로움이 있었다. 당신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는 혼자 남겨지기 싫다는 외로움이 있었고,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는 믿음에는 일방적인 이기심 전에 외로움이 있었다.

소설에서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나온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인가. 소설 내내 주인공인 최유진은 사랑과 믿음에 대해 고민한다. 그녀에게 믿음 없는 사랑은 가능하지만, 사랑 없는 믿음은 비참하다. 최유진은 도망치듯이 제주도에 도착하게 된다. 오세정이라는 친구의 이름으로 온 제주도에서 최유진은 또 다른 나인 오로라의 뒤에 숨는다. 평소에 하지 않을 행동들을 하고 오로라의 이름 뒤에 숨는다. 최유진에게 오로라는 그녀에게 자유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로라는 최유진이 다시 비밀을 만들도록 한다.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사랑을 숨길 수 없어요

 최유진이 떠나온 이유는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사랑했던 그에게 사실 아내가 있었고 사랑이라고 생각한 자신과 그의 관계는 불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최유진은 여전히 그를 사랑했고 그 사실을 들킬까 봐 그녀는 깊숙한 제주도로 숨게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로부터 도망치지만 결국 그녀는 그 진실을 마주한다. 마주한 진실을 인정하고 최유진은 오로라를 보내주게 된다.

 가끔 모든 것을 놓고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니면 낯선 곳에서 괜히 진짜 내가 아니라 다른 나를 꺼내서 내가 아닌 척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최유진은 그런 나의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긴 것 같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타인의 말에서 숨은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결국 나의 문제를 찾아내는 것도, 결국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너무 비슷해서 읽는 내내 더 몰입하게 되었다.

가장 큰 잘못은 네 잘못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 순전히 상대의 잘못만을 따져 물었다. 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취약해지니까.”

 최유진은 제 생각조차 정리가 되지 않아서 그녀의 생각은 난잡하고 어지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이해가 갔다. 사랑은 무엇이고 믿음은 무엇인가. 88p의 짧은 소설이지만 생각할 내용이 많아서 여러 번 다시 읽게 되었다겨울의 제주가 배경이라 소설에서는 내내 차가운 바람이 불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서늘해지는 요즘의 날씨에 딱 맞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믿음 사이 끝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오로라들키면 어떻게 되나요?“를 추천한다.

수레바퀴 아래서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 있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단 에세이지 않나? ······.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작가의 얼굴이 가깝게 느껴졌다. 데미안과 싯다르타에서 느꼈던 헤르만 헤세 특유의 플롯, 내지는 취향이 부분마다 만져지는 기분이다. 주인공 한스와 헤르만 헤세는 거의 동일한 삶을 살았다.

한스는 조용한 시골 마을의 영재로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신학교에 2등으로 입학한다.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방황하던 한스는 시인이자 반항아인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하일너와 사랑과 우정 사이의 관계를 보내는 사이. 우등생이던 한스의 성적은 떨어지고, 교육체계에 반항하던 하일너는 퇴학까지 당한다. 한스는 결국 무기력증과 우울증으로 공부를 놓게 된다. 치료를 위해 한스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마을 사람들은 실패자인 한스를 반기지 않는다. 매일 자살을 꿈꾸며 살아가던 한스에게 첫사랑인 엠마가 등장하나, 엠마 역시 한스를 떠나자 더욱 괴로워한다. 이후 한스는 견습공으로 들어가나 ‘신학생 대장장이’라는 놀림을 당하고, 스스로도 회의감에 빠져 산다. 결국 한스는 견습공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돌아가던 도중 강에 빠져 죽는다.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도 그렇다. 슈바르츠발트 산맥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14살 신학교에 진학하고 입학한 지 7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둔다. 이후 우울증에 빠진 헤세는 자살을 시도하나 미수로 끝난다. 이후 다른 학교에도 들어가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이후 시계공장의 견습공으로 들어가 일하다 관두고 서점 직원으로 취직해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시골 마을-신학교 입학-부적응-시계공장의 견습공까지. 너무나도 비슷하다. 주인공의 친구이자 존경의 대상인 하일너도 ‘헤르만’ 하일너이다. 마을에 나오는 목사와 몇몇 인물들의 이름은 실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변형해 사용했으며 비슷한 지명도 몇몇 보인다. 이렇게까지 닮으면 과연 자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원래 자전소설이란 이렇게나 밀접하게 닮아있는 건가? 그렇다면 작가 자기 생각과 경험한 일을 토대로 자유롭게 써 나가는 글 – 에세이와 무엇이 다른 건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둘의 차이는 사실과 허구의 차이라 나와 있었다. 간단명료한 답이나 그래도 여전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에세이는 사실이라 볼 수 있는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00% 사실들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사건과 진실이 다른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해 배치하는 것 또한 허구가 아닌가? 실제로 에세이에 등장하는 작가인 ‘나’는 원래의 나와는 조금 다르지 않나. 이렇듯 사실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묘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뉘앙스를 가질 수밖에 없고, 때로는 전혀 다른 것이 되기도 한다면, 원래 있던 사건들을 발단-전개-결말의 형식으로 구성하는 것도 에세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특히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이 주인공의 삶의 행적이 작가와 거의 동일하다면?

그만큼이나 이 책은 작가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주인공 한스의 생각도, 행동과 보는 시각도 닮아있어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자연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인간만이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난 듯 착각을 한다”라고 말했듯. 자연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시각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한스가 신학교의 정원을 둘러보는 묘사는 기껏해야 4~5줄인데, 시골의 자연을 묘사하는 대목은 거의 2페이지, 3페이지가량을 사용해 묘사한다.

작가와 매우 가까운 소설인 만큼,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레바퀴 아래에서는 훌륭한 비판 소설이지만 나에게는 비판 소설보다도 자전적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페스트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페스트》라는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진행하면서, 이 책이 가진 깊이와 난이도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이 독서 클럽의 도서로 선정되었을 때, 코로나를 겪은 경험 덕분에 《페스트》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 책으로 과연 토론할 주제가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읽어나가면서 그런 생각들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문체는 매우 수준 높았고 결코 단순한 책이 아니었으며, 독서 클럽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완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철학적 탐구를 가능하게 했다. 삶과 죽음, 재앙 속에서의 인간의 연대와 희망,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 등 수많은 주제가 책 곳곳에 녹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코로나를 겪었던 만큼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오랑시의 대처를 보며 코로나 초기 중국의 미흡한 대응이 떠올랐고, 주인공들의 연대를 보며 우리나라 의료진들의 노고가 생각났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연대 덕분에 결국 페스트가 물러나게 되는 장면에서 ‘나는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은 의무가 아니기에 재앙 속에서 나는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기자 랑베르가 처음에 오랑시를 떠나려 했던 모습에 깊이 공감했으며, ‘과연 재난 상황에서 랑베르처럼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후에 랑베르 또한 보건대에 합류해 페스트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내면을 성찰하게 하는 작품임을 느꼈다.

그리고 토론 중 교수님의 코멘트를 통해 알게 된 작가 알베르 카뮈의 성향, 실존주의 철학, 그리고 소설의 역사적 배경은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토론에서는 재앙 속에서 인간들이 보여주는 연대와 희망, 인간의 내면 탐구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멤버들의 각기 다른 의견을 통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교훈들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고, 이 책이 가진 철학적 깊이를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책을 읽기 전
제목만을 접했을 때 가진 의문, 차별주의자임에도 왜 앞에 ‘선량한’이라는 역설적인 칭호를 가졌을까-에 대해 저자는 소상히 알려주었다.
이는 사회에서 흔히 인식하지 못 하고 넘어가는 점들의 핵심을 짚어주어 타인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할 수 있었다. 그 과정으로 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보다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가 처음에 책을 쓰게 된 계기인 ‘결정 장애 이야기’처럼
나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럴 리가 없다며 자기방어를 꺼내고 부정도 많이 했다. 그러나 부정보다 수용도 많이 하고 개선의 노력도 많이 했기에 더
개선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영원한 천국 (정유정 장편소설)

절벽 끝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책이었다.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내용과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그걸 깨닫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몰랐다, 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인생을 살아가기 힘든 순간에는 살아가야 할 어떤 이유를 찾기 보다는 이미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지 스스로를 위로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 죽음을 선택 할 자유가 있다면, 그만큼 삶을 선택할 자유도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라는 구절도 좋았다. 죽음 앞에 선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절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모두가 그렇게라도 자살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꼭 무언가를 해내고 견뎌내야만 가치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사회보다는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용의자 X의 헌신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갈릴레오 시리즈 3)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유명하고 대표적인 추리 소설이다. 야스코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후, 야스코의 이웃 이시가미가 그녀의 범죄를 덮어주기 위한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추리 소설 답게 아무도 예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반전이 있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결말의 여운이 더 인상 깊었다. 
이시가미의 행동들은 정말 저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헌신적이다. 특히 그녀의 범죄 사실을 숨겨주기 위해 직접 저지른 일은 경악을 금치 못 할 정도였다. 복잡한 감정선을 이해 하는데에 큰 감정이 소모되었다. 기어코 제목처럼 끝까지 헌신을 해낸 이시가미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결말이었다. 이유가 사랑뿐은 아닌 것 같았다. 구하고자 했던 게 정말 야스코뿐이었을까?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장편소설)

이 책은 아주 쉽게 읽히는 편이었다. 동화 속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묘사 되는 것과 아주 무거운 이야기도 무던하게 흘러갔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었다. 죽은 자는 고백 할 수 없지만, 산자는 고백 해야 한다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살아있다면 그들이 가진 상처와 이야기를 풀어내야만 한다고 말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간들이 하는 교감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갈등 역시 아주 사소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통을 시작으로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