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미해 보는 시도와 다소 난해한 활자 그 중간에 끼임과 동시에 내 머리에 들어있던 전구 하나가 번뜩 켜진다. 청춘의 기습을 낭독하니 가슴 한편이 쿡쿡 찌르는 듯한 미세한 아픔을 느꼈다. 주워 담았는지 어디서 흘렸는지도 모를 손아귀 모양의 한탄 바구니를 든 채 쏜살같이 나만 백스텝을 자처하는, 버리지도 그렇다고 들고 다니지도 않을 책망으로 뒤덮이던 그날이 떠오른다. 물론 지금은 뿌리친 고역으로 단단한 새벽을 맞이하고 넘어야겠단 마음 하나 우두커니 새겨. 모양새가 달라졌지만 나 만큼은 알아볼 수 있는. 돌아보니 거침없이 내던졌고, 불태워진 밀알 한 줌은 되었을까 싶을 때 견고해진 태양이 저 너머 지평선에서 올라온다. 그동안 끌어안았던 것은 무엇일까, 두 번째로 만난 지구 서랍을 보며 느낀다. 지구에 한 발 내딛으며 귀함을 보탤 거라고 잠시 아픔을 잊어도 된다고. 허나 너무 잊진 말라는 궁리를 한다. 그렇게 주름진 귓가에 속삭였는데 말랑해진 공기 틈으로 아직 아물지 않았던 자국은 고개를 돌려도, 스쳐만 봐도 알아. 내가 그걸 헤아린다고 해서 누군가 덮어 놓은 얼룩을 말끔히 지울 수나 있나 싶어. 그걸 너도 원하는지. 그렇지만 마지막 밤의 골짜기를 무엇으로도 채우고 싶지 않았다. 가득 차 만족하는 모습이 완전할까 했는데, 두둥실 떠다니는 문장들을 비벼 실로 꼬아 까만 하늘 잠시 봉제해 둔다. 그 순간에도 과거에 넋을 놓아 무엇이라도 되랴 다단한 실 뭉탱이 움켜쥐고, 일말의 물음 없이. 여기까지 아득히 여백뿐인 청춘이었다.
소년이 온다 (한강 소설 l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그날의 총성은 고귀하고 보물 같은 시절을 가르고 달려 고요히 눈을 가렸다. 앳된 나이에 경험한 침묵의 숨결, 시뻘건 눈빛과 총구를 겨누던 차가운 몸뚱이를 뚜렷하게 기억할 수밖에. 세찬 비를 맞아 씻겨 내려가던 끈적이는 피와, 절대로 씻을 수 없는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고. 잔폭스러운 기억은 광장과 골목 곳곳에 거닐면서 안타깝고 암울한 소식으로 전해져. 그들은 못다 한 생을 생각해서라도 태양이 되어 익살스럽게 웃는다거나, 어쩌면 마른 낙엽잎이 떨어지더라도 다시금 새 순이 돋아날 수 있는 거름이 되어 현재의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지도 모른다. 하여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지 낱장에 스며든 이들의 처절한 신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텅 빈 가슴으로 관조하려니 들끓는 분노의 밑바닥을 바라보게 한다. 짐승의 머리를 한 거대 생물은 역겨운 냄새를 풍겼고, 그 주변은 숭고한 희생으로 물들어 고요히 막을 내린다. 이로써 이들에게 앗아간 것은 정신없이 흘러내린 고통의 세월이다. 스위치 누르듯 한 번에. 그것도 캄캄히. 과거형으로 끝나는 문장들처럼 다시 실상에서 볼 수 없게끔, 그 시절에 뭍은 별들은 뿔뿔이 흩어져 그래야만 하는 간절함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아픔은 아물지 않을 테니. 이윽고 그 끝에 남겨진 가족들은 먹고 마시고, 읽고 만나도 허기를 느낀다. 눈을 꼭 감은 혼들은 지금쯤 서로를 알아보았을까.
13계단(밀리언셀러 클럽 29)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작품의 주인공 미카미 준이치는 사람을 실수로 죽여 감옥에 가게 된다. 사건의 경위는 단순하지 않았지만, 준이치의 과거 전력과 사회적 편견이 그를 가혹한 처벌로 몰아넣었다. 준이치의 이야기는 개인의 실수가 어떻게 사회적 시스템과 맞물려 더 큰 비극을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사건의 전말이 단순한 방어 행위였음을 알게 된 독자는 준이치에게 내려진 형량이 과연 공정했는지 고민하게 된다.(물론 끝에 반전이 있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랬을 것 같다.)
교도관 난고 쇼지의 시선은 사형제도의 본질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사형 집행관으로서 그는 법을 집행하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인간적 갈등과 도덕적 딜레마를 겪는다. 첫 번째 집행에서는 피해자 가족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을 정당화했지만, 두 번째 집행에서는 이미 용서를 받은 사람을 사형시켜야 했던 딜레마에 빠진다. 난고의 경험은 사형이 단순히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폭력의 반복일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준이치에게 누명을 씌우고 사건을 조작한 사무라 마츠오는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교훈으로 사형제도의 필요성이 누군가 대신 응징을 하여 복수의 연쇄를 끊는 것이 목적이라는 견해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제목인 13계단은 사형수의 마지막 계단과 사형이 집행되기까지의 절차를 상징한다. 소설은 준이치와 난고, 그리고 사무라 마츠오의 이야기를 통해 사형제도의 존재 이유와 문제점을 탐구한다. 또한 저자의 심도 있는 자료조사는 사형제도에 대한 존폐여부를 고민하게 한다.
13계단은 소설이라는 형태를 통해 넘어 정의와 형벌의 목적, 그리고 사형제도에 대한 여러 관점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만약 사형제도와 형벌 그리고 교화에 대해 관심있다면 읽어볼 만한 소설인 것 같다.
한마디 먼저 건넸을 뿐인데 (아무도 몰라주던 나를 모두가 알아주기 시작했다)
기후, 기회 (파국의 시대에 맞서기 위한 기후 전망과 전략)
침묵의 봄 (개정증보판)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독자를 끝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서스펜스 스릴러로, 살인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와 사회적 배경이 치밀하게 얽혀있다.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전을 경험할 수 있었고 사건의 전말을 추리하게 되었다. 특히, 예상치 못한 반전과 깊이 있는 캐릭터 묘사가 돋보이며, 각 인물의 내면이 세밀하게 드러나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탐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은 독자에게 도덕적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다. 전반적으로 몰입감이 뛰어나며, 사회적 메시지와 스릴을 동시에 담은 수작으로 인상깊게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