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포노포노의 비밀 (부와 건강 평화를 부르는 하와이인들의 지혜)

1. 이 책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3학년때, 진로 선생님께서 메모지에 이 책 제목을 적어서 주셨다. 내가 읽으면 참 좋을 거 같다는 말씀과 함께 쪽지를 받게 되었다. 타인에게 책 추천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 이 책이 나와 인연을 맺게 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점에 가서 책을 사게 되었다.
2. 간략한 내용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지니고 살아간다. 나 또한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고민이 많이 있다. 모든 걱정들을 없애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라는 질문에 이 책은 이렇게 답을 해주고 있다. “마음을 정화하세요.” 마음을 정화한다는 건 무슨 뜻 일까 곰곰이 생각 해 보았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피어난 모든 감정의 원인들을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 어떠한 문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 모두 내 내면에서 발생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피어난 부정적인 생각들과 걱정들을 어떻게 정화시킬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를 무한반복 하는 것. 내 마음이 정화될 때 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초반에서 중반정도 까지는 이 책을 읽으며 의심을 품었다. ‘저게 말이 돼?’,’내가 도대체 뭘 읽고 있는거지?’ 이러한 생각들을 수도없이 했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것을 끝마친 나는 그때서야 이 책이 나에게 주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가득한 책이지만 그 의미가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며 읽는것이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이였다.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 모든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0(제로) 상태로 돌아가야한다. 모든 상황의 흐름을 나 자신이 아닌 영감에 맡기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렇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고민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
나의 이 후기가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고, 다음으로는 내면에 있는 고통과 힘듦을 끊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어가며 의구심을 가졌던 많은 부분들이 분명히 이해가 가는 파트가 생길 것이며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책 내용의 중반까지만 해도 그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을 하였지만 완독한 후에는 벌써 주변인 2명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4. 추가적인 사실
나는 책을 읽을 때 보통 작가의 생김새를 상상하거나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읽곤 한다. 분명 책에 등장한 작가는 백인의 40대 여성, 휴 렌 박사는 인도의 50대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본 결과 조 바이텔 작가는 미국의 백인 남성, 휴 렌 박사는 일본 남성 이였다…
사실상 종교적인 부분이 내포되어 있긴 하지만 본인이 무교인 경우 중립적인 관점을 가지고 읽으면 훨씬 좋을 거 같다.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장편소설)

가상의 섬 ‘무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무이라는 섬이 어떤 모습일지 눈에 그려지는 글이다. 읽다 보면 이 섬이 가상의 섬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글을 아우르는 키워드가 바로 ‘재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정글이라는 재난 지역 관광 회사에서 근무하는 요나는 위기를 겪다 무이섬으로 관광객인척 출장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무이 사람들과 재난을 인위적으로 만들게 되고 상품화 할 계획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POUL이란 큰 회사의 자본에 약자들이 희생 당한다. 그리고 무이 섬에 실제 재난 재해가 찾아오는데 실제 재난 앞에서는 오히려 평등하게 재산,인종,권력에 무관하게 굴복하게 된다. 
무이 섬의 재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었다. 사진이나 관광 따위로 존재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재난 지역 여행’이라는 소재로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카타르시즘을 느끼는 이기적인 위안까지 상품화가 되는 자본주의 섭리와 이에 대한 비판이 책 전반에 은은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주인공 요나의 숨겨진 의미가 중요한데 요나는 실제 재난과 다를 바 없는 ‘정글’같은 사회에 살아오던 인물이며 감수성을 잃은 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나 무이라는 섬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버린 요나는 인위적 공포가 아닌 진짜 공포를 느끼게 되고, 자본주의에서 감수성을 가지게 된 주인공은 이 세계에서 이탈하게 된다.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진짜 인생을 찾아 결국 세트장 밖으로 나간 것 역시 쇼 안의 ‘트루먼’ 캐릭터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트루먼이’이라는 인간에게는 그 소멸이 해피엔딩이었다. 밤의 여행자들의 요나 역시 인위적인 재난 현장에서 벗어나 낭만적 실종을 맞이한 셈이다. 

재난 소설이라는 표면적 주제 아래에 보이지 않는 진짜 재난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소설이다. 이러한 양면적 이야기 속에서 무시무시한 자연 재해가 오히려 공평하고 덜 끔찍한 재난처럼 느껴지는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도서 유튜버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는 도서이다. 작가가 존경했던 학자의 일생의 연대기를 서술하는 식으로 전개되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고 하는 학자가 평생 동안 기록해온 분류가 수포로 돌아가 버렸음에도 바로 좌절하지 않고 물고기에 새 이름표를 괴는 정신력의 근원을 탐구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존경했던 학자가 존경하기에 다소 실망스러운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자의 분류학 업적을 몽땅 무너뜨릴 복수를 하며 끝이 난다. 
그 복수의 내용은 이 책의 제목과도 같다. ‘물고기’ 라는 말이 존재할 수가 없단 것이다. 물고기라는 명칭은 현대 과학계에선 인간, 동물, 곤충 등 물 밖의 모든 종을 ‘산고기’ 라고 지칭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타 조던’이 무너지던 순간을 계기로 존경해왔는데 마침내 작가는 학자를 직접 무너뜨린다. 학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피어나며 복수로 흐르는 글의 갑작스러운 흐름이 유쾌했으며, 반전이 핵심인 이 글의 제목이 복수의 내용 전부를 나타내는 말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반전으로 느껴졌다. 복수의 정의가 보통 사랑, 돈, 명예로 다양하겠지만 이 작가가 학자에게 한 복수는 학자의 팬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맞춤형 복수를 했다. 
마침내 어류라는 명칭은 인간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말이며, 지구의 모든 것은 그물망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우위가 없음을 통찰하며 끝난다. 숨어 있는 삶의 질서를 보여주며 이 질서는 절대 인간이 정리할 수 없음을 보여준 셈이다.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지구 상의 모든 생물에 대한 경의를 느꼈다. 

바이마르의 세기 (독일 망명자들과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전쟁에 패배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급격스럽게 무너지면서 나치당이 집권하기 직전에 미국으로 망명한, 민주주의 이념을 추구했던 5명의 독일 지식인들(카를 J.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프렝켈, 발데마르 구리안, 카를 뢰벤슈타인, 한스 모겐소 등)이 훗날 미국 중심의 자유 민주주의적 세계 질서를 건설하는데 기여했던 역사적 결실에 관해 기술한다. 주제만 봐서는 대단히 지루하고 딱딱한 내용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민주주의가 사실상 절대적인 위격을 지닌 오늘날 같은 시대에 있어서 한번쯤은 그것이 과연 인류에게 필연적인 산물인가를 의심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지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울 것이다. 특히나, 각기 저마다 다다른 사상적 배경을 지닌 5명의 지식인들 중 하나였던 ‘카를 뢰벤슈타인’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민주주의에 반하는 정치적 입장들만큼은 예외로 간주하여 박해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전투적 민주주의”를 내세움으로써 미국 정부에 공헌을 하였는데, 이 전체 과정을 다루는 부문은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것이다.  

미니마 모랄리아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

간혹 일각에서나 그리고 옮긴이 해제에서도 이 책을 두고 아도르노를 입문하기 좋은 저술이라 평하지만, 실상은 흔히 말해서 사상의 단초를 습득할 수 있는 그런 입문서가 아니다. 애초에 헌사(서론) 부분에서부터 아도르노는 무언가 이론의 기초적인 것들을 제공해준다고 직접 말하지도 않고 있고, 다만 이론적인 부분을 최소화했을 뿐이라고만 밝혔다.

그렇기에 사실 나 같이 아도르노에 대해서 대충 주워들은 수준만으로는 이 책을 대략적이나마도 소화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으며, 아예 처음 접해본 사람이라면 정말 난해하기 짝이 없는 독서가 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이 책은 어떤 명확한 주제의식 하에 종합적으로 체계성 있게 서술한 것이 아닌 여러 크고 작은 개별적인 주제들을 엮어낸 일종의 에세이로서, 그것도 온갖 현학적인 용어와 문장들로 점철되어 있어 다소 무게감이 있는 수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여타 철학서들보다는 접근성이 그리 까다롭지만은 않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주제적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총체적인 수준의 독해 없이 (이론적인 용어로 가득한 서론 부분만을 제외한다면)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읽어만 두어도 대충 ‘아도르노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몇 가지의 부분적인 인상이나 스케치 정도만이라도 얻을 수는 있다. 
이처럼의 아도르노에 대한 사상적 및 학술적 관심을 제외하더라도,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의 몇몇 부분들은 종종 큰 울림들을 준다. 반세기가 지난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현실과 삶에 관한 그의 뼈아픈 통찰이 담긴 진술들은 지금 여기, 이곳에서의 이질적인 사람에게도 큰 고심의 족적들을 남겨준다. 사소한 행복이나 자존감을 구실로 별 실속도 없는 말만 그럴싸하게 내놓은 글들보다는, 적어도 내게는 다소 울적한 감상이 묻어나더라도 저 깊게 침전되어 있는 주체적 의식을 민감하게 건들이는 이 책만의 섬세하고 예리한 글들이 오히려 진정성있게 큰 위안을 준다.    

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에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당연하게 생각할 법한 내용들을 모두 부정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화자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점점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신경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살게 되었다.

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생각할 거리가 많다. 
우선 이 책은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철학자이자 작가인 기시미 이치로가 쓴 책이다.
아들러 심리학의 반대되는 대표적인 철학으로는 프로이트가 있는데, 프로이트 심리학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토론거리가 많지 않을까싶다.
내가 프로이트 심리학에 좀 더 공감하기도 하고 책의 내용이 생소하기도 하면서 낯설어 나와는 분위기가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든 책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 중간에 감정의 컨트롤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그때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타인에게 감정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내 몫.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또한, 책에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과제, 세상의 중심은 나. 등 타인과의 관계를 위주로 서술이 되어있는데 나와 남에 대한 관계를 재정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지구 끝의 온실 (여름 에디션,김초엽 장편소설)

  이 작품의 강점은 탄탄한 스토리, 매력있고 입체적인 인물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세세한 과학적 내용이다. 특히 식물에 관한 세세한 과학적 내용들이 식물이라는 소재를 한층 더 매력있게 만들어 주었다.
 
  각 챕터는 아영, 나오미와 아마라, 지수의 시점으로 주로 전개되었으며, 단독의 챕터로 보기에는 연관이 없어 보이나 일련의 사건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구성이었다. 구성 부분에서 프롤로그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아영의 시점으로 소설을 시작한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내용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세세하고 과학적인 식물에 대한 내용이었다. 생명과학 시간에 식물 생태계를 공부하면서 얼핏 들었던 용어들이 나와서 반가웠고 그것 덕에 작품을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었다. 이런 과학적 내용들이 자칫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졌다고 느껴질 수 있는 소설의 내용을 현실과 교묘히 연결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또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책의 제목이었다. 외부 환경을 차단하고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성해 식물을 키우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온실이 굉장히 신비스러운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지 온실이라는 공간 자체에서 오는 흥미가 ‘지구 끝의’라는 수식어와 합쳐지면서 더 큰 흥미를 유발했고 이 ‘지구 끝의 온실’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또한 이 수식어가 레이첼의 온실을 예쁘게 표현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신선했던 것은 식물에 대한 작가의 묘사였다. 이 책을 통해 식물에게서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소리 없이 조금씩 천천히 퍼져 나가 지표를 덮는 식물의 힘이 소설 속에 굉장히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피라미드형 생물관의 가장 아래에 속하는 식물이 피라미드 위에 속하는 동물에 강한 살상력을 갖는 설정도 식물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굳이 아쉬웠던 점을 찾자면 지수와 레이첼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나서 회포라도 풀며 웃는 결말을 기대했지만 그런 결말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을 인정하고 그 때 같이 떠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생각한 점은 이 작가가 그리는 지구는 굉장히 따듯하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무리 하겠다.
“문명이 망한 풍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문명을 되찾으려는 사람이 좋아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쓴다.”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이따금씩 머리 아플 정도로 사색에 잠겨본 사람이라면 그토록 애써 공을 들인 생각의 결과물이 한 순간에 상실되어버린 탓에 종종 공상 속에서 길을 헤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위 영감을 떠올려보는 체험이 그렇다. 고심 끝에 마치 하늘에서 무엇인가 번개처럼 뚝 떨어져 생각의 흐름이 명료해지고 그럼으로써 기존의 문제를 해결해줄 실마리를 마침내 잡았다는 기쁨에 도취한 것이 무색할 만큼, 직감했던 귀중한 진리를 막상 구체적인 글로 옮겨보려고 하면 그 잠깐 사이에 영감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아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 종종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이토록 머리 속에는 분명 풍부한 착상들로 가득차 있건만 이 착상들은 마치 거품과도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그라지며, 그래서 아무리 신속히 담아보려고 해도 집중하는 순간 그 중 건져내는건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우리가 평소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의 느슨한 흐름은 정신의 응축된 기억을 아주 흐릿한 파편들로 분해할 뿐더러, 이 남은 파편들마저도 제대로 간수하지 않으면 그 속에 담긴 소중한 기쁨들이 어느샌가 형체 없는 기류로 웃도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고통을 방지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시적인 언어로 하여금 우리 감각에 되새겨 놓기도 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독일 철학자이자 문예 비평가인 발터 벤야민은 바로 앞서 서술한 ‘영감에 대한 기억’이라는 문제를 깊이 사유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벤야민의 사상은 당시로선 잘 주목받진 못하였으나 비교적 최근 들어서야 인문 분과의 여러 지식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만큼 오늘날에도 꽤나 현대적인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달리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벤야민의 글은 지금 봐서도 무척 난해하고 심오하기 짝이 없을 그런 초현실적인 문체를 자랑한다고도 얘기할 수 있다.

 

물론 벤야민의 이런 성향이 결코 아무 이유없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의 사상은 겉보기에 아주 비일관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아 접근하기 까다롭지만, 주의깊게 반복적으로 읽다보면 나름대로 벤야민이 완고하게 의도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는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일방통행로』는 그와 같은 벤야민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문법이 잘 드러나고 있는 텍스트 중 하나이다. 책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단어들을 모티브로 한 여러 소제목들이 붙여진 수십가지의 길고 짧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충 훑어만 보기엔 아주 낯선 은유들로 가득찬 문단들이 무정형하게 나열되어 있어 조금은 다른 방식의 독해법을 요한다.

소위 ‘몽타주식 글쓰기’라고 일컬어 불리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갖가지 학술적 · 문학적 · 정치사회적 비평 외에 꿈, 여행기, 일상적 경험, 공상, 내면 관찰 등의 여러 사소하고 지엽적인 주제들까지 아우르면서 거기에 벤야민 자신의 주관이 덧붙여지는 양식이다.

 

『일방통행로』의 서두를 장식하는 다음 구절을 읽어보도록 하자.

 

<주유소>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보다는 ‘사실’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한 번도, 그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확신을 뒷받침한 적이 없었던 ‘사실’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진정한 문학적 활동을 위해 문학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라는 요구를 할 수 없다. 그러한 요구야말로 문학적 활동이 생산적이지 못함을 보여주는 흔한 표현이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신속한 언어만이 순간 포착 능력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견해란 사회생활이라는 거대한 기구에서 윤활유와 같다. 우리가 할 일은 엔진에 다가가서 그 위에 윤활유를 쏟아 붓는 것이 아니다. 숨겨져 있는, 그러나 반드시 그 자리를 알아내야 할 대갈못과 이음새에 기름을 약간 뿌리는 것이다.”

 

여기서 벤야민이 말미에 거론하고 있는 “기름”이란 “윤활유”로 상징되고 있는 사회적 통념 및 단편적인 지식정보들과는 다른 새로운 표현 양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로 따지면 예를 들어 짧은 시간 안에 심도 깊은 내용들을 집약적으로 볼 수 있는 각종 뉴미디어 매체가 그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요컨대 즉각 명료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들로만 조직되고 작동하는 사회인 만큼, 더이상 장대한 규모의 서사적 표현이나 사변적인 논증은 많은 이들에게 먹혀들지 않는다. 기껏해야 교양이라는 소비재로 활용되는 것에 그칠 뿐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한마디로 “설득은 비생산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설득”이 아닌 ‘생산적인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인간이 진실로 희망할 수 있는 참된 ‘진실’을 감각적으로 함축한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골동품> ― ‘기도바퀴’

“의지에 생생한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표상된 이미지뿐이다. 그에 반해 단순한 말에서는 의지가 너무 지나치게 불붙어 이내 훨훨 타버릴 수 있다. 정확하게 이미지로 표상하는 일이 없이 건전한 의지란 있을 수 없다. 신경감응이 없이 표상이란 없다. (…)”

 

이러한 관찰은 어쩌면 지금처럼 미디어의 찬란한 광휘들로 굽어치는 고차적인 현 단계의 정보화 사회에야말로 가장 들어맞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만약 우리 중 누군가라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희망을 지니고 있다면, 이를 실현시킬 힘은 벤야민이 우리에게 남겨준 심대한 고찰 속에서 무언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벤야민이 주창했던 “실천과 글쓰기가 일치하는 경우”에 진정으로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분명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는 내가 아니게 되었음을 바라면서 읽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이 불안감을 위로라도 해 주는 듯 이 책은 내게 다가왔다.
많은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온전히 나로서, 나와 같이 있음으로서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동행하면서, 앞으로 닥칠 역경과 고난들을 함께 이겨나갈 배우자 옆에 있는 든든한 사람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회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지혜와 슬기를 십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전부터 했었던 고민을 다시금 회상하면서 스스로 경각심을 불러올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에게 몹시 감사하다. 졸업 전에 학교에 가서 다시금 대출하여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