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정세랑 장편소설)

이 소설은 마지막이 피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내가 흔히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각자 개인의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책이었다. 각 개인의 끔찍한 삶들을 보여준뒤에 마지막에서는 그들이 다같이 있던 곳이 영화관이라는 것에 적잖이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내가 영화관에 가서 본 사람들이 그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뀌게 해 준 책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장편소설)

내가 읽었던 소설중 가장 설레고, 또 현실적이며, 감정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낸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본 후에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여운이 남았었다. 말도 안되지만 주인공인 진솔과 건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게한 소설이다. 

죄와 벌 1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죄와 벌>을 완독했다. 시험기간을 포함하여 거의 한달 반가량 붙잡고 있었지만 나름 처음 읽어낸 장편이라 뿌듯하기도 하다. 이 책은 나의 인생책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재미있었다. 어떤 것에 흥미를 쉽게 잃는 편인 나는, 단편 소설도 한 번 질리면 바로 덮어버린다. 그런 내가 이 길고 긴 <죄와 벌>을 읽을 땐 단 한번도 흐름이 끊기는 일이 없었다. 매 순간이 몰입의 연속이었다. 누가 나에게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죄와 벌>을 읽으라고 할 것이다. 다만, 러시아 문학 특유의 긴 이름과 다양한 별명에 더해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장광설 때문에 읽기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면서 한번쯤은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죄와 벌>은 살인자의 심리를 비추는 심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자의 이성주의적 사상을 기반으로, 그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종국적으로는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 사랑, 고뇌를 그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심리묘사, 구원, 이성주의에 대한 지적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럼 내가 느낀 이 소설의 주요 포인트를 몇 가지 이야기해보겠다.

심리묘사

이 소설이 내 인생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 첫 번째가 바로 ‘심리묘사’이다. 나는 소설의 심리묘사를 참 좋아하는데, 감정이 빨려 들어가 마치 다른 세계로 인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묘사가 극적일수록 심연의 느낌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심리묘사에 아주 능통하다. 라스콜니코프가 격정, 소냐의 순수한 마음, 스비드리가일로프의 광기와 절망 등 심오하면서도 양극단의 감정들을 한 작품 안에서 느낄 수 있다. 

작품을 읽어 본 사람은, 인물의 대사가 과하게 긴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을 수 있다. 이게 바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특유의 장광설인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부분이다. 난 이 장광설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를 통해 문제 상황과 인물 심리에 깊이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몰입하면 마치 트랜스 상태처럼 종종 숨 쉬는 것을 잊을 때도 있는데, 그때 나는 문학 읽기의 쾌락을 느낀다. 특히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장광설은 최고의 몰입도를 선사한다.

이성주의 지적

나는 라스콜니코프의 사상이 이성주의 혹은 계몽주의와 비슷하게 보였다. 그의 사상을 두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하나의 악으로 수천의 선을 얻을 수 있다면 악을 행해도 좋다.’, ‘세상엔 비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 있는데, 비범한 인물은 죄를 넘어선다.’ 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은 비범한 사람인지 평범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두 사람을 살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깨닫자 고통스러워한다. 그러한 그는 그럼에도 소냐의 사랑으로 구원받게 되는데, 저자는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 라고 언급한다. 나는 이 대목을 보고 저자가 ‘이성주의(계몽주의)에 대한 경계’를 암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라스콜니코프의 이론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 맞지만, 그는 법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가치를 추구했다. 그 점이 내가 공감하고 배우고 싶은 점이다. 사회에 얽매이는 자만이 존재한다면, 누가 이 세상을 다음 단계로 이끌 수 있을까. 또한 이성과 감성에 대해 나는 그 둘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성주의와 휴머니즘 그 사이 어딘가. 그곳에서 세상을 발전시키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소중함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는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감옥에서 인생의 의미를 자문하지만, 결국 자살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외부에 대해 귀를 닫고 자기기만의 늪에서 혼자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는 미래가 있었고, 소냐의 사랑 덕분에 그 미래에 발을 딛게 되었다. 주인공을 심문했던 포르피리의 ‘삶을 소중히 하라’는 조언도 생각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에 “삶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하는데, 사람의 인생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기

요즘 자주 듣는 스월비(Swervy)의 January Embers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Ember가 ‘잉걸불’이라는 뜻인데, 다 타지 아니한 장작불을 의미한다. 라스콜니코프의 삶, 다 타버려서 회색으로 죽을 뻔 했던 그의 삶이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삶이 잉걸불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모두 잉걸불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우리는 여기저기에 치이고, 지치며 다 타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더 타게 해줄 어떤 것을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장편소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노숙자와의 관계를 시작으로 편의점 알바생이 된 노숙자는 예상치 못하게 편의점 주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작은 호의로 큰 도움을 받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현실의 각박한 사회에서 한줄기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1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 이미예 장편소설)

오랫동안 꿈꿔왔떤 꿈백화점에서 일하게된 페니를 시점으로 꾸려나가지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유치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부끄럽고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정말 어른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꿈에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꿈은 왜꾸는 것일까? 보통 꿈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일상에서 인상깊었던 것, 혹은 정말 원하는 것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들이 주가 된다. 정말 원하는 것을 이루는 꿈을 꾸고나면 우리는 딱 깼을 때 잠시나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꿈으로나마 나의 진정한 꿈을 경험해봤다는 것이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꿈이라는 것을 자면서 꾸는 꿈으로 풀어나갔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되고싶은 꿈에대해서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데미안(초판본)(1919년 초판본 오리지널 표지 디자인)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이 책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에밀 싱클레어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자기 성찰적 이야기이다. 
그는 어릴적 데미안이라는 멘토를 만나 , 데미안과 그 어머니를 지향하며 자아를 찾아 나가기 시작하며 그 과정속에서 방황도 하며 , 전쟁이라는 환경속에서도 마침내 온전한 자아를 찾아낸다. 
싱클레어는 내면적 탐구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아를 찾는데 사실 이건 그다지 특별할것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 여기서 조금 주목할점이 있다면 , 싱클레어의 자아는 나말고 다른이들을 존중하면서 한층 더 발전하게되고 , 그 자아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속에서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싱클레어는 청소년기~대학생 무렵에 자아를 확립해가는 과정중에 다른 또래와의 교류를 거의 다 끊어버리고 , 타인을 배척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다.
그런 그는 대학생활을 하며 데미안과 그 공동체속에서 생활하며 이제는 데미안과 자신을 제외한 다른이들이 이상적으로 불완전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더이상 그들을 배척한다거나 무조건적이게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잘못됬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땅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 속에서 싱클레어는 한층 더 성숙한 자아를 보여주게 된다. 
두번째로는 그의 자아가 전쟁이라는 상황속에서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와의 사랑속에서 자아를 향한 수련을 계속해나가고 있었는데 1차세계대전이 그 방해물이 되고만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그동안은 미성숙하다고 무시하던 타인들 또한 공동의 책임을 다하며 운명을 향해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마침내 포격으로 인해 부상을 당한후 그는 야전병원에서 데미안과 조우한뒤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찾게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인간은 예기치못하고 원하지않는 고통과 도전속에서 진정한 성장을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알고있다. 온실속 화초는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는것을 . 
싱클레어 또한 데미안과 그 어머니의 품속에서 행복했으나 마음 한켠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갈망에 시달렸고 결국 진정한 깨달음과 자아는 전쟁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가지 이야기를 통해 볼때 , 나는 인간이 성장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선 내면의 탐구 , 비판적 사고 모두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 싱클레어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 성장에 마침표를 찍는것은 바로 나와 다른 타인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자세와 , 내가 원하지 않는 현실의 고통과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이겨내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곧 싱클레어가 진정한 신으로 모신 아브락사스 ( 선과 악 모두를 포용하는 신) 의 모습 아닐까? 
이외에도 이 책에서 주는 교훈은 여러가지이다. 현실에 책임지는 자세 등등 .. 하지만 내가 감명깊게 느낀바 위주로 적어보았다. 
우리 세대는 이전 그 어느세대보다 빠른 변화와 발전속에서 살아가야할 세대라고 생각된다. 
그 속에서 이리 저리 흔들리고 혼란에 빠지기도 쉽고 지치는 순간이 올것이다. 
그 순간마다 소설 데미안의 싱클레어를 따라 나만의 자아를 찾아가보면 어떨까?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그림을 배울때 해부학을 먼저 배운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 응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플롯이라는 이야기의 뼈대는 그 가짓수가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응용한 이야기들은 셀수 가 없다. 이 책은 창작을 함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뼈대를 제공한다. 컨텐츠를 만드는 직업을 원한다면 꼭 필요한 책이다..
 

최강의 인생 (세상의 뻔한 공식을 깨부순 게임 체인저들의 44가지 법칙)

 결국엔 사람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평생  발버둥 치는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목표를 크게 잡아야만 한다. 작은 목표에 익숙해지다보면 자신의  유전자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보지 못할테니 말이다.
그러니 목표를 크게 잡자. 원하는 모습에만 집중하자. 그것이 원하는 것을 이룬 자들의 스타트였다.

피어라 수선화

<피어라 수선화>는 공선옥 소설가의 데뷔 소설 등이 들어있는 소설집이다.
‘지금과 연관이 있지만 색다른 시대의 아주 옛날 것이 되어버린 30 여 년 전 소설’을 읽고 감상을 잘 남기기 위해선 내가 산 시대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왜 이 소설에서 도움을 얻었는가?’ 말하며 서평을 쓰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도움을 베풀며 살았다. 지금 죽어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는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늦은 여름의 코스모스가 만개할 때 보기는 예쁘나, 꺾이고 시들 땐 추하다. 목숨을 부지하기 때문에 추해지는 것이다. 꽃은 씨 뿌리고 스스로 죽으려 드는데 사람은 암만 압박을 받아도 쉽사리 죽지 않는다.’
보고 들은 것을 머릿속에서 짜 맞추며, 말도 안 되는 생각인지 말이 되는 생각인지 평가질도 하면서 내가 사춘기 때 내렸던 생각이 이런 식이었다.
나도 철이 없지만 주변에 꺼내줄 사람 찾기도 힘들었다. 
60 세가 넘으면 한강 다리에서 자살하겠다고 농담이나 쑤시던 친구는 고등학교 때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다가 코로나를 맞았다. 
내 앞에서 흥분하며 가족 흉을 보던 애는 얘기 꺼내기도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다. 
허울 뿐인 명문고에서 직사하게 고생하던 다른 애는 졸업할 때까지 쓴맛을 보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문학과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문학 선생, 역사 선생한테 생각을 주입 받았다. 
교훈에 역사를 배우자는 말은 왜 있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열쇠를 삼킨 채 참거나 대들며 무사히 졸업을 했다. 
졸업하고 보니 문득, 교과서에 실려있던 누구도 잘 공감 못하던 소설로 시험 문제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중2 때 국어 선생님의 고충이 떠올랐다. 
그 소설은 공선옥 소설가의 <일가>인데, 도서관에 데려가도 맨날 청소년 소설에서 야시꾸리한 부분을 찾아 읽고 까 뒤집는 웃음소리를 터트리는 애들을 데리고 소설을 읽히고 시험을 쳐야 하는 국어 선생님의 자괴감을 지금도 헤아릴 수 없다. 
아무튼 그 소설은 그 당시 교실의 분위기 때문인지 흥미로운 소설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공선옥 작가의 이 책을 보았을 때 꺼내 읽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같잖은 흥미 따위가 진지한 생각으로 바뀌는 조화였을 지도 모른다.

티비를 보면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PTSD’라는 개념조차 잘 모르던 90년대 초반의 광주직할시 사람들은 도대체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을까 생각하면 막막하게 느껴진다. 가뭄 때문에 급수가 삼일제가 되어버리자 바께쓰 한 통이라도 물을 얻으려고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양동이를 대 놓았다가 예고도 없이 급수가 되어서 아랫집까지 물이 새는 일, 5월만 되면 자신이 ‘허깨비’같이 느껴지며 일도 잘 못하고 축 늘어지는 아저씨, 온갖 욕을 들어 먹으면서도 엄마가 그리워지는 미혼모 이야기까지 우리가 잊고 사는 90년대 사람들의 처지가 이 책에서 생동감 있게 나오기 때문에 상처가 많으신 우리 부모님을 이해하는 데도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많았다.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는 누구도 부럽지 않게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픔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조숙하다는 둥 철 좀 들라는 둥 다그치기 보다는 서로 의지가 되는 진정한 의미의 성숙을 도움과 함께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5.18도 내 삶의 안 좋은 기억들도 들러붙는 ‘구신’이 아니라 아픔으로 상처로 당당히 인정받을 것이다.





더 셜리 클럽 (박서련 장편소설)

더 셜리 클럽은 ‘따뜻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미디로 정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주인공 셜리(한국이름은 설희)의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멜버른 축제에서 ‘셜리 클럽’의 행진을 보게된다. 셜리 클럽이 자신과 같은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들에게 매료되어 행진을 따라간다. 클럽에 가입하고 싶어진 셜리는 이끌리듯 이들을 따라간다. 머뭇거리고 있는 셜리에게 운명처럼 보랏빛 목소리를 가진 S가 등장해 친구를 맺게 된다. S의 도움으로 임시 명예 회원 신분으로 셜리 클럽에 가입에 성공한다. 셜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임시 명예 회원인 셜리에게 사랑을 나눈다. 집에 모여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일터에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셜리들은 더욱 돈독해진다.
셜리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보랏빛 목소리 S와의 관계도 흥미진진하다. S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단지 S의 목소리가 보랏빛이라는 사실만 존재한다. 하지만 셜리는 S의 목소리만 들으면 용감해진다. 그리고 S가 곁에 있기에 셜리는 나아 갈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하는 말과 행동이 사랑이라는 걸 알아 챘을 때, 이들은 한층 더 돈독해진다. 
나이도 인종도 관심사도 모두 다르지만 이름 하나는 같은 이들의 우정이 참으로 따뜻하다. 우리는 살면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몇 명이나 만날까? 그리고 그들과 우정을 나누며 돈독해지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말 동화같은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 소설 속에 푹 빠지게 된다. 셜리 클럽에 셜리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셜리고 모두 셜리를 아낀다. 셜리를 돕는게 이들을 돕는 일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