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한 권으로 현실 세계를 통달하는 지식 여행서)

이번 독서클럽을 진행하면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으로 조원들과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이 책으로 토론하면서  현시대의 상황이나 이슈들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토론을 진행하며 알게 되어 뜻깊은 활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룰루 밀러가 쓴 책으로,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이 자연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그 이해를 세분화하려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전개가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는 ‘데이비드’라는 인물에 대한 위인전처럼 느껴지다가도, 곧 작가 자신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가 뒤섞이며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자연과 인간의 이해에 대해 보다 다층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은 우리가 세상과 사람을 분류하고 체계화하려는 욕구가 결국 얼마나 편협한 시각을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특히, 인간이 만들어낸 분류와 질서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책을 통해 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비유적 표현이 깊이 와 닿았다. 이 말은 단순히 우리가 ‘어류’라는 카테고리로 모든 물고기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제한적이고 불완전한지에 대한 비판이라 느껴졌다. 세상과 자연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범주화하려는 시도가 결국 다양한 관점을 놓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본능적인 욕구에 의해 많은 것을 분류하지만, 그 분류가 오히려 그 자체로 세상을 왜곡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의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평생 동안 자연의 질서를 확립하려 애썼다. 그는 생물의 표본을 수집하고, 그 표본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질서를 밝히려 했고, 이를 통해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작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과도한 집착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그는 편협한 믿음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생물들을 분류할 때 특정한 기준을 세웠고, 이 기준은 종종 인간의 신념과 편의에 맞게 재편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생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우월함’과 ‘하등함’을 정의하려 했고, 이는 우생학이라는 위험한 사상으로 이어졌다. 그는 세상의 혼돈을 이해하기 위해 질서를 세우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놓쳤다. 생물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 점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데이비드의 사고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다윈은 생명체가 고정된 계층이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진화론은 생명체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다윈은 우리가 생명체를 단순히 우월하거나 하등한 존재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생존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데이비드가 세운 질서가 갖고 있는 한계를 부각시키는 중요한 대목이다. 데이비드는 ‘편리한’ 범주를 만들고, 그것을 ‘신성한’ 진리로 여겼지만, 진화론은 우리가 고수하는 고정관념에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관점과 변화하는 패턴을 수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책의 끝에서 제시하는 ‘어류를 놓는다’는 개념은 나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말은 결국 자신이 가진 틀을 벗어던지고, 세상을 더 넓고 유연하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갖추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입장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겠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 틀을 벗어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와 언니의 차이는 바로 이 점에서 달랐다. 아버지는 자신이 고수한 사다리를 내려놓지 못했지만, 언니는 그 사다리를 놓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 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 또한 그런 유연함을 갖추고, 세상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보고자 다짐했다.

   이 책은 단순한 과학적 이야기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히 자연의 법칙이나 과학적 사실에 대한 탐구를 넘어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앞으로도 세상을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난해하고 오묘한 제목이라 생각했지만, 책의 후반부에 제목과 유사한 의미의 문장이 나오는 순간 흐렸던 개념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위인전 같다가, 뒤에는 우리가 직접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자로서 그의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왔는지 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의 초반부는 시작한다. 하지만 중간중간 저자 룰루 밀러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구성이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있어 처음에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에 몰두하는 열정과 그 목적성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중간에 몇 번의 난관이 그를 흔들어놓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유일한 목적인 분류학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떻게 저런 열정이 나올 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했다. 이것이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자신의 아버지에 비춰보고 그에게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했던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종 별로 등급을 매기며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찾아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책의 중후반부에 나오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저자가 존경하고, 독자가 존경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몰두하는 그 모습이, 자신이 가진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비윤리적인 행위로 이어진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 학장이라는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대학의 이사장인 제인의 독살에도 가담하였고 (확실하게 판결이 나진 않았으나), 분류학에서 존재한 ‘계층(혹은 우월과 열등)’이라는 개념을 사람에게 적용한 우생학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멘토 격인 아서의 사다리 이론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컸다. 우생학자들은 열등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대가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본인들의 판단 하에 열등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의 불임화 수술이라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시행했다.

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의미는, 실제로는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책 내용에 사용되었다. 이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신이 평생 존재한다고 믿고 분류해왔던 것이 사실은 허망하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결국 그의 삶의 목적인 어류는 실제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연한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내가 지닌 삶의 방향성이 허구인지 계속 확인하고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찾아나가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목적이 필요하다. 삶을 더 가치있고 유의미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짜로라도 목표가 있는 척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목표가 가짜라는 것을 내가 깨닫게 된다면, 그 절망감은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계속해서 진실된, 실체가 있는 우리의 삶의 의미를 계속해서 찾아나가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삶의 의미에 대해 복잡하고, 애매모호하지만, 마음에 와닿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18세기의 세책사 (소설 읽기의 시작과 유행)

바야흐로 ‘구독’하는 세상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매달 빠져나가는 구독형 스트리밍 플랫폼의 수수료가 야속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유난히 잔고가 아슬아슬했다면 이렇게 푸념했을지도 모르겠다. ‘대체 달에 한 번씩 지갑을 털어가는 시스템은 누가 만들었지?’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의 시초 격인 넷플릭스가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점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콘텐츠 스트리밍 플랫폼은 이른바 ‘대여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책 <18세기의 세책사>는 콘텐츠 대여 문화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세책’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세책과 소설의 연결고리
책은 세책의 뜻에서부터 시작한다. 세책이란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빌려 보는 것이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책이 비쌌던 시절에 발달했고, 이후 쇠퇴한 문화이다. 간단한 용어 설명 뒤에는 대륙별 주요 국가의 세책 문화가 이어진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구성이지만, 목차를 자세히 보면 사실 튀는 부분이 하나 있다. 국가별 세책사를 설명하기 전에 뜬금없이 ‘소설의 탄생 과정’을 배치한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국가별 세책 문화의 공통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세책점이 발달한 곳에선 다른 무엇보다 소설, 특히 대중소설이 활발히 유통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콘텐츠 대여의 시작, 세책
세책 문화와 소설 간의 밀접한 연관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세책점의 책은 대여 기간이 짧았고, 이에 따라 물량의 회전이 아주 빨랐다. 따라서 세책업자는 주요 수요자의 연령과 성별을 고려해 잘 나갈 것 같은 대중소설을 구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대중소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세책 문화는 대중소설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주목할 건 당시 세책점의 책이 소유가 아닌 대여의 방식으로 소비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사람들이 스트리밍 플랫폼의 구독료를 내고 일정 기간만 이용하는 방식과 닮았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과거 세책점에서 출발해 오늘날 스트리밍 플랫폼까지 명맥을 이어 온 대여 문화의 기저엔 인간의 어떤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소비하게 될까? 이제는 <18세기의 세책사>가 우리에게 던진 이 질문들의 답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페스트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는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이에 대처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은 이를 통해 인간이 고난 속에서 어떻게 세상과 마주하는지를 보여 준다. 그중에서도 리유라는 인물은 작품의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드러낸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리유를 통해 까뮈는 고난 속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본성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리유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고, 페스트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혼란한 상황 속에서 의사로서의 의무를 다한다. 여기서 인상깊은 점은 리유가 의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유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리유는 나는 내 일을 할 뿐이라는 말로 자신의 태도를 표현하지만, 은 단순한 직업적 수행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노력으로 보인다. 연민이라는 감정은 리유의 인간성을 드러내고, 이는 내가 그와 함께 고뇌할 수 있도록 돕는다.

 

리유의 아내는 오랑이라는 봉쇄된 도시 밖에서 병을 앓고 있는데, 그럼에도 리유는 아내와의 재회를 포기한 뒤, 오랑시에 남아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택한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랑시를 탈출하려는 랑베르의 행동과는 상반된다. 하지만 랑베르와 리유의 대화에서 오히려 리유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랑베르를 응원한다. 페스트라는 재앙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성실함과 의무를 다하는 것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리유의 이러한 행동은 카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피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나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가장 인간적이 태도임을 보여 준다. 리유의 인간적인 고뇌와 그럼에도 나오는 성실한 선택은 나에게 배울 점을 주었고, 부조리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리유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것은 부조리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가치를 느끼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삶은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연대하며, 자신의 최선 속에서 삶의 의미는 비로소 드러난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은 현대 사회에서 굶주림의 원인이 단순히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님을 강조한다. 흔히 세계 인구가 많아 식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책은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이유로 인해 식량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기아 문제를 자연재해나 피할 수 없는 불행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구조적 불평등으로 정의하며, 경제적 탐욕과 정치적 무관심이 이러한 참상을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점은, 기아 문제를 체념적으로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바라보는 관점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된 태도라는 것이다. 나 역시 이전에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무관심하게 생각했고,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곡물 연료에 관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단순히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표면적인 문구만 이해했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곡물을 가축 사료로 사용하거나 연료로 태우는 이 불균형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실 세계에는 오래전부터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일 식량도, 이를 해결할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이를 실행하지 않거나 외면해왔다. 심지어 자연도태설을 들먹이며 이를 인구 조절을 위한 세상의 이치라고 합리화하는 시각도 존재했다.

 이런 부분들을 알게 되니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좁고 편협한 내 세상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았던 과거를 돌아보며, 적어도 사실을 올바로 보고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느꼈다또한 이 책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끊임없이 던진다고 느꼈다. 단순히 기아의 실태를 비판하거나 동정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예를 들어, 유니세프와 같은 구호 단체의 활동에 대해 이것이 정말 해결책인가?”라는 회의적 시각을 제시하면서도, “단 한 명의 아이를 더 살릴 수 있다면 모든 노력이 가치 있다는 저자의 신념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불평등과 기아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달과 6펜스

 고전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작품이기에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혼자서는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마침 독서클럽에 참여할 기회가 생겨서 친구들에게 이 책을 다같이 읽어보자고 제안했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명작이라는 명성에 비해 지루하고, 인물의 행동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고전을 읽어본 경험이 적어서 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읽은 뒤 독서클럽을 통해 교수님, 친구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평을 내렸지만, 교수님께서 이 책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을 알려주셨다. 주인공을 현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당시 시대 상황을 적용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그 결과 인물과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주인공인 스트릭랜드가 예술병에 걸려 가족을 모두 버리고, 남의 여자를 빼앗고, 여자를 쉽게 갈아치우는 매우 비도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이는 당연하지는 않더라도 만연하게 일어났을 법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서머싯 몸은 폴 고갱을 모티브로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는데, 실제 폴 고갱의 삶과 스트릭랜드의 삶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았다. 가족을 후순위에 두고 예술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는 점과 타히티 섬에서 예술 세계를 펼쳤다는 점이 비슷했다. 하지만 인물의 성격은 다른 부분이 많았다. 스트릭랜드는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치고, 그의 그림이 세상으로부터 평가받는 것을 싫어했다. 이러한 부분에서 작가가 본인의 예술 세계를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투영해서 이 책에 담아낸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은 후 제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달은 예술적 자유로움으로 해석할 수 있고, 6펜스는 화폐의 단위로 사회 규범에 맞춰 살아가는 삶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달과 6펜스 중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스트릭랜드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독서클럽, #고전문학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장편소설)

평소 퀴어 콘텐츠를 자주 접하지 않는 입장에서 선택한 이번 독서클럽 도서는 내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다. 사실 박상영이라는 작가의 책이 요즘 뜨고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고, 작가의 문체가 뛰어나다는 소식에 추천한 책이 사실은 퀴어 소설이었다는 것에 큰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퀴어 소설은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혔던 것을 보아, 내가 동성애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다고 확신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소설이 너무 흥미로워서 다양한 주제로 매번 독서 클럼을 할 때마다 흥미진진 했다. 분명 클럽원의 의견이 커다란 원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생각의 차이가 존재해 다양한 입장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우리는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한계였던 것 같다.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동성애에 대해 여성남성의 입장 차이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남자)에게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혐오의 감정이 컸던 것 같고, 또 다른 주변 친구들(여자)에게 같은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는 이해의 감정이 컸던 것 같다. 토론 주제 중에 주인공들이 2024년을 살아간다면 결말이 바뀌었을까?’하는 주제가 있었다. 이 주제는 참으로 쉽게 답을 할 수 없을 만큼, 현재 대한민국의 동성애 인식에 대한 현주소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사람들에게 미디어나 다양한 콘텐츠로 동성애가 언급되는 것은, 분명 자신의 사랑을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나는 차별같은 거 안해.”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수두룩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유치원때 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차별이 나쁜 것이다 라는 사실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로 차별을 하지않고 살아왔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나의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우리가 차별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이 책에서는 대부분 차별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우리는 왜 차별로부터 멀어질 수 없는 것일까?
 차별에는 인종차별부터 시작해서 남녀차별, 장애인차별, 난민을 향한 선입견 등은 우리 사회에 무의식적으로 퍼져있어 쉽게 드러나진 않지만 점차 이것들이 쌓이게 되면 거대한 차별덩어리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지혜 작가는 차별당하는 사람은 있고 차별하는 사람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결정장애’ 와 같은 장애인 차별적 단어나 ‘넌 여자니까~’,’남자답게 행동해’ 와 같은 젠더에 관한 차별은 우리 사회에 말버릇처럼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 책에서 우리는 다수와 조금 다른 ‘차이’를 가진 사람들을 쉽게 차별하곤 하는데 이때 ‘차이’, ‘다름’ 이라는 단어의 개념에 대해서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의 9장 ‘모두를 위한 평등’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 아이리스 영은 ‘차이’ 라는 단어의 용례에 주목한다.다르다’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사용되지 않는다. 배제되고 억압된 사람들만이 ‘다르다’고 지정되고, 주류인 사람들은 중립적으로 여겨진다. ‘중립’의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져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의 정해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결국 ‘다르다’는 말은 ‘서로 다르다’는 상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고정된 특정 집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차이’가 낙인과 억압의 기제로 생성되는 것이다. – 184p “
9장에서는 아이리스 영이라는 미국 이론가의 말을 언급하며 우리가 ‘차이’에 대한 개념을 잘못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차이’를 느끼고 그들을 우리와 같게 만들기 위해, 또는 그들과 우리를 분리시키기 위해 그들을 통제하려 하고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부모가 되어 자녀를 유치원에 보냈을 때 그 유치원에 흑인 아이가 있다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겨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두려워 하거나 더 나아가면 유치원 교사에게 내 아이를 저 아이와 같이 지내지 못하게 하도록 조취를 취할 것이다. 이때 나는 그 아이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의 아이인지 입양을 통해 해외에서 태어난 아이인지 전혀 무지한 상태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아이가 ‘흑인’ 이라는 이유로 내 아이와 ‘다름’을 느끼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차별적인 시선이나 말을 보이게 될 것이다. 또한 일상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몸이 불편한 사람, 즉 장애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보통 ‘불쌍하다’, ‘힘들겠다’ 라는 생각을 떠올리곤 할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자신이 장애를 가진 것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힘듬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불쌍하다’ 같은 단어를 내뱉는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주거나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우리와 다른 ‘차이’를 가진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껴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 느끼는 감정 자체는 선량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상처를 받는 사람이 더욱 많기 때문에 그런 선량한 행동을 할 때에도 우리는 신중히 판단해야 하고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차별로 여겨지진 않을까 계속해서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나는 남들보다 차별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알고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내가 먼저 차별을 하는 주변인들을 멈추게 하고 그들을 성찰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세계의 차별주의자들을 선량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한 권으로 현실 세계를 통달하는 지식 여행서)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역사와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파트를 설명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수와 진보는 어떻게 구분되고 있는지, 어떠한 윤리적 사고가 있는지 등 기본적이고 현대인이라면 필수적으로 함양해야 할 지식들을 다양한 예시와 함께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알고 있는 부분을 한 번 더 상기시키는 시간도 되었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들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진보는 보수에 가까운 진보라든가, 전쟁은 자본가들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라든가. 책을 읽은 후 여러모로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높아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