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한 입의 사랑 수업
험한 시절을 살아보니 모든 순간이 은혜였다 (93세철학교수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들려주는삶의교훈이되는 자전적편지모음)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
우선 책에 대한 감상을 간단히 소개해보겠다. 이 책은 일반적인 작법서와는 사뭇 다르다. ‘글쓰기 책‘이라고 하면, 실용적이지만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하지만 저자인 스티븐 킹이 문학 작가이다 보니, 이 책도 마치 산문을 읽는 듯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가령, 자신의 생애, 작문 방법 등을 수필 형식으로 풀어낸다. 다른 작법서들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설 창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글쓰기에 적용할만한 것도 꽤 있긴 했지만, 소설에 아주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을 직접 창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더라도, 소설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읽어 볼 만 하다. 한 소설가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
책의 구성을 한번 살펴보자. ‘이력서-연장통-창작론-인생론’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력서와 인생론 부분은 저자의 자서전이라고 보면 된다. 한 유명 작가의 생애, 그리고 그의 인생은 어떤 것이었는 지를 알 수 있다. 나는 그의 인생이 참 부러웠다. 왜냐하면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 즉 ‘예술’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삶의 위기 상황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예술을 하기 위한 의지’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원하는 삶 아닐까? 나는 그의 삶이 너무도 부럽다. 나도 저자처럼 나의 인생을 지탱해 줄 어떤 것을 찾고 싶다.
연장통과 창작론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을 쓰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연장통에는 글쓰기 기술들이, 창작론에는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 파트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글쓰기 방법을 설명하는데도 소설을 읽는 듯 재미있어서 몰입하며 읽었고, 예시문이 풍부하고 훌륭했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의 창작 방법을 처음 알게 된 것이라서, 소설의 탄생 과정을 흥미롭게 탐색할 수 있었다. 작가가 알려준 글쓰기와 창작 방법들은 대부분 소설에 관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일반적 글쓰기와 더불어 전혀 다른 분야의 일에도 녹여낼 수 있는 방법들이다. 다른 분야와 엮어가며 읽다 보니 순조롭게 완독할 수 있었다.
후기의 인생론을 보면,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도중에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주 운 좋게, 죽지 않을 정도로만 다친 것이다. 남은 인생을 누워서 보내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긍정적으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을까? 저자는 이 고난을 예술(창작)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창작에 대한 의지로 미래를 이어나갔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예술은 수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을 풍요롭게 해주고, 현실을 초월하게 해준다. 나도 좋아하는 예술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 아직 삶을 바칠 만큼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을 읽고 문학에 관심이 깊어졌다. 그래서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아무 생각 없이 대출해서 읽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 내 수준으로 읽을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사르트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과 내가 이해하는 것이 일치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읽어서 이 책의 독후감도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당신은 ‘의미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3분 정도라도 좋으니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짧은 줄거리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19세기 러시아의 유능한 판사이다. 그는 허영심에 가득 찬, 행동에는 위선이 배어있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선한척하고 고귀함을 떨면서, 속으로는 타인에게 ‘고상한 인물’이라고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즐긴다. 흔한 사교계 인물의 전형이다. 이러한 그가 불치병에 걸리게 되고, 죽음에 이르며 삶을 회고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묘사해낸 책이다.
앞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인생은 매우 짧다. 인간은 오래 살아봐야 100년 정도 산다. 하지만 인간 문명이 이어져 온지는 약 6천년 되었다. 또한 지구가 탄생한지 약 46억년이 지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긴 시간의 찰나에 머물다가 소멸하는데, 대체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작고 미미한 인간의 삶을, 대체 어떻게 살아야 의미가 있을 지 궁금했다.
이 책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곁에서 삶을 회고한다. 그는 젊은 시절 판사가 되었고,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사교계에서 활동하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 이런 삶을 일반적으로 보면 의미 있고, 멋진 삶이다. 심지어 이반은 ‘해야만 하는 것을 잘 해낸 삶’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하등 의미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적 고통과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나의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질문은 바로 이 장면에서 명확한 실체를 드러냈다. 대체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죽기 전 삶을 회고할 때,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라고 말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사랑을 한 삶, 헌신한 삶, 쾌락을 추구한 삶…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얻은 교훈: 솔직한 삶
주인공은 허영심에 가득 찬, 위선에 가득 찬 삶을 살았다. 그러다보니 그의 아내도, 친구도, 지인도 전부 똑같은, 위선적인 인간들이었다. 죽음의 공포에 빠져있는 주인공에게,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는 주인공의 피해의식도 이해가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교훈 한 가지가 있다. 물론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완벽한 답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삶을 사는 데 분명히 도움 될 교훈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 책이 ‘솔직한 삶’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겪는 정신적 고통의 원인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거짓된 삶, 그렇게 살아옴으로써 형성된 주변의 위선적인 환경들, 지인들의 가벼운 태도 등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솔직한 것은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소중한 누군가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 허영심을 버리고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 불안정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에 고통을 덜어주는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다스리는 묵직한 침묵 (헨리 데이빗 소로우 명상일기)
지식의 역습 (오만한 지식 사용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
유원 (창비청소년문학 96)
더블린 사람들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어렵기로 유명한 <피네간의 경야>와 <율리시스>를 쓴 아일랜드의 대문호이다. 원래는 그의 이름만 알고 있었지만, 도서관을 둘러보다 우연히 <더블린 사람들>을 읽게 되었다. 조이스가 쓴 책들 중 그나마 대중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책이다. 그가 쓴 책들 중 가장 대중친화적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완독하고 작품 해설을 볼 땐 정말 놀라웠다.
감상
우선 책의 구성이 흥미로웠다. 이 책은 15개의 단편 작품을 ‘유년기–청년기–성년기–공동생활’이라는 큰 구조로 구성하고 있다. 유년기에서 성년기까지의 작품은 주인공 중심의 일화를 다룬다. 공동생활로 넘어가면서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다양한 인간들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점점 나이가 많은 주인공으로 바뀐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개인에서 집단으로의 변화는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책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단편집을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주제의식이 비슷한 작품을 묶어둔 경우를 많이 봤다. 작품들이 별로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더블린 사람들>은 단편집이지만 마치 하나의 장편처럼 느껴진다. 이런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할 텐데, 조이스가 대문호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것은 조이스의 ‘솔직함’이다. 그는 타락한 아일랜드의 모습을 현실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나라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지적함으로써 ‘정신적 해방’을 도모했던 것이다. 사람 또한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과거에서 해방되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것처럼 아일랜드 사람들이 타락과 혼란에서 해방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국뽕도 애국심에 도움 되기는 할 테지만, 문제점을 온전히 직면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좋은 도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묘사’이다. 사실 이 책의 묘사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배경 묘사가 매우 자세해서 책 속의 세계에 한 번 빠져들면 마치 상황을 직관하는 느낌이 든다. 여러 인물이 나오는 부분은 배경을 파악하는 데 힘을 좀 써야 한다. 따라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한순간에 흐름을 놓쳐버리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독자가 지루함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묘사에 더 얹자면, 이 책의 묘미는 “에피파니(epiphany)”이다. 에피파니란 ”행동이나 마음 자체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정신적 현현“을 말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물이 특정 사건이나 자신의 본질 등을 깨닫는 현상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예를 들자면, <애러비>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년이 거의 문 닫은 바자에서 어둠이 깔린 곳을 허무하게 응시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작은 구름>의 챈들러가 현실을 직면하는 부분, <가슴 아픈 사건>의 더피가 뒤늦게 외로움에 빠진 것 등이 있다. 아마 수록된 단편 대부분에 어느 정도의 에피파니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고전답게, 작품 해설을 읽는데도 정말 재밌었다. 책에 숨겨진 내용, 이해를 더 깊게 해주는 내용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조이스가 20세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대문호이고, 그의 작품이 고전으로 평가받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율리시스>를 읽어봐야 그의 진가를 알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매번 다른 인물들과 다른 배경들을 파악하느라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모든 작품이 연결되어 하나의 구성을 이루니 정말 새로웠다. 킬링타임 위주의 소설보다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더블린 사람들>을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