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방인>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나도 역자 해설을 읽고 이 작품을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읽은 <이방인>과 비슷할 수도, 완전 다를 수도 있다. 찾아 보니 주로 실존철학적 의미와 죽음의 의미,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해석들을 공부한 후에, 시간이 조금 지나서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실 죽음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해보긴 했지만, 현실에 충실해질 만큼 직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마치 내가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고, 죽는다는 것이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학들이, 다른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탐구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탐구가 어쩌면, 삶의 문제들에 대해 답을 해줄지도 모른다.
이방인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라는 말이 있다. 죽음은 과연 두렵기만 한 것인가?어쩌다 보니 최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수업에서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하는 죽음을 듣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을 접했고, <이방인>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끌렸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방인은 죽음이 중심을 이루는 소설이지만, 우울한 책일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이 죽음을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여기듯,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에게도 죽음은 초월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스토리가 간결하고 뻔하긴 하지만, 묘사가 정말 훌륭한 나머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럼 이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몇 가지 이야기하고, 내가 느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구조의 미학
사실 처음 읽는 것이다 보니, 카뮈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단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직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재미와 감상을 중시하며 책을 읽는 성향인 덕분에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아마 무언가를 얻고자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꽤 고생했을 수 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숨겨진 의미들을 이해하기 위해 역자 해설을 읽었다. 해설을 읽으며 작품 안의 장치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니, 카뮈는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부드럽게 읽히고, 안정감이 느껴졌던 이유가 다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 중 하나가 바로 ‘구조’다. 이방인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작품에는 총 3개의 죽음이 있는데, 어머니의 죽음, 아랍인의 죽음, 뫼르소(주인공)의 죽음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1부의 시작에, 아랍인의 죽음이 1부 마지막과 2부 시작에, 2부 마지막에는 뫼르소의 죽음이 배치되어 소설이 끝나게 된다. 나는 안정감이 느껴지기는 해도, 이러한 의도된 배치가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숨은 형식, 작가의 의도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요소들을 인식하며 책을 읽으면 더 많이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묘사
카뮈의 묘사는 정말 대단하다. 책을 펼치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빨려 들어갔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 <인간실격>의 첫 문장 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준다. 스토리나 서스펜스보다는 묘사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엄청난 설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심리, 배경, 인물들에 대한 풍부한 묘사를 이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태양을 느끼며 아랍인에게 총을 쏘는 장면, 사형을 앞둔 뫼르소가 신부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는 장면이다. 총을 쏘는 장면에서는 뫼르소의 충동적인 감정들의 묘사가, 신부에게 화를 내는 장면에서는 죽음 앞에서의 분노와 성찰이 뇌리에 깊이 박혔다. 카뮈는 정말 천재라고 거듭 느꼈다.
죽음에 대하여
그래서 카뮈가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삶이 의미가 있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형수이다. 필연적으로 죽기 때문에, 여생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1부에서 뫼르소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현재에 충실한, 충동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2부에서 결국 살인죄로(그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형을 선고 받게 되었다. 뫼르소는 사형을 기다리며 삶을 성찰하다가,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며 성찰한 끝에 인생의 의미를 깨우치게 된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죽음은 최고의 발명품이다’ 라는 말과 카뮈의 <이방인>처럼, 죽음의 의미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죽음을 이용해 삶의 부조리를 극복하고 나아간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남은 시간들이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는 사소하고 불필요한 문제들이 모습을 감춘다. 곧 죽는데 사소한 문제들이 신경 쓰이겠는가? 죽음을 직면한 사람이야말로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해 더욱 더 깊이 고찰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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