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모든 <시선으로부터,>
이 책은 예술가였던 ‘심시선’의 가족들이 하와이에서 심시선의 십 주기 제사를 지내는 내용이다.
‘심시선’은 가족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첫째 딸 ‘명혜’가 시선이 젊을 때 살았던 하와이에서, 시선이 싫어했던 방식이 일반적인 제사 방식이 아니라, 각자 하와이에서 느끼거나 경험한 것, 공유하고 싶은 것을 제사에 가져오기로 하며 각자 다른 형태로 하와이에서 지내게 된다.
작가는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루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선으로부터,>와 심시선의 가족들은 철저히 여성 중심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타국으로 떠난 심시선과,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시선의 딸 명혜, 명은, 손녀 화수, 지수, 우윤 그리고 해림. 심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여성들은 우리의 삶을 대변하고 있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지난 세기부터 수없이 지워지던 여성들의 업적과 차별받고 억압받던 여성들의 삶들을 대변하고 있고,
시선과 시선의 가족들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 /시선으로부터, 178쪽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가상 인물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겪고 있다.
시선은 연인이자 스승이자 동거인이었던 ‘마티아스 마우어’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살아왔다. 시선이 그의 폭력을 벗어나기 위해 마티아스의 집을 떠나고 안정되자 마티아스는 자살을 통해 시선에게 최종적인 가해를 하였다. 시선의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과 마티아스의 이야기를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질타를 받고 ‘재능 있는 화가를 파멸로 몰아넣은 아시아 마녀’가 되었고 폭력적인 시선들을 받았지만, 시선은 시선만의 싸움을 하며 꿋꿋하고 당당하게 삶을 일궈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해의 형태는 20세기에 끝나지 않고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다. 자신의 가해행위를 자살함으로써 덮어버리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공격.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화수’도, 소설뿐만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도 이러한 공격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공격에도 꿋꿋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가고 상처와 아픔을 극복해가며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 또한, 시선과 시선의 가족들이 계속해서 가족을 이루어 가며 연대하는 것. 시선만의 위로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시선으로부터, 331쪽
소설에는 중간중간 시선의 인터뷰나 책의 일부가 있었다. 그 시대에 흔치 않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놀라게 했던 시선의 말은 많이 공감되고, 그동안 정의내리지 못했던 나의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해주었다.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며 자신이 꿈꿨던 삶을 찾은 시선은 비록 죽었지만, 시선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시선의 혈연으로 이어받은 시선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시선의 생각에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고 있는 나도 시선의 일부가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새로운 형태의 위로를 받았다.
정세랑 작가는 이 소설을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은 ‘심시선’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전하는 사랑의 말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