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도 많이 되며 도리어 나의 잘못된 점을 천천히 파악하기에도 좋은 시집이라 생각된다.
시라는 존재가 그리 무겁지 않게 다가와 부담 없이 시를 좋아하게 되는 마음도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장애인의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라고 배웠지만, 구체적으로 장애인을 어떻게
차별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다.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나라이고, 이로 인해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나오지 않으니 나는 자연스레 다양한 장애인 분들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그들의 고충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 혜영씨와
혜정씨가 같이 일본 디즈니랜드를 갔다는 내용을 읽을 때, 굉장히 생소했다. 한번도 장애인이 해외여행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고, 결혼식장도 가고, 홍대에서 밴드
공연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일상적이지만 장애인이 했다는 이유로 생소하게 받아 드려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약자의 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어른이 되면’의 도서와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비로소 장애인 수용 시설이 장애인
인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책을 찾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이 책을
추천해줄 의향이 있다. 나의 친언니, 엄마, 교수님, 그리고 나의 고등학교 친구까지 이 책을 추천했다.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문제는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다는
게 굉장히 슬펐다. 주변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장애인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 이 사회는 언젠가 변화하지 않을까? 라는
작은 희망을 가진다. 독서토론을 4주동안 하면서 장애인 인권뿐만
아니라 다양한 약자들의 인권에 대해 토론해보았고, 나의 인식을 많이 바꿀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 되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햄릿의 복수지연, 우유부단한 햄릿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햄릿의 복수지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원인에 대해 집중하여 생각해 보았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썼던 엘리자베스 1세 시대(1558-1603)
이후에도 주인공 햄릿(Hamlet)에 대해 많은 비평가들이 분석을 하였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아버지의 장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삼촌의 결혼식에 우울해 하는
초반의 모습에서, 햄릿이 유령의 증언을 듣고 복수를 결심한 후 아버지를 죽인 숙부를 살해하여 복수하는
모습으로 이야기의 막이 내린다. 따라서 『햄릿』은 주인공 햄릿의 복수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햄릿의 복수의 지연과 그 원인에 대한 많은 비평이 나오고 있다. 햄릿은
복수를 바로 시행하지 않고, 극의 마지막 장에서 복수를 하게 된다. 특히
햄릿은 극의 중간에 클로디우스(Claudius)가 기도하는 장면에서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복수를 미룬다. 햄릿이 클로디우스의 기도장면에서 “칼아, 참고 기다렸다가 좀 더 살기가 찬 기회를 포착하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햄릿은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햄릿은 클로디우스를 살해하지 않는다. 그 후 햄릿은 복수를 지연하는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으면서까지
자책한다. 하지만 이 독백 후에도 햄릿은 복수를 미루다가 클로디우스가 계획한 레어티스와의 검술시합에 참여해서야 클로디우스를 죽이게 된다. 이로
인해 햄릿은 극의 마지막에서야 복수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폴로니어스, 오필리아, 길덴스턴, 로젠크런츠가 죽게 되고 마지막에는 레어티스와 거트루드까지
죽게 되는 비극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게 만든 햄릿의 복수지연의 원인은 다양하다. 햄릿의 복수가 지연되는 것은 하나의 원인으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매우
복합적인 원인이 섞여 있다고 본다. 첫 번째로 주인공인 햄릿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시대는 기독교 가치관이 팽배해 있었고, 개인적인 복수로 인한 살인은 범죄로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영국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로 여겼다. 즉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사적 복수가 가문의 의무라고 여기는 전통적 의식과 사적 복수를 금지하는 종교적 가르침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그러한 갈등이 『햄릿』에 반영되어 있다. 그 당시
사회 속에는 가치관의 모순이 있었고 그러한 모순이 햄릿에게도 반영되어 심각한 ‘내적 갈등’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햄릿은 이러한 내적 갈등, 즉, 기독교적 가치관과 개인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의지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어 복수를 하라는 유령의 말에도 복수를 망설이게 된다. 이러한 햄릿의 성격 즉 내적인
요인을 복수지연의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복수 지연에 대한 원인을 햄릿의 내적인 요인만
강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햄릿의 주변 환경도 둘러보아야 한다.
거트루드의 결혼, 폴로니어스와 오필리아의 죽음과
같이 햄릿의 내적인 갈등 외에도 햄릿이 복수를 지연하게 된 이유로는 외적인 요인이 있다. 햄릿이 내적
갈등을 겪는 동안 주변 인물들이 햄릿의 내면에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였다는 점이다. 먼저 거트루드는
햄릿 왕이 죽고 두 달도 되지 않아 숙부와 결혼을 하여 햄릿에게 삶의 회의감과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햄릿이 사랑하던 오필리아 역시 폴로니어스의 명령에 순종하여 햄릿을 속이고 염탐하는 일에 동참한다. 또한 햄릿이 유일하게 친구라고 생각했던 길텐스턴과 로젠크런츠도 클로디우스의 말을 듣고 햄릿을 감시한다. 즉, 햄릿의 주변 인물들이 햄릿의 복수대상자인 클로디우스의 편에
서서 햄릿의 복수를 방해하고 있다. 그리고 햄릿은 어머니를 찾아간 날 도중에 커튼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되고 이로 인해 영국으로 가서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햄릿은 가치관 충돌에 따른 내적
갈등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배신과 폴로니어스의 죽음 등의 외적 상황에 의해서 외적 갈등을 겪는다. 이로써
햄릿은 자신의 가치관의 혼란과 더불어 주변 인물들의 배신에 대한 분노와 고립을 혼자 이겨 내야하는 외롭고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며, 그로 인해 햄릿의 복수는 점점 더 늦춰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햄릿의 ‘내적 갈등’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로 인한 ‘외적 갈등’또한 햄릿이 복수를 시행하는 것을 방해한다.
햄릿의 복수는 왕을 죽이는 것으로 단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햄릿의 내, 외적인 갈등뿐만 아니라 『햄릿』의 배경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이고, 그가 복수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신의 숙부이자 현재 덴마크 왕인 클로디우스이다. 즉,
햄릿이 복수를 하게 되면 왕이라는 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죽여야 하는 불리한 환경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즉, 햄릿의 복수는 개인의 복수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덴마크라는 하나의 나라의 안위가 달린 문제로 볼 수 있다. 햄릿이 자신이 칼에 찔려 죽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다음 왕위의 계승자를 지정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햄릿의 사회적 지위는 햄릿이 자신의 복수만을 위해 무모하게 움직이는 것에 대한 한계를 나타낸다. 또한 설령 이러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무시하고 개인의 복수심에만 집중하여 클로디우스를 바로 살해할 수 있을지라도
햄릿 그의 개인 성향이 무모한 행동을 할 성품은 지니지 못한 인물로 보인다.
이럿듯 햄릿의 복수 지연 원인을 내적 갈등, 외적 갈등, 사회적 위치의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햄릿의 복수 지연 원인을 햄릿의
내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점이 있고 주변 인물에 의한 외적인 원인 또한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햄릿의 ‘사회적 지위’를 복수 지연의 세 번째
원인으로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햄릿의 내적 갈등은 아버지의 살해에 대한 복수 열망과 그것을 금기시하는 기독교 윤리와의 갈등이다. 『햄릿』이 쓰여진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기독교 윤리가 강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나 실제 영국 사회에서는 아버지나 자신의 살해에 대한 친족의 복수는 오히려 가문의 의무, 정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두 가치관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고 딜레마에 빠진 햄릿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햄릿은 선왕 햄릿을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클로디우스를
죽이면 기독교 윤리에 배반할 뿐 아니라 살인자가 되어 사후 심판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이러한
햄릿의 내적 갈등은 오로지 자신의 복수심에 빠져 행동하는 레어티스와는 다른 모습이다.
햄릿의 내적 갈등 이외에도 햄릿은 외부 환경에 의해 혼란스러움을 겪는다. 거트루드의 숙부와의 근친상간적 결혼은 햄릿을 고통속으로 빠지게 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사랑을 고백한 오필리아 역시 클로디우스의 신하인 폴로니어스의 편에 서서 햄릿을 염탐하는데 이에 햄릿을 매우
외로움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햄릿 주변의 대대분의 인물이 햄릿의 복수의 대상인 클로디우스의 명령에
순응하고 햄릿을 공격한다. 햄릿은 주변 인물들의 배신에 실망하고 분노감을 느꼈을 것이다. 수많은 외부 환경들이 햄릿의 복수를 지체시키고 햄릿을 외적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햄릿의 내적 갈등, 외적 갈등 이외에도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로서 왕인 클로디우스를 죽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왕인 클로디우스를 죽이는 것은 덴마크의 최고
권력자를 죽이는 일이며 덴마크 사회 전체를 혼동에 빠뜨리게 되는 중대한 일이다. 설령 햄릿이 클로디우스를
죽인다고 해도 클로디우스가 선왕을 살해한 것에 대한 증거는 유령의 증언 뿐이기에 햄릿은 반역자라는 큰 범죄자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모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햄릿이기에 함부로 복수를 실행하지 못하고 마지막이 되어서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에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복수를 한 것으로 본다. 햄릿의 복수 지연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햄릿 자신의 내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햄릿을 둘러싼 외부 환경, 그리고 햄릿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여 한다.
햄릿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를 죽인 존재가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자신마저 죽이려한 상황에 놓였다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믿었던 존재들마저 자신을 감시하려든다면 이 세상에 자신의 편은 하나도 없어 외로웠을 것이다. 처음에는 햄릿이 복수를 망설이는 장면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햄릿은 자신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나라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을 상황에서 고민하며 견딘 햄릿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햄릿이 클라우디스 왕을 바로 죽였다면 어떠한 결말이 만들어졌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살해하지 않고 신중히 고민하는 모습이 햄릿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고 햄릿을 읽고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우리의 월급이 정의롭지 않은 부분이 있겠구나 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뉴스에선 임금문제, 최저임금 인상문제, 비리자금에 대한 이야기를 수도없이 나왔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까. 나는 길어야 두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저임금을 받은 경험이 있다. 생활비를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않고 내가 사고싶은 것을 사기 위해서 했던 것이었다. 최저시급에 주휴수당을 포함해서 받은 월급은 그냥 만족스러웠고 뿌듯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월급은 물론이고 남들의 월급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몇년 뒤면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나의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순간이 올것이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임금에 대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데 화가나는 사례들이 너무 많았다. 공공기관 건설현장에 고용되는 근로자의 경우 정부에서 정해준 임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그냥 ‘권고사항’으로 여겨져 업체는 그 돈을 그대로 근로자에게 주지않고, 최저임금 만큼만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알아서 지급하고 나머지 돈을 갖는것이다. 이런식으로 비리자금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우리나라 기업들 중 그러한 기업이 많다는 것 또한 알게되었다. 근로자들 중 대부분은 이렇게 최저임금만 받고 평균 3.3명의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들 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함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이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정말 불공평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미국과 다른 선진국의 임금제도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문화적 차이도 그렇고 정서도 그렇고 경제 상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임금제도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을 바꿀 순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임금정책을 결정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돈이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었다. 그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 나라의 임금 정책이나 제도는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분노하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된다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자신들이 받는 임금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그러므로 프리베일링 웨이지라는 임금 기준이 생겼고, 그것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딱 정해진 임금, 즉 적정임금을 받게 되었다. 지금이대로라면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높은 위치에서 돈을 굴리고 있는 사람들이 정한 정책을 따르게 되고, 우리는 그저 불만스러운 임금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파악해야 하고 어느 부분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되는지 알아야 한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해야하는 지금 우리 나잇대의 청년들이 읽어보면 매우 유용하고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서클럽-생각하는 사람들조] 1911115 서지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상당히 자극적이라는 인상을 얻었다. 더불어 호기심도 불러냈다. 누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일까. 내가 속한 독서클럽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를 책으로 선정했다.
미디어 매체가 발전하고, 정보의 유통방법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 쉬워졌다. 클릭 한 번으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정보를 스스로 찾는 대신 인터넷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발달로 사람들은 편의를 얻었다. 동시에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생각하는 방법만 잃었을까, 집중력도 잃게 되었다. 각종 미디어는 우리의 주의를 가져가,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것들에 노출된 우리의 뇌는 주의가 분산되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생각의 깊이 또한 얕아지게 되었다. 글쓰기를 어렵게 느끼면서, 글쓰기를 피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기억 장치 덕분에, 더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면서, 사람들은 기억하는 능력을 강화하지 않기 시작했다. 망각에 익숙해졌다. 말 그대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즉, 현대 미디어에 잠식된 우리에게 인터넷의 발달로 생긴 이익과 손해, 우리의 뇌에 주는 영향 등을 소개하며 경고를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는 정보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산만해졌고, 지속적인 집중이 불가능해졌다.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거나, 옳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는 등의 멍청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먼저 의심을 하고, 한 번 더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