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언어의 온도 (100쇄 기념 에디션 , 말과 글에는 그리고 삶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수필에 가깝다. 이런 책일수록 작가의 생각이라는 것이 그대로 반영이 되어 보이는 점이 장점같다. 화려한 수식어 보다는 담백하면서도 일상속에서 하는 말 하나하나에 대한 깊이있는 관찰이 느껴진다. 책의 제목 언어의 온도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일상생활에 느껴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통찰을 가지고 살펴보는 맛이라는 것이 있다.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은퇴 전 직함을 불러 드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거 같아요.병원에서는 말 한마디가의술이 될 수도 있어요“
이 이야기를 읽고 나는 내가 꺼내는 말 한마디가 한층 신중해졌다. ‘아!누군가에겐 말 한마디의 값어치와 무게가 어마어마 하구나.’ 평소 신경 쓰지 않았던 내가 하는 말들이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말, 행동 하나하나가 조금은 더 소중해지고 절실해졌다.
‘마음의 온도’를 통해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기주의와 감정의 배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도구가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는 흉기가 되어 상대방과 적이 되고 화합을 막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자신들의 의견을 쉽게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속에서 익명성을 무기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음해를 하는 행동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통념을 무시하고 타인의 입장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그 사람들은 차가운 온도의 언어들을 뱉으며 마음조차 얼어붙게 한다. 감정이 메말라 있기에 그런 것일까? 그러한 말들은 내가 대상이 아니더라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책을 읽으며 이토록 내 생각을 자유롭게 가지며 소통할 수 있는 책은 드물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베스트 셀러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책이었다.
앵무새 죽이기
이주의 시대 (The Age of Migration)
닥터 프로스트 1 (텅빈남자)
지금은 관련이 거의 없는 것을 공부하고 있지만, 나는 어렸을 때 잠시 심리학자를 꿈꿨었다. 그것도 ‘상담’심리학 말이다. 그 로망을 심어 준 것이 웹툰, ‘닥터 프로스트’였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중심인물은 ‘프로스트 교수’이다. 이름만큼이나 비밀이 많은 이 교수는 감정의 어떤 부분이 결여되어 있으며, 이 부분을 메꾸고자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을 읽어내고, 책 속의 사례와 통계에 적용하며 감정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공부하는 것이 스스로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감정을 잃은 대신 인지능력, 암기력 등에 뛰어난 모습을 보였던 어린 프로스트 교수는 꾸준히 공부해 학술적인 면에서 거의 완벽한 면모를 보이는 교수가 되었고, 은사님이 계시는 대학교로 와 상담소에 배치받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상담소에 있었던 윤성아 조교와 함께 상담을 하게 된다.
프로스트 교수에게 상담이란 일종의 ‘실제 감정 접하기 프로젝트’다. 책에서만 봤던 사례들이 실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어떻게 해쳐나가는지를 알아보는 실험 같은 것이다. 이와 다르게 윤성아 조교는 실제로 사람을 만나 이해하고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꿈을 꾸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상담자를 꿈꾸는 사람이다. 이렇게 다른 관점으로 사건에 접근하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 부딪힘 속에서 윤성아 조교도, 프로스트 교수도 함께 성장한다.
심리학과를 나온 원작가와 더 많은 전문가들의 자문으로 이루어진 사건들은 생생하고 깊이있게 표현된다. 여러 심리학 교수와 이론들이 나오는 연출이 부자연스럽지 않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멋있다’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내가 어렸을 적 상담심리학에 대한 로망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case 6#으로 시즌 1을 마무리하면서, 완벽한 사건 해결을 보였던 프로스트 교수의 첫 상담 사례가 나오며 실패와 그로 인한 내담자의 죽음을 다룬다.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는 것은, 원인을 읽어내고 내담자가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치료를 이끄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새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구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무게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판단하는 프로스트 교수를 보며 내 스스로의 모습, 혹은 내 주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사실 스스로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며, 더 깊은 사유로까지 들어가게 되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 더 심리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심리학에 대한 의식이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꿈 해몽이나 최면술사, 혹은 심각한 정신병을 가진 사람만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 등이다. 이 책은 그런 편견을 깨주면서도 대중을 심리학의 세계로 손쉽게 들일 수 있는 개론서 비슷한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어쩌면 단점일 수도 있는 만화라는 장르까지도 이러한 목적에 알맞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내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은 이유다.
어른이 되면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살면서 우리는 장애인을 자주 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 혹은 가정에서 나오지 못하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보건복지부에서 집계된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은 3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렸을 때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족과 떨어져 시설로 가게 된다. 시설의 환경이 좋지도
않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의 수에 비해 사회복지사의 수가 적기 때문에 시설에 사는 장애인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어른이 되면’에 나오는
혜정씨도 중증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열세 살 때부터 18년을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살게 된다. 책의 저자인 혜정씨는 혜영씨가 선택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혜정씨의 탈 시설을 돕는다. ‘어른이 되면’에는
혜정씨의 탈 시설 과정과 시설을 벗어나 사회에서 혜정씨와 혜영씨가 함께 살아가는 6개월간의 모습을 혜영씨의
시선에서 그리고 있다.
혜정씨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발달장애인 센터의 직원은
장애등급 심사를 한다며 인생 전반에 관한 질문이나, 혜정씨가 살아가는데 겪는 어려움을 조금도 파악할
수 없는 질문들을 기계적으로 던질 뿐이다. 심지어 혜정씨가 아닌, 혜정씨의
보호자인 혜영씨에게만 질문을 하며, 30살이 넘는 혜정씨를 아이 취급하기까지 한다. 또한, 카페, 영화관, 공연장 등의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은 혜정씨에게 더 냉정한 시선을 보낸다. 수로만
따지면 비장애인이 공공장소에서 더 많은 소동을 일으켰음에도 장애인이 소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규제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나는 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장애인은 아픈 사람들이니 더 잘 대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교육받았고, 매체에서 장애인을
다룰 때 불쌍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통해 혜영씨와 혜정씨의 이야기를
접하고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온전히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장애인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모두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는 약하게 태어나서 약하게 죽고, 다수에 속할 때도 있지만 소수에
속할 때도 있다. 장애인이 소수이고,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성소수자, 다문화가정, 노인, 아동,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노선을 크게 달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다수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조금 더 연약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또, 우리 사회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에 속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그렇다면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 혜영씨가 혜정씨와 혜정씨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처럼, 혹은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다수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돕는다면 언젠가는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고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매체로 많이 나오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