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스럽게도, 우리가 인지를 못할지언정 우린 어떤 것으로도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린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할까?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님 나만의 길을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남의 시선이 옳은 것인가? 옳지 않다면 나의 시선은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끝없는 딜레마에 빠진 나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 속 “구보씨”
이 책을 선택한 이유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1938년에 만들어진 이 소설에서 지금 2019년에 시대 상황이 비쳐지고있어 참 신기하면서도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고 느꼈다.
소설 속 “구보씨” , 동경으로 유학을 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주변 사람의 걱정을 받는 이 모습
우리와 같다고 보이지 않는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진정한 학문의 목적이 아닌 남들보다 더 잘나고 뛰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린 지금,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남들이 다하니까, 나만 뒤쳐지는 거 같아 불안해 노력하는,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이 삶이 그 옛날의 소설에서 나타난다.
이 소설이 나에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절대 없어질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거 같다.
나는 이런 현실이 소설 속 경성역 즉, 서울역에서 잘 들어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그 많은 장소가 있는데, 서울역에서 더욱 두드러졌는지…
“구보씨”는 서울역에서 사람에 대한 온기를 느낄수 없다고 하였고, 냉정한 아니 냉철하다고 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개인적 성향을 느끼며 고독함을 드러냈다. 이때도 이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간이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더 바쁜 삶을 살 고 있다. 서울역 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걸 쓰면서도 느낀다. 사람들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나를 어지럽게 만든다. 그만큼 서울역이라는 장소가 과거와 현재의 도시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말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서울역으로 가게되면 기차를 타기 위한 장소가 아닌 진정한 내가 바라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