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내가 들어가보지 못한, 알 길 없는, 알고 싶지 않은 꿈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계속 야위여갔다.”
한번의 꿈으로 그녀는 채식주의. 아니, 육식주의적인 삶에서 벗어난다. 
그녀의 채식주의는 현대사회가 내포한 ‘정상의 범주’, ‘상하관계의 폭력성’, ‘강자의 폭력, 점유, 정복’의 관념에 항의하는 매개이다.
책을 읽으며 불쾌했다. 그녀가 이해가 되지않고, 답답하고, 싫증났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깨달은것은. 
불쾌의 대상이 나, 자신을 향해있었다.
세계는 흑백으로 물들어버린듯 하다. 
다른것은 틀린것으로, 가치를 사실로.
색이 흩어져버렸다.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장편소설)

“끊을 수 없는 애도의 굴레에 갇혀 그녀는 생각했다. 사실 난 널 괴롭히고 있는 걸까. 널 살리려는 게 아니라 네 비석을 더 매끄럽게 깎고 있는 걸까. 네가 수천 번 죽은 건 나 때문일까.”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무사했을지언정, 그녀는 다행이었던 적이 없었다.”
신인 작가 문목하의 데뷔작, ‘돌이킬 수 있는’은 SF, 미스테리, 판타지 등의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소설이다. 숨쉬기 힘들정도의 흡인력에 이 책에 빠졌고, 잠깐의 꿈을 꿈 것 같았다. 환상통이었다.
작품이 독자에게 대서사시를 상상하게하는 것이, 예술의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작가 문목하는 이를 마법같이 너무 쉽게 다뤘으며, 나는 그 흐름을 즐기고 함께했다. 
나는 정여준이었고, 윤서리였고, 최주상이였다.
“난 네 옆에 있어도 괜찮아. 너 같은 사람이 돼도 괜찮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소설)

 “이게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의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안고 있으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김영하의 단편소설집. 8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내가 알던 김영하의 정수를 보여준다. 김영하 작가를 좋아했던 그의 거침없는 문체와 표현들, 서슴없이 드러내는 에로티시즘, 죽음, 비극, 인간.
이야기꾼 김영하는 실재와 환상을 오가는 구성방식을 보여주며, 허무함의 결말은 공허함을 즐기게 만든다.

검은 꽃 (김영하 장편소설)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거야.”
김영하는 민족의 역사를 폭로나 고발의 차원이아닌, 이야기 그 자체로 제시한다. 그저 미적 대상으로 전유시킨다. 
 
국가를 떠난, 그리고 돌아갈 국가가 없는 그들. 아주 멀리에서 온 그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허공에 몸을 던진다.

28 (정유정 장편소설)

재앙의 디스토피아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되는가. 
생명의 존중따위는 저버리는, 존재의 타당성을 무시하는 인간의 이기심.
처음읽어보는 정유정의 소설. 다양한 인물의 시선에서, 개의 시선에서 이 책을 서술한다. 흔한 소재에서 독특한 전개방식, 허무하기까지 한 스토리가 충격적이다. 
그녀는 생명을 바라보는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동시의 ‘희망’을 얘기한다.

은밀한 결정

특별히 두드러지는 고통도, 유혈도 없이 고요하게 멸망하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오가와 요코의 은밀한 결정은 질문에 대해 지극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완벽한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대척점에는 디스토피아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현실 비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인 만큼 이런 세계관에는 억압과 강제가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은밀한 결정에서 등장하는 ‘섬’의 분위기 또한 비밀경찰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고 각종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로 묘사되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섬에는 아주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사람들이 살아간다. 특별한 대의를 품거나 개척할 것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순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설령 자기 신체의 존재가 소멸하여도 말이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는 존재의 소멸이다. 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 날 전조도 없이 ‘소멸’한다. 일상적인 아침, 눈을 뜨면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 사람들은 소멸을 인식한다. 소멸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한 감정과 기억까지 모두 빼앗기고 마음에 절대 채워지지 않는 상실을 겪게 된다. 향수는 더 이상 어떤 향기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액체에 불과해지고 리본은 의미 없이 흔들리는 끄나풀이, 모자는 머리에 얹어지는 알 수 없는 물체가 된다. 그 존재에 어떤 추억이 있었든 얼마나 각별한 추억이 있었든 관련 없이 모두 공평하게 아무런 감정도 일으키지 못하는 물질로 변해버린다는 건 평범한 생각으로 어떤 기분일까? 어제까지 즐겁게 감상했던 소설이나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어떤 기억도 추억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서글프게 느껴질 것 같다는 짐작이나 겨우 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세계관에서의 소멸은 그런 감상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소멸한 것은 사라진 존재이므로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감정이나 기억도 남기지 않는다. 즉, 소멸한 것을 추억할 기회조차 박탈해 간다는 점에서 단순히 잊어버리는 것보다 깊은 마음의 구멍을 남긴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사라지는 것들은 더욱 많아진다. 주인공인 ‘나’는 새가 사라짐으로써 들새 연구자였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강탈당하고, 성인이 되고 소설가가 된 후 소설이 소멸하자 직업도 잃는다. 다행이라면 이 세계에서 이렇게 직업을 잃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에 곧 새로운 직업을 구하고 쉽게 적응한다. 나는 이 지점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소멸에 익숙해진 탓에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모습이 고요하게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사라지는 것은 점점 더 일상 깊은 곳으로 다가오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양 아무렇지 않게 소멸의 재앙을 맞이한다.
이 작품에는 풀리지 않은 것들이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이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기에 ‘나’로 표기된 주인공의 이름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 소멸은 어떤 이유로 발생했다거나 비밀경찰들의 존재에 대한 의문점이나 그들이 어째서 소멸한 것들의 잔재까지 전부 소멸시키려 하는지, 책의 종장 부분에서 그 소멸 이후에도 그들은 왜 영향받지 않고 기억을 잃지 않는 사람들은 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등 책을 전부 마무리 지었음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나는 상상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느 정도 궁금한 점은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는 편이라 이런 마무리가 아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주인공과 동일하게 사라진 것들은 알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맥락에 비추어 보면 이런 결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만일 진부한 재앙으로 인해 멸망하는 전개에 질려버린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권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골든아워 1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가끔은 드라마나 소설보다 사실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창작물이 주는 그 표현력도 좋지만,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의 이야기와 그 줄글들이 주는 현장감은 결코 창작으로 대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기록을 찾아 읽곤 한다. 그런 책을 읽어도 크게 마음에 와닿은 적은 몇 번 없었으나 이 책을 읽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마음이 힘들어한다는 걸 느껴볼 수 있었다.
중증외상센터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구성한 골든아워1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장소 자체가 생과 사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장소이기도 하거니와 병원이라는 곳을 방문하는 건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상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프고 다칠 때가 되어야 병원에 방문하고, 그 결과 살아남거나 죽기도 한다. 특히 배경인 중증외상센터는 정말 1초의 순간으로도 생사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위급한 사람들이 찾아오므로 이야기가 절대 행복하고 낙관적으로 읽힐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응급 의료 시스템은 마냥 발전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전화 한 통이면 구급차를 부를 수 있으나 응급실이 부족하거나 힘든 응급실 근무 특성상 자원하는 사람들도 적다. 게다가 환자의 신속한 구조와 치료를 위해서는 응급 헬리콥터 등의 사용이 필연적인 것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국토가 산지인 데다가 헬리콥터 소음 때문에 민원도 자주 발생하므로 한 대 띄우는 것도 어렵다. 평소에는 그런 기사들을 보면서 단순히 더 배려하면 좋을 텐데 같은 막연한 생각을 가졌으나 이 책을 읽으며 그건 배려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 약간의 강제가 있어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소음, 잠깐의 불편함으로 누군가의 생명 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그 정도 불편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근 있었던 의대 정원 증원과 의사들의 파업, 단체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의사들이 자신의 이득만을 찾기 위하여 저런 행동을 한다고 하고, 비난도 많았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없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제 손에 들어올 힘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니까. 그래서 의사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환자들을 위해서,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하여 끝없는 싸움을 하고 계신 이국종 교수님 같은 분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수 있었다.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소설집)

먼 미래, 우주를 정복하고 더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는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공상 과학이라 부르는 이야기는 잘못하면 뻔하고 흔하며, 참신함이 부족해지기 쉬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고,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막연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를 읽었을 때 흔하지 않은 소재가 주는 신선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단편 SF 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내용은 미래 사회에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상 같은 비일상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억을 사고파는 것, 그로 인해 제 진로가 불분명해진 사람들의 이야기. 바이러스가 창궐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여기까진 흔한 내용일 수도 있으나 세 번째 단편인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 에서 화성의 부동산을 가지고 인생 마지막 배팅을 하는 장면을 볼 즈음부턴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득히 상상하기 어려운 먼 미래의 이야기에서 현실이 느껴진다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뒤의 이야기는 더욱 재밌는 단편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지루해질 수 있으므로 길게 적지는 않겠다.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볼 수 있기를 권한다.

바꿀 수 없는 건 너무 많고 (그래도 바랄 수는 있는 거니까)

무언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을까? 다들 한 번쯤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좋아서 혹은 아쉽고 안타까워서. 차라리 시간이 멈추어 여기에 고정된다면 놓치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을 것 같은 순간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감정들이 영원할 리는 없다. 사람은 삶을 살고, 시간의 흐름을 타고 지나다 보면 변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했던 마음이 변한다고 하여 그 물건에 가졌던 사랑이 완전히 식어버리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은 이 책의 초반부에 있는 ‘사랑했지만 잃어버린 것들’이라는 단편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파란 장우산이라 한다면 무언가 특별한 감정이 들까? 보통은 그냥 우산이구나 하고 말 것이다. 우산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작가는 몇 년 동안 쓰던 푸른 장우산을 잃어버렸다. 이렇게만 서술되어 있다면 그저 작은 실수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산을 잃어버리는 행위 자체에 지쳤던 인물이 다시는 그런 경험이 없게 하려고, 자신에게 특별한 푸른 장우산을 결국 또 잊고 말았다고 하면 어떨까? 그쯤 풀어놓는다면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마음을 가진 우산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알고 싶어하고, 결말을 궁금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 우산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일상생활 속, 자리를 옮겨 다니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시한 결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소중한 것이라고 애지중지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만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중요한 기억에서 멀어질수록 마음 또한 멀어지게 되는 법이다.
아무리 사랑했고 좋아했던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열렬함이 식는다. 마음이 식어갈수록 처음과는 달라져 버린 자신의 감정을 보곤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던가, 혹은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것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를 열렬히 사랑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고 우울해하거나 공허해 할 필요는 없다. 이 마음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니까. 작가는 자신이 현실에서 겪고 느낀 이야기와 감정을 통해 이처럼 담담한 삶의 방식을 알려준다. 어쩌면 괜찮았던 일이었을 수 있다고, 잘못도 실수도 아닌, 그냥 지나가는 삶일 수도 있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뒤를 돌아보는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문고판)

 데일 카네기는 심리학자보다 영업 실무자에 가까웠기에 오히려 조금 더 이해 하기 좋은 책 이였던 것 같다. 먼저 내가 생각하는 이책에서 말하는 인간관계 에서 중요한 법칙은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이다. 
 위의 내용을 조금도 풀어서 말해보겠다. 데일카네기는 저명한 학자가 아닌 실력이 좋은 세일즈맨 이였다. 그가 세일즈를 할 때마다 사람을 잘 구슬릴줄 알아야 했고, 잘 구스려야 실적으로 연결이 됐기 때문에 그는 어느 심리학자보다 긍정관계에 대해서는 우월 하다고 볼 수 있다. 학자는 아니었기에 이론적인 배경은 조금 부족했을 수 있지만 방법론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 하기에는 그의 방법이 굉장히 적합했다. 그래서 초판이 발행된 1930년대 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내용도 사실 정말 어렵지는 않은 내용이다. 비난 비판 보다는 칭찬과 감사를, 진심을 기울인 경청, 이해와 독려 등이다. 사실상 현대 교육과정중 유치원에서 배울법한 내용이고 아주 기본적인 사람을 예의 있게 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 조금 의아 했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내용들로 구성이된 책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기간 잘팔리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가장 기본적인 것 이지만 가장 잘 이루어 지지 않는 것 이였다. 우리는 누구나 본인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소심한 사람과 대담한 사람이 있지만 그들 나름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문제다. 한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뜰 수 없듯, 한 상황에서 동등한 권위를 가진 두명의 주인공은 존재 할 수 없다. 1900년대 초반에도 그러 했던 것이고 현재인 2020년대에도 동일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오래동안 팔릴 수 있던 것이다.

 다시 내가 생각한 이 책의 주제인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을 긴 문장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상황에서 본인을 낮추고 그 타인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호감을 형성한 후 우위를 점하라”다. 무조건 저주는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좀더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에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다.  이 심리를 적절히 활용해 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일즈맨 이였던 데일 카네기가 그랬듯이.
 결론적으로 참 기본적인 내용들을 보며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내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되는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