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중했던 것들 (이기주 산문집)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말이 있다.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 발버둥 쳐봐도 단지 추억일 뿐…’ 정말 그러했다. 이별 후에 사무치는 감정과 단어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무기력하게 휩쓸려 가라앉을 뿐이었다. 돌이켜 당시의 기억들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갈 무렵, 한 움큼 떨어져나가 생겨난 공허에 작은 알갱이들이 쌓여 상처를 메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무릇 가장 소중한 것이 가장 먼 곳으로 떠나간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결말이 정해진 가운데 부단히 읽고 헤아려야 한다.

 책을 읽으며 많은 문장을 노트에 적어 수집했다. 어떤 문장은 위로로, 어떤 문장은 선택으로, 어떤 문장은 상처로, 어떤 문장은 후회로 적었다. 책을 읽고 문장을 적는 것으로 이별이 익숙해질 거란 생각은 않는다.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이별들은 또다시 상처로 남아 나를 침잠(沈潛)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 언젠가 새살이 돋을 것을 안다. 오래토록 그리워함으로, 소리 없는 울음으로 새살이 돋을 것임을 안다. 그리하여 흉터진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가끔 이 책을 꺼내어 읽으며, 수집한 문장들을 되새김질하며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추억할 그 날을 기다려본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에세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거목(巨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오고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고집 때문에 어김없이 실패한 사랑에 끝자락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학기의 성적표 앞에서, 자잘한 일에 쉽게 화를 내고 좌절하는 모습들 속에서, 여전히 어린 아이 같을 뿐이었다. 조금도 자라지 못했다.

 책의 저자는 기분부전장애불안장애라는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녀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점이 꽤 많았다. 극단적이라는 점, 그래서 중간이 없는 것, 작은 실수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점(나에게나, 남에게나)이 그러했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하루, 한 주, 한 달의 기분이 좌우되기도 하는 점이 그러했으며, 사람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며 이상적인 내 모습을 그려내기 바빴던 점이 그러했다.


 책을 읽으며 정신과 전문의와 저자의 상담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나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비슷한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위해서 합리화해도 괜찮다는 말이(물론 과도해지면 문제가 된다고는 했지만) 위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조금씩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라는 말이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용기가 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베스트앨범은 사지 않아등 많은 시와 자기계발서와 노랫말들이 우리의 상처를 긍정하고, 그늘을 긍정한다. 또한 청춘은 아픈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힘을 내서 이겨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어떤 때는 위로보단 상처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할퀸다.

 이제 나는 확실하게 위로가 되는 말을 안다. 앞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을 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아, 떡볶이 먹으러 갈까?”

 

나목.도둑맞은 가난

 나는 자존감이 상당히 낮다. 지내온 환경이 나쁘다거나 학대를 받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어느 시점부터 나는 나 자신이 비참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흘러가는 시간은 붙잡을 수 없고 시간은 흐르는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 가건만 나는 지나간 시간을 쳐다보며 후회하는 일생을 보낼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졌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보낼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나일지라도 자기 애 한줌 정도는 가지고 있다. 자존이 낮지만 나는 나를 사랑한다. 비참하고 음험하고 성격 나쁜 나를 좋아한다. 낮은 자존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기적인 사랑이다.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 생각 하지만 나만은 나 자신을 사랑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무리 하찮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 즉 낮은 밑바닥의 사람 일지라도 그 밑바닥을 결국 받아 들이고 인지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히에라르키 최저편에 위치한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 저열한 감정은 너무도 물러 쉽게 부셔지고 고장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생을 지탱해주는 마지막 남은 생명선을 자른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 것 인가.
 
  소설 속 ‘나’는 가난한 여인이다. 가지고 있는 건 한푼 없는 사회 밑바닥의 일생. 그러나 그녀는 밑바닥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가난하기에 가질 수 있는 자긍심이다. 모든 걸 가지지 못한, 사회에 버려진 불쌍한 여인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남은 자존의 조각. 그녀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지켜간다. 남들이 보기에는 더럽기만 한 쓰레기 일지라도 나에게는 보물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수십번 되새기며 살아 간다. 그런 그녀 앞에 어느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자신과 동류의 인간이지만 너무 허술하다. 그런 그에게 ‘나’는 가지고 있는 보물을 뽐낸다.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점점 가깝게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사라진다. 그녀는 걱정을 하지만 생계를 포기하지 못하고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그리고 다시 그의 등장. 그는 자신이 부잣집 자식이며 가난을 경험하기 위해 속였다고 고백한다. 자신에게는 이 모든 것이 강제로 부여된 원죄이건만 그는 그것을 가벼운 유희처럼 다룬다. 그것이 태어나서부터 가지게된 원죄 일지라도 그녀에게는 그것이 마지막 남은 보물이며 자긍심이었다. 그녀는 그를 화내며 쫒아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일생을 보물이라 생각해왔던 가난은, 그의 가벼운 유희로 인해 모래알 처럼 부셔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단칸방 한켠 망가진 가재도구들 불과 방금 전 까지만해도 자긍심이었던 모든 것들이 더러운 것들이 되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자긍심, 자존의 조각까지 남김 없이 훔쳐간 것이다. 소설은 여기서 끝이 난다. 그녀의 일생이 어떻게 진행 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글쌔 행복한 일생을 보내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흔히들 인간은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 나고 싶어서 태어 나는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타의에 의해 태어나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탄생을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이 종교적 윤회의 개념이든 내세의 탄생의 개념이든 우리는 목적이 없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수많은 외적인 조건들이 달라 붙는다. 부모님의 재력, 받는 교육, 부모님의 애정 등등. 이것은 내가 무슨 수를 쓰던 바꿀 수 없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삶의 목적을 가져야 된다니. 결국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삶의 목적을 정하는 순간에도 자기자신이 아닌 수많은 외적 요소들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 모든 것이 나의 선택 외의 결과물 이었건만 사람들은 이것을 나의 선택이라 한다. 무엇하나 골라본적 없는 멍청한 나는 그것에 수긍하게 되고  주경야독, 개천에서 용이난다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속아 항상 위를 바라보며 갈망하게 된다. 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그러나 멍청한 나이기에, 낮은 자존을 가지고 있는 나를 사랑한다. 부자들에게 저열한 감정을 품는 나를, 부족하게 태어나 노력하며 발버둥 치는 그들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병신같은 나를 사랑한다. 이는 소설에 나오는 가난을 보물처럼 여긴 주인공과 같은 감정이다. 남들이 보면 그런 저열한 자존, 쓰레기로밖에 생각하지 못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생의 유일한 보물일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남이 가지고 있는 보물을 신포도로 여기며 자신이 가진 자존을 보물처럼 닦는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는 원래 세계 일주를 목표로 하는 자유로운 여행자였으나 월드비전에 합류하면서 긴급구호요원으로 활동을 합니다. 사실 세계 여행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현재 이루어 놓은 것을 다 포기하고 떠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비야는 그것을 넘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까지 합니다.

한비야는 구조의 세상은 우리가 아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무한경쟁의 세상이지만, 구조의 장을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서로가 경쟁의 대상이 아닌 사랑해야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대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으로 가기 전 경쟁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비야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느꼈습니다. 한비야는 경쟁의 세상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구조의 세상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학생은 한비야에게 재미있는 세계여행이나 계속하지 왜 힘든 긴급구조를 하세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한비야는 이에 구조하는 일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한비야는 자신 스스로에게 항상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진하고 소진했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한비야는 그것이 긴급구호라고 확신했기에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긴급구호는 아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한비야가 처음 긴급구호를 나간 아프가니스탄은 갑자기 총격전이 벌어질 수도, 폭탄이 떨어질 수도, 지뢰가 있을 수도 있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험들을 이겨내고 죽음 문턱에 있는 아이들을 살려내는 일은 한비야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아이가 살아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보면 그동안 힘든 일들이 싹 잊혀지고, 행복만이 가슴속에 차올랐다고 합니다. 남을 돕는다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글을 읽기만 해도 전해졌습니다.

비록 우리는 한비야처럼 긴급 구호 팀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지만, 세상 속 소외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준다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

이 책은 타우누스 시리즈의 첫번쨰 소설이다.
산자와 죽은 자를 읽고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고 싶어져서 중고서점에 가서 사왔다.

 

이 책도 등장인물이 매우 많아서 적으면서 읽었던 기억이난다.

책의 시작은 두명의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검사와 이자벨이라는 여자이다. 읽다보면 이 두 살인사건이 연관된 것임을 알게된다.

등장인물중에 누가 사건의 범인인지 유추하기가 쉽지않아 흥미진진하다.

결과적으로 사건의 범인은 제목과 연관되어있다.

사랑받지 못한여자가 사랑받고싶어서 저지른 사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돈만 원하고 사랑은 주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복수이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마음이란 상상도 하지못할 만큼 비참할 것이다.

 

여자의 시기와 질투로 인한 분노는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너무 친한 친구들

이 책은 타우누스 시리즈 중 두번째 책이다.

 

타우누스 시리즈의 특징은 등장인물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또한 이름이 독일 이름이어서 읽다보면 누가 누구였는지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애초에 메모장으로 인물을 적으면서 읽었다.

 

이 책은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초반부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또한 많은 등장인물중 누가 살인사건의 범인인지 유추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사건의 원인은 제목과 연관이 있는것 같다.

친구 넷이서  더블라이프라는 회사를 차려 공동사장으로 있고,

이 살인 사건은 그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나 생긴 것이다.

 

추리소설이라 교훈이 남는 책은 아니지만 심심할 때 읽기 좋은책 같다.

산 자와 죽은 자

우연히 중고서점에 들러 표지가 맘에 들어 샀던 책이다.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아서 약600페이지나 되는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이 책을 한번 피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금세 다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책은 처음부터 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초반부터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4명인가 5명의 살인이 발생한다. 살인사건의 시발점은 한 여인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여인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중태에 빠지게 되는데 뇌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기이식으로 돈을 벌고 싶었던 의사는 뇌사판정을 내려 죽게 만든다.

그 이후로 딸이 엄마의 죽음에 대해 뒷조사를 하고 다니다 살해를 당하게 되는데 이것도 자살로 위장된다.

 

이를 견디지 못한 아버지가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의 주변사람을  살해 한다.

아버지가  당사자가 아닌 주변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 너도 나와같은 고통을 느껴보라는 뜻이 었던것 같다.긵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자살을 하고  끝나게 된다.

 

나는 책을 집중력있게 읽지 못하는 편이라 초반이 재미없게되면 끝까지 읽지 못한다.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타우누스 시리즈 중 하나이다. 앞으로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어볼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사람이 사람이기를 위한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사회적 기초도덕 준수? 인간관계? 아니면 cogito, ergo sum?인간으로서의 철학적 사유가 자신을 사람으로서 입증 하는 것인가. 여러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4차산업혁명이 진행되는 현재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란 무엇인가.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0과 1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을 인격이라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발전이 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유를 따라잡는다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를 단순히 물건으로 취급할수 있는 것인가. 사람만큼의 사유를 할수 있다면, 이는 그것 만으로 인격체로 판단해야 되지 않는가. 과학 발전은 인류에게 여러 철학적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sf라는 장르가 있다.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과학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먼저 집고 넘아간다. 의학 소설로 유명한 로빈 쿡은 인간복제의 기술이 나오기 전에 인간 복제가 불러올수 있는 윤리적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이 인간으로서의 실존에 대해 문제점을 던져왔다.

 
 
 이 작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근미래 핵전쟁 이후 지구는 몰락하고 동식물이 사라지고 황폐해진 세계에서 인류보다 지능이 뛰어나지만 감정이입이 부족한 안드로이드를 쫒는 현상금 사냥꾼의 이야기 이다. 주인공인 릭 디커드는 동식물이 사라진 세계에서 기계로 만들어진 전기 양 대신 살아있는 양을 사고 싶어 하며 그것을 위해 도망친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서 이 작품은 인간이 가진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 속 안드로이드는 외형적으로는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하다. 정밀한 사고회로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골수검사를 통해만이 가능하다. 작중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는 4년이라는 짧은 수명과 공감 이다. 안드로이드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이는 작 중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인간과 같은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 보다 못한 인간. 인류와 안드로이드를 나누는 간극은 점점 더 좁혀지며 주인공이 안드로이드로 몰리기도 한다. 단순히 안드로이드를 도구로, 기계로 취급할수 있는 것인가. 이는 단순히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비교에서 인간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사회적 공감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를 인간으로서 볼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흔히들 이런식으로 말한다. 넌 인간도 아니야, 개자식, 등등, 부정적인 상용어로 인간성의 상실을 들먹인다. 그렇다면 그 인간성의 상실이란 무엇인가. 보편적인 의미로는 도덕의 상실일 것이다. 공감능력의 부재일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간성은 그것에 있다고 볼수 있는가. 사람보다 사람다운 안드로이드,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이코 패스. 둘중 누가 인간이고 사람인 것인가. 깊은고찰을 하게 된다.

모모 (: Momo(1973))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옛날 사람들에 비해 요즘사람들은 여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옛날보다 수명도 길어졌고, 그만큼 주어진 시간도 많아졌는데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걸까요?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컵 떡볶이를 사먹고,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에 엄마가 부르시면 그제야 집에 들어가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학원에 다니는 기계 같습니다. 시간에 쫒기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정작 현재의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모의 이야기에서도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변해갑니다. 모모는 허름해진 원형극장 한 구석에 살고 있는 고아 소녀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이런 모모를 가엾이 여겨 같이 집도 꾸며주고, 음식도 나누어주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모모와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지요. 이렇게 인정도 많고, 여유 넘치던 사람들이 회색의 모습을 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 이후에 마을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한다는 목적으로 바삐 살아가지만, 결국 그들은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길 뿐 점차 여유를 잃어갑니다. 모모를 매일매일 찾아오던 마을 사람들은 모모에게 쓰는 시간도 아끼게 되고, 결국 모모는 혼자 남게 됩니다. 회색신사들은 모모에게도 접근을 했지만, 실패를 하게 되고, 자신들에게 방해꾼이 된다고 판단하여 모모를 처리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모모는 거북이의 도움으로 시간 관리자인 호라 박사를 만나 회색신사들을 모두 없애고,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줍니다. 모모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여유를 되찾게 됩니다.

이곳에 나오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모모와 같이 회색신사들을 무찌르려 노력했지만, 결국 회색신사의 수족이 된 어른들의 전략 하에 탁아소에서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무언가를 배웁니다. 이 모습에서 저는 예전과는 다른 현재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뛰노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워서 머릿속에 무엇인가를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노는 시간을 아껴 머리에 무엇인가를 남길지는 모르지만, 모모의 친구들처럼 아이들의 마음속은 점차 쓸쓸해 질 것입니다. 모모의 친구들도 허름한 원형극장에서 놀던 때를 항상 그리워했었습니다. 아이들 뿐 만이 아닙니다. 마을사람들도 모모네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하던 시간들을 떠올립니다. 결국 모두가 여유를 바라지만 이유 없이 그들은 항상 시간에 쫓깁니다.

저는 모모의 친구 중 기기라는 관광안내원의 이야기를 통해 왜 사람들이 모모를 그리워하면서도 돌아오지 않는지 깨달았습니다. 기기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모모에게 매일 찾아가 새로운 이야기들을 해주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회색신사들의 계획으로 기기는 유명해 졌고, 관광안내원기기가 아닌 이야기꾼 기롤라모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모모와 같이 시간 도둑인 회색신사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기기는 너무 바빠져서 모모가 찾아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졌습니다. 기기가 다시 모모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부와 명성 때문이었습니다. 기기는 모모와의 즐거웠던 때가 그리웠지만, 부와 명성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가난뱅이 관광안내원 기기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잃을 것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부와 명성 때문에 시간에 쫒기며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회색신사들도 결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온 욕심이라 생각합니다. 모모는 그런 욕심에 물들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모두들 그런 욕심에 물들지 않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러기는 쉽지 않습니다. 경쟁사회에서 남을 이겨야만 취직을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행복과 여유를 찾기 보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경쟁의 사회에서 부와 명성을 쫒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따라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 사람들은 마치 회색 신사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자유로운 모모의 모습 같습니다. 저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삭막한 시간들을 살아가기 보다는, 모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세상을 따라서 가기 보다는 자신의 가치에 따라 행복해 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곳 세트(전6권) (최규석 만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부조리를 목격한다. 학생때는 양아치학생들의 솜방망이 처벌, 군대에서는 선임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수많은 폭력과 욕설, 간부들의 성희롱과 공갈 협박 등, 사회로 가면 얼마나 더 많은 부조리를 목격하게 될것인가. 무서워질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저항 조차 하지 못 한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알기 떄문이다. 우리가 꿈틀 한다 할지라도 변하는게 없음을. 군대 전역 6개월전 나는 후임의 성희롱피해를 계기로 소대원 전부의 의견을 모아 소대장을 신고했다. 소대원들의 곪아있던 것들을 모두 받아 적었고 그것은 단순 폭력과 사적 제재, 차별행위와 성희롱 협박 등등 다양한 범죄행위였다. 우리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고 용기를 내 행위로 옮겼다. 결과는? 대대장은 우리 소대원 전부를 불러들여 말했다. 명령불복종이라고. 너네가 하는 행위는 집단으로 모여 상사를 모욕하는 행위이며 이는 쿠테타에 비견될 만큼 큰 죄라고. 물론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처벌은 할거지만 너네도 잘한 것은 없다는 초등학교 때나 들었던 어처구니 없는 니가 잘못했으니까 상대도 그런 거다라는 말은 소대원 전부의 입을 다물게 하였고, 소대장은 경고장 한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그 뒤 나는 어처구니 없는 꼬투리로 가지고 있던 모든 휴가가 잘렸으며 소대원 대부분이 포상휴가를 못 받는 사적 제재를 당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꿈틀댄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그저 숙이는 것 이었다. 가뭄에 말라 비틀어진 지렁이 처럼 우린 비틀어 썩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전역한지 2년 아직도 소대장의 이름을 잊을수가 없다. 중위 박종만. 그가 소설에나 나올 틀에박힌 악역같은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이었다. 대학교 rotc출신으로 군생활 끝나면 장사를 할 생각을 하고있고 여자친구를 원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누구보다 악당이었고 철천지의 원수 였다. 
 
 이 책 송곳은 노조를 만드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이수인은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사람으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악행들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그것을 막기위해 노조를 만들 고자 한다. 그는 불합리와 싸우는 투사가 된다. 그는 온갖 악재와 싸운다. 자신을 적대 하는 상사. 소 닭보는 눈으로 쳐다보는 자신의 부하직원들. 당신들의 권익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건만 그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주인공 이수인은 가장이다. 아내와 함께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있다. 그는 그의 회사 노조 한국지부 위원장이며 그의 자리에는 컴퓨터가 없다. 우리는 항상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복을 받는 다고 배운다. 어린아이에게 이야기 해주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에서도 나온다. 공주를 괴롭히는 마녀나 계모는 벌을 받고 공주는 언제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선의는 선의로 돌아오지 않으며 악인은 벌을 받지 않는다. 약하다고 무조건 착한 사람인 것은 아니며 부자라고 나쁜 사람인것 또한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나온다.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랑 싸우는 것이라고. 주인공의 악전고투에도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픽션 안에서라도 해피엔딩을 바라지만 쉽게 이루어 지지 않는다. 여러모로 씁씁할 내용이다.
 
 작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비겁하고 무력해 보이는 껍데기를 잡고, 흔들고, 압박하면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이 작품의 제목이 되는 부분이며 나의 꿈이기도 하다. 나는 송곳같은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부조리에 눈을 돌리지 않고 싸우는 그런 투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상대는 싸워서 이길수 있을 체급이 아니었다. 누구든 용기를 가질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거대한 산이라면? 그것을 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만용이 아닌가. 녹 슨 송곳 한자루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가. 작품 속 주인공은 그런 녹 슨 송곳 한자루 일지라도 싸운다. 처절하게. 작품 속에 내가 원했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건만 나는 그것을 행하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마음 속의 송곳을 부여 잡고 만용을 참으며 하루하루 숙이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