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저자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여성이 약자가 되었을 경우를 떠올리며 작성한 글이다. 연애, 결혼을 포함하여 모든 사회생활 즉, 사회운동과 학교, 가정, 회사 등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적 요소를 담은 책이다. 그럴 때마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대부분의 여성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도서 자체가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이다.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타 국가와 대한민국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갖춰나가야 할 점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도 갖추어야 할 인식의 개선 또한 요구된다고 본다. 우선 대표적 선진국 유럽 아일랜드에서는 한 여성이 낙태를 하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많은 시민단체가 분노하고 그로 인해 낙태죄 폐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년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낙태는 임신이라는 행위가 남녀 모두에게 책임이 부여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법이라는 점에서 불평등하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독일에서는 낙태 합법화가 이루어진 후 결과적으로 낙태율도 2007년 6명에서 2014년 5.5명으로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가임기 여성 1000명 당 출산율은 약 3명씩 상승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독일 전문가들은 낙태 합법화는 생명 경시의 시작이 아니라, 생명 존중의 출발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폐지가 되지 않고 오히려 낙태죄의 처벌이 강력해져서 여성이 반강제적일지라도 결국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그것이 정말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이어, 미투 운동이 실패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도 나눈 적이 있다. 사실상 미투 운동이 잠잠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여전히 성폭력, 성희롱 등의 피해 여성이 속출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미투 운동과 같은 사회적 운동은 불씨와 같아서 잠잠해진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다. 작은 사건 하나가 생김으로써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투 운동은 결론적으로는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미투 운동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많은 여성들에게 사실을 고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직장 내 성폭력과 학교 내 성폭력을 수면으로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심신미약이나 증거 불충분들의 사유로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지 않고 2차 가해가 무분별하게 일어났다는 점에서는 실패를 도출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꽃뱀으로 낙인이 찍히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됨을 우려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오히려 못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2차 가해를 저지르는 이들을 엄격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현재 잠잠해진 미투 운동을 더 활성화 시켜야 각종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여성성’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성성이라는 것이 편견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정말로 성 염색체에 의해 나타나는 차이만 여성스러운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주입한 ‘여성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가 규정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사소한 것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여성성을 젠더 정체성이라고 정의하며 여성성과 구별되고, 전통적으로 서양 사회에서의 여성성은 상냥하고 온화함, 감정이입적, 감각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모두 과거의 가부장적 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자는 조신해야 하고 남성을 우선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국내, 외의 남성우월주의가 지금의 ‘여성성’을 만들었다. 여성스러운 여성을 무엇이고 남성스러운 남성은 무엇인가.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학적으로 규정지어진 성은 개인적, 사회적 프레임에 갇힌 고정관념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 일어난 ‘이수역 사건’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이는 과연 여성혐오 사건일까? 나는 이수역 사건이 여성혐오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언론은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느냐에만 초점을 맞추고 피해자를 2차 가해자라고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사건은 남성 다수가 일방적으로 여성 피해자를 계단에서 발로 찬 것이다. 아직 사회가 페미니스트를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술집에서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폭행들 당해야 하는가? 이는 페미니스트를 더 많이 양성해야 할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팀이 읽은 ‘당신이 계속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나 ‘82년생 김지영’같은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에 동의하며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현재 페미니스트는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온라인에서는 서로 보이지 않는 익명성을 띠고 있어 격한 언어로 감정적인 싸움까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이 결코 나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입문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저자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하고 낙태를 결심한 경험, 비혼 주의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세상에 내놓게 되었을까 하는 의도에 대해 궁금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저자 또한 나와 같이 대한민국에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양성되기를 바람과 더불어 숨어있는 페미니스트가 자존감을 갖고 더 활발하게 활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저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이 남의 신경을 쓰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여성의 권리를 찾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미키 마우스, 오늘부터 멋진 인생이 시작될 거야 (작은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자기 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미키 마우스, 오늘부터 멋진 인생이 될거야.’는 참 적당했다. 가끔은 진부하지만 진심이 담긴 짧은 글이 나에게 힐링과 위로가 되어주곤 한다. 언제나 행복한 표정에 생기발랄한 미키 마우스의 모습은 대공황으로 무력감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의 마음에 위로를 주었고, 지금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귀여운 미키마우스들은 나에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긍정의 힘과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한 선택을 할 때, 멋진 인생이 된다는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상식이라는 말에 주눅 들지 않아야 인생이 더 가벼워져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참견쟁이들이 많아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희망사항을 말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 며 나를 제어하려고 하죠.
나를 구속하는 타인의 말에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에게 중요한 가치를 찾는 것이 인생을 좀 더 멋지게 만들어줄거예요.
“남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많이 말했고, 또 그만큼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이다. 안정적인 취업을 포기하고 다시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참견쟁이들이 참 많았다. 내 인생을 내가 선택했을 뿐인데 나는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했고, 또 이러쿵저러쿵 변명해야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남들보다 늦은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타인과 비교하는 순간 주눅 들게 된다. 인생이란 긴 레이스에서 1,2년 늦게 간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또 일찍 취업하는 것만이 답이 아닌데도 우리는 타인의 기준에 맞추게 되고, 얽매인다.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글이지만, 나에게는 나의 선택이 맞았다고, 나는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위로를 하며 확신을 주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바쁘고 정신없게,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억누르며, 그리고 가끔은 실패에 좌절하며 살아온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귀여운 미키마우스의 삽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솔직한 삶의 태도가 사랑스러워요’, ‘내면 깊이 뿌리내린 자신을 믿어요’ 이다. 솔직한 사람을 보고 사랑스럽다고 느낀 적이 있기 때문에 더 와 닿았고, 자신을 믿으라는 말은 나에게 건네고 있는 듯 했다. 귀여운 그림들과 쉬운 글들은 오히려 심적으로 복잡한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사람들의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쉽고 잔잔한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랑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 에세이
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되풀이되는 연구 부정과 자기검증이라는 환상)
카이스트 교수 정재승 물리학 박사가 추천한 책이라 읽기 전부터 흥미를 더했다. 우리는 황우석 박사의 사태를 통해서 과학적 기만행위가 가져온 허탈감을 잊지 못하고 있는 터라 과학자들의 자기기만 매커니즘의 행태에 대한 놀라움과 실소를 금할 길 없다. 이 책은 교과서나 위인전을 통해서 절대적 존경과 우러러움을 받는 저명한 과학자들조차 그들의 기만행위가 낱낱이 밝혀져 있다. 흥미와 경이로움 때론 대경실색하며 나는 단번에 이 책을 읽어 나갔다.
1천 5백 년 동안 중세의 우주와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천동설을 역설한 프톨레마이우스의 연구는 히파르코스의 연구를 차용한 것이라는 사실의 놀라움과, 철저한 실험과 실증을 걸쳐 완성 되었다고 알려진 갈릴레오는 우리가 알고 있는 허상에 불과했다. 그는 아이디어와 머릿속의 사고실험을 더 좋아했다. 관찰자의 임무를 방기한 르네상스의 대표적 과학자 갈릴레오의 피사의 탑에서의 실험은 허구의 이야기임을 밝히고 있다. 근대 물리학의 창시자 뉴턴은 실제 결과가 그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자 거짓 데이터로 자신의 주장을 보강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론과 정확히 일치시키기 위해 자신의 중력 이론에 포함된 변수의 상관관계를 고쳤다.
과학자들은 출세주의와 명성에 눈이 멀어 데이터를 고친 사례는 허다했다. 1923년 전자의 전하를 밝혀 노벨상을 받은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컨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특히 대경실색과 조롱을 멈출 수 없었던 거짓말의 천재 알사브티 사건은 연구계 전반에 만연한 출세주의 경향과 현대 과학의 내적 메커니즘을 스스로 폭로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하겠다. 병리학자 존 롱은 남성과 여성의 환자로부터 채취한 세포주가 콜럼비아주 북부에 서식하는 갈색 발을 가진 밤원숭이로 확인되었다. 그는 이미 연구비 75만 9천 달러를 지원 받았다. 롱이 어떻게 동료평가를 통가해서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무가치한 연구가 심사를 거쳐 저명한 저널에 실릴 수 있었는지 등의 의문과 의아함이 회의에 젖게 했다.
만능한 엘리트주의가 초래한 사례, 자기기만과 우매함으로 객관적 데이터가 아닌 감성으로 우매함을 자초한 과학자등의 사례 등을 통해서 과학계에 만연한 자기기만 행태에 대한 스스로의 규찰과 반성의 목소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저자는 그에 대한 해법으로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 지 몰입하며 읽어 나갔다.
저자는 하나의 썩은 사과가 한 상자의 사과를 상하게 한다는 ‘썩은 사과’이론을 제시한다. 그가 제시한 ‘썩은 사과’이론에는 철저한 고찰과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실증적 실험으로 숙고 하고 있을 많은 과학자가 있음을 반증함과 동시에 하나의 썩은 사과가 사과상자 전체를 썩게 만들 듯이 한 명의 과학자의 기만행위라고 절대 가볍게 간과해서는 안 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라 보여 진다. 그는 과학의 자기규찰 시스템을 구성하는 세 가지 메커니즘으로, 첫째 동료평가, 둘째 심사위원 제도, 셋째 재연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과학적이라는 것이 종교나 관습 정치 때론 과학자의 명예욕이나 출세주의 등으로 비과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놀라웠다. 철저한 자기규찰 시스템의 작동에 앞서서 과학자의 사명과 역사적 소명을 의식해야 한다고 본다. 과학자임과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양심에 호소해 본다.
소년이 온다 (한강 장편소설)
9살의 어린 나이에 한강이 겪었던 광주에서의 잔상이, 인간의 폭력과 참혹함에서 결국은 존엄으로 나아가려는, 유려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어진다. 소년이 뚜벅뚜벅 걸어서 영혼이 되어 지나간 이야기를 지금 여기의 이야기처럼 그려낸다.
5월의 광주의 시공간에서 펼쳐진 참혹한 학살과 폭력의 잔인성을 마주한 그녀의 문장은 세심하고 소상하며, 독특하고 낯설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필사하고픈 유혹의 아우성을 만들어낸다. 첫 장에서 인칭은 내가 당신을 지칭하는 너이다. 나는 혹은 독자는 ‘너의 행동과 시선을 따라가면서 영화의 한 신 한 신의 스크린을 들여다보듯 생동감에 젖게된다.
한강의 서술방식은 독특하다 그녀의 배경묘사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논리성을 형성한다. 가령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은행나무를 지켜본다.’에서 너의 행동을 둘러싼 배경은 가지사이의 바람의 형상으로 표현되고, ‘공기틈에 숨어져 있던 빗방울들이 튕겨져 나온다’고서술한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껴진다. 그것이 나뭇가지의 흔들림에서 인지하듯이 너라는 존재가 작고 마른 소년이 5,18광주의 아수라장에서 존재함이 잘 보여지지 않지만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처럼 작고 여린 소년이 그린 형상과 울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이다. 그 중 하나의 색깔인 폭력과 잔인함을 어떤 치유의 과정을 거쳐 인간의 존엄성으로 껴안을 수 있을까라는 필자의 숙고와 힘든 고민의 흔적을 나는 동호엄마의 투박한 독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작은 형이 물러준 교복이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겨우 몸에 맞았던 작고 여린 체구의 동호였고, 그런 동호가 너무 예뻐 한없이 뒷모습을 지켜봤던 동호 엄마였다. 동호엄마의 진솔한 사투리의 울림은 컸다. 한 밤중 시계소리 마저 잠든 고요한 시간에 작은 미세한 울림이 쿵하며 심장에 된소리를 자아냈다.
정대를 찾아 해매는 동호는 선주누나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라고 한강은 서술하고 있다. 일지도 모른다. 라는 추측성 화법에 상당히 감정이입이 되어 나는 정대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년이 온다’ 속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치욕이 되어 일생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함에 괴로워하며 수 십 년이 흐른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 이지만 현재형의 제목을 붙였다.
과거의 상처를 딪고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소설은 역사서로써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려 하면 할수록 덧나는 인생을 우리세대가 이해한다는 것은 자만이며 과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아린 마음을 안고 느끼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한강 산문집,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한강 작품을 여러 권 읽으면서, 허구적으로 창작된 세계 외에 실제 현실 속의 한강작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였다. 빛이 바랜 책의 겉표지가 상당히 연식이 오래된 책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1998년 여름 미국의 이오와시티에서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 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하여 세계의 18나라에서 온 시인, 소설가들과 3개월 간 지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태양의 딸 살리단 ‘나한테도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야 인디언 보호구역의 미션스쿨에서 배웠지. 내가 아파치 말을 쓸 때마다 수녀들이 날 때렸어. 노 아팟치! 한 수녀는 내 세끼 손가락을 세 번 분질렀어.’ ‘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부모는 백인들에 의해 살해 됐어’ ‘나의 남편은 철로에서 백인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무차별 총격에 죽었어.’ 그녀의 세끼 손가락이 살짝 구부러져 있었다. 태양의 자양분을 받아 반짝거리는 비옥한 토양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을 살리단의 세끼손가락 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사에 나는 숙연해졌다. 그녀에게 잠시나마 가졌던 동정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상 쓰고 정면만 바라보고 말 한마디 건내려 하지 않는 인간들은 질색이야. 인생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지’ 살리단의 이 말 한마디가 얄퍅한 동정심으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켰던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언제나 비가 내리지 만은 안고 어김없이 태양은 떠오르듯, 언제나 바람만 불지 않고 잊지 않고 태양이 떠오르듯이 그렇게 태양처럼 살고 있었다.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 절대 비관도 절대 불평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베트남에서 온 하이, 이름도 하이 인사도 하이, 하이라고 말하면 인사와 이름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 경제적인 이름의 하이 그는 열대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 아이오와의 가을을 퍽 신기해한다. 그가 평생 본 눈은 냉장고의 서리가 전부라니 말이다.(웃음) 내가 초등학교 때 캄보디아로 가족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다. 캄보디아 현지인이 “눈을 봤어요? 맞으면 아픈가요? 쌓인 눈은 솜처럼 폭신한가요? 호기심이 가득한 큰 눈동자의 현지인이 우리에게 했던 물음이 생각났다. 한강이 우리말을 할 때 ‘다’로 끝나는 종결어미가 시적으로 운율감을 만들어 아름답다고 표현했던 이, 한강과 멋진 춤을 췄던 이, 그리고 당시 정치적으로 혼란기에 있던 미얀마에서 온 이, 그는 주위의 걱정과 우려 속에서도 민주화를 위해 같이 애 쓴 친구들이 있는 고국으로 결국 간다. 한 명 한 명 한강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 애정이 문장 곳곳에 아름답게 흘려 넘친다. ‘그 지나가버린 시간은 동이 트고 나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수필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결코 돌아오지 않는 유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나 그냥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는 가로수, 발밑을 아슬아슬 비켜간 개미, 다 쓴 샤프심통 하나하나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본다.
주홍글씨 (문예세계문학선 12)
그리고 헤스터와 딤즈데일 그리고 칠링워드의 죄를 살펴보면 객관적으로 볼때의 죄는 간통죄를 저지른 헤스터와 딤즈데일의 죄이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죄를 저지르지 않은 칠링워드가 더 나빠보이고 그의 행동이 오히려 ‘죄’라고 인식되어진다. 이는 칠링워드는 복수의 칼날을 갈며 점점 악의에 차오르는 모습을 통해 묘사되는데 호손은 칠링워들을 통해 복수등의 악, 이성만을 추구하는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헤스터와 딤즈데일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죄는 서로의 감정에서 일어난 죄이며 이성만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라 칠링워드의 죄보다 자신들의 죄가 약하다고 생각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처럼 호손은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성과 지식 등만을 추구하고 이를 내세우는 것보다 감정과 연민 그리고 그들간의 감정 공유와 동정 등을 옳다고 본다. 따라서 그가 살던 시대의 사상적 배경의 영향 등이 작품 속에 담긴 것 같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딤즈데일이 죽기 전 마지막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딤즈데일의 연설의 내용은 잘 알아듣기 힘들었어도 그의 몸짓, 억양, 어조,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반성, 고통의 소리등이 듣는 신도들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또 이러한 그의 연설이나 행동들로 인해 딤즈데일이 존경받고 존경받아왔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칠링워드와 딤즈데일의 대비를 통해 이성과 감정 그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호손이 주장하는 바처럼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만 살펴보면 칠링워드처럼 감정의 공유 없이 이성만을 추구한다면 헤스터가 그에게 느낀 감정처럼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감정의 공유를 통해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공감해주고 상호간의 배려가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신뢰감이 형성되어 끈끈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또한 독거노인 고독사와 같은 감정 공유의 결여로 발생되는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진정한 공감과 감정의 공유가 이루어진다면 좋은 해결방안이 마련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호손의 주홍글씨를 읽으면서 호손의 문학적 특징과 주홍글씨의 여러 상징들을 생각해 볼 뿐 아니라 이성과 감정, 공감 그리고 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