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부제: 상실의 시대]
이야기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함부르크 고향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자신의 열여덟에서 스물까지의 일을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키즈키, 태어날 때부터 키즈키의 연인이라 생각되는 나오코와 자주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키즈키의 자살로 이 관계는 사라지며 남은 둘은 큰 상실감을 품은 채 연락이 끊기죠. 어린 나이에 유일한 친구를 잃고 상실감은 그의 청춘을 좀먹게 되죠. 와타나베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문학도인 그는 독서와 사색을 즐기고 음악을 듣습니다. 원체 조용했던 그는 어린 나이에 유일한 친구를 떠나보낸 여파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런 그에게 기숙사 룸메이트로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체조를 하는 등 ‘규칙적인’ 기행을 저지르는 돌격대가 나타납니다.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와타나베는 뭔가 이상하고 신기한 돌격대에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돌격대의 기행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와타나베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돌격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 데 돌격대가 와타나베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죠. 또 다른 인물로 나가사와 선배라는 금수저 선배가 등장합니다. 둘은 위대한 개츠비 이야기로 친해진 후 자주 시내로 나가 2:2 원나잇을 즐기기도 합니다. 나가사와 선배에겐 아가씨 학교에 다니는 수수한 연인 하츠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인의 외도에도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와타나베는 이런 나가사와 선배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관계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츠미가 다른 남자와 결혼 후 자살했다는 나가사와의 편지에 답장하지 않죠. 기행적이며 규칙적인 돌격대와 잘나가고 얽매이지 않는 나가사와 선배는 노력이 아닌 우연에 의한 관계입니다. 키즈키라는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와타나베가 삶을 살아갈 무언가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 무언가는 누군가가 줄 수도 없죠. 그래서인지 이 둘은 소설이자 와타나베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됩니다.
여성의 갑작스러운 자살, 실종, 연락 두절 때문에 느끼게 되는 남성의 상실감과 방황과 고독은 1Q84 등 하루키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입니다. 이제 상실의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이 두 명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둘 중 한 명은 와타나베의 인생에서 상실됩니다. 그러나 기존의 상실감과 함께 사라지죠. 와타나베는 앞서 키즈키의 연인 나오고는 간만에 연락이 닿게 됐습니다. 나오코의 스무 살 파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 그녀와 관계를 맺죠. 저는 관계를 통해 상실감의 극복이 아닌 회피를 보여준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관계를 통해 키즈키를 잡고자 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녀는 사라집니다. 알고 보니 나오코는 친언니가 오래전 자살했었으며 연인 키즈키의 자살로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해 산골 요양시설에 수용됐었습니다. 와타나베는 자주 요양원을 찾아가 짧은 시간들을 보내지만 나오코의 병세는 깊어 갑니다. 약은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를 봅니다. 나오코는 불치병에 걸린 것 같지만요.
지금까지의 인물들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나오코는 키즈키의 상실 후 그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세상과 단절된 요양원은 오히려 그녀가 키즈키에 게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죠. 돌격대는 자신만의 규칙과 영역을 지키려 합니다. 그런 행동은 와타나베를 제외한 모두에게 비난의 대상이죠. 나가사와는 모두와 잘 어울리는 듯하지만, 성격이 뒤틀렸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읽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것 같아’라는 부분에서 자기에게만 빠져있습니다. 하츠미는 아가씨 학교에 다니며 연인의 외도를 지켜만 봅니다. 이후 빠른 결혼을 하고 자살하게 되죠. 모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어딘가 상실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달려있다는 점. 홀로 무언가를 표현하지 못하는 삶은 파괴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은 와타나베 또한 위태로울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다시 이야기로 넘어오면 와타나베는 밖에서 또 다른 여성을 만나고 있습니다. 미도리라고 하는 같은 대학 1학년으로 미도리의 적극적인 접근으로 친해지게 되죠. 조용하고 여린 나오코와 대비되게 털털하고 호탕한 성격이며 기분파입니다. 또한 항상 먼저 데이트 약속을 잡고 병실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와 만나게 하기도 합니다. 그녀에게는 언니가 있고 성격 나쁜 남자친구가 있으며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입원 중이고 얼마 지나지 않고 돌아가시게 되죠. 그러나 그녀는 주저앉지 않습니다.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와타나베에게 진심으로 다가갑니다. 그녀와 처음 만나는 제4장의 제목 ‘피가 통하는 생기 넘치는 여자, 미도리’ 입니다. 피가 통한다는 건 ‘살아있다’라는 뜻입니다. 위의 인물 모두가 관계, 자기표현에서 멀어지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미도리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평범한 연애 이야기였다면 개성 있는 인물1이었겠지만 와타나베의 인생에선 유일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오코는 격리된 요양원에서 자살했습니다. 와타나베는 요양원에서 친해진 중년의 여성에게 나오코가 남긴 것을 보고 관계를 맺습니다. 중년의 여성은 이후 요양원을 떠나 다시 삶을 살게 됩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상실했기 때문인지 한 달간 정처 없이 방황합니다. 소설은 거지꼴을 하며 정처 없이 떠돈 와타나베가 정신을 차리고 지금까지 있던 모든 것을 미도리에게 고백하고자 전화를 거는 모습, 녹색의 수신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여기저기 타인의 색을 빨아드리기만 했던 그가 이제 자신의 색과 섞으려 하는 모습. 드디어 상실을 극복하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돌격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전하는 것. 우리는 요즘 전화, sns를 통해 대화를 하고 사진을 올리고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자기를 표현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남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자신의 이야기는 밥을 먹었다. 어디에 왔다. 정도로 빈약합니다. 진지한 자기 표현은 깊은 성찰을 선행해야만 하니까요. 와타나베도가미도리에게 이야기를 하기까지 한달 정도 걸린건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낸 시간일 것 같습니다.
하루키 답지않게 평범한 소재로 만든 이야기 입니다. 덕분에 어렵지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원제 노르웨이의 숲은 소설에서 과거를 환기하는 음악이며 회상 중간중간에 들려오는 노래이기에 붙여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제 상실의 시대가 내용을 관통하고 있어 더 마음에 듭니다만 제목 또한 소설의 일부인 만큼 소설을 칭할 때는 노르웨이의 숲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표지는 수박처럼 빨강과 초록이 배치된 이미지인데 피의 색은 빨강이며 미도리는 한글로 초록이니 표지에서 제 4장 ‘피’가 통하는 생기 넘치는 여자, ‘미도리’를 은유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이 하루키의 소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을 보면 사람들도 관계나 인생, 삶 그리고 행복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상실감을 느끼고 상실되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은 ‘피가 통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원래 약한 존재 아닙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모이면 이렇게 다양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알기 쉬운 서사, 평이한 인물을 가지고 있지만 독자에게 큰 감동을 주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천천히 읽고 자신의 삶과 타인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저는 이 소설을 고1 때 처음 읽었고 고3 때 다시 읽었습니다. 두 번 읽는 동안 뇌리에 박힌 거라곤 미도리, 상실감, 섹스, 세세하고 다채로운 표현, 인간관계의 비연속성과 삶의 연속성에서 겪는 착각에 대한 고찰 정도였습니다. 세상을 살면 위기도 겪고 인간관계가 점점 바뀐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비연속적이지만 삶은 연속하고 있기에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반대로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라서 라는 말로 연속적으로 이어가려 하는 모습처럼 관계에 대해 처음 인식하게 됐고 지금의 친구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