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피아니스트 1 (모짜르트에서 리스트까지)

이 책은 바흐, 모차르트 때부터 쇼팽과 리스트가 활동한 낭만주의 시대까지의 음악사를 기록한 책이다.
작가인 해롤드 c 쇤베르크는 20세기의 음악 비평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뉴욕타임즈에서 30년동안 음악 비평을 했고, 퓰리처 상의 저널리즘 분야 중 비평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주관적일 수 있는 자료들을 버리고 피아니스트들의 세계의 연주를 추론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통해 책의 내용을 구성했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을 시간의 순서로 나타내어 음악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지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으로 들 수 있다.

이 책으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점은 그 당시의 작곡가들이 곡을 만들 때의  숨어있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 또한 피아노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다. 여러 클래식 작곡가들의 악보를 보면서도 그 악보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을 잘 알지 못했다. 클레멘티나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파 음악을 주도한 작곡가들은 현대의 피아노보다는 내구성이 약한 현을 가진 피아노로 섬세한 음악을 했지만 베토벤은 그와 대비되는 강렬한 음악으로 연주를 할 때마다 현을 몇개씩 끊어버렸다는 내용이나,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쇼팽은 몸이 약해 큰 소리로 피아노를 쳐야하는 공개음악회를 싫어했고, 그 대신에 살롱에서만 연주를 했고,  힘이 매우 약해 피아니시모(pianissimo)를 여러 종류의 음색으로 구사한 섬세한 연주를 한 반면 리스트는 잘생긴 얼굴, 열광적인 연주를 통해 연주회에서 소위 말하는 스타였다. 이를 통해 작곡가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것이 어떻게 악보로 투영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작곡가들의 사이에 일어난 일화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모차르트가 클레멘티를 만나 연주를 들은 후 클레멘티 소나타가 가치가 얼마나 없고 그의 곡에는 감정이 없다고 비방을 한 일화나, 리스트와 쇼팽의 쇼팽 녹턴에 대한 일화 등 많은 이야기들을 책에 담아서 그 시대 음악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은 후 바로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갔다. 매일 가는 피아노 연습, 매일 하는 악보 리딩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악보를 읽는 데 있어서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쇼팽 에튀드 op10. no.1의 제일 앞장에 조그맣게 쓰여있던 A son ami F.Liszt라고 쓰여진 문구도 무슨 뜻인지는 알았지만 더 새롭게 느껴졌고 페달을 거의 밟지 않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던 베토벤 소나타 곡들도 더욱 잘 이해하면서 칠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를 취미로 하는 친구가 있다면 꼭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유토피아

공산주의. 라는 단어가 제시된다면 인식은 좋다기보다는 나쁠것 이다.
 내가 유년기 였을때 공산주의는 근엄한 지도자가 붉은 배경을 바탕으로 열맞춰 행진하는 군인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는 건 줄 알았다.
아니면 이따끔 핵무기로 위협해서 민방위 훈련을 하게 할때나 떠오르다 사라지는 그런 단어 였다.
그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내가 유토피아라는 책을 읽으면서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던 것 이다.
사실 현대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유토피아의 문화는 이해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나는 읽으면서 납득 해 버린 사람이지만.
배금주의가 천시 되는 풍토는 미뤄 두더라도 결혼전에 알몸으로 서로를 확인 한다거나 불치병 환자에게 가망이 없음을 통보하고 생명박탈을 선택 해 주는 것을 보면 현대 문명보다도 더 진보적인 사회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린아이나 노예제도 같이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저자가 16세기의 사람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정말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일 것 인가.
현대 사회에서 유토피아의 이론을 대입 했을때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를 생각 하면 나의 의견은 그렇다. 이다.
먼저 유토피아는 엄청난 전제 조건이 있다.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는것. 그리고 광물자원과 농작물이 풍부한 것.
현대 사회를 지배 하고 있는 것이 배금주의이며 자본주의이다. 유토피아의 관점에서 본 다면 현대 사회는 디스토피아의 길로 정확히 가고 있는 셈이다.
토마스 모어가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성장 했을 시의 문제점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도 이정도로 발전 할 지는 몰랐을 것이다.
또한 현재 1차 산업의 미래는 두 가지 라고 생각한다. 망하거나 흥하거나. 1차 산업이 주로 이루어 지고 있는 유토피아의 미래는 암욿할 것이다.
외국인들의 교류를 차단하는 쇄국정책 속에서 쇠퇴하거나.
그래도 토마스 모어가 경고한 문제점들이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유토피아의 요소는 포용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유토피아는 종교적 자유를 미트라스라는 단어로 모두 통합하여 종교적 분쟁을 없앴다.
외국인들 역시 유토피아에서는 성실한 노동이 전제된다면 부유하진 않아도 여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민을 온다는 점은 놀랍게도 정확하다.
노동을 해도 가난한 사회. 돈이 곧 실력으로 간주되는 현대 사회에서 유토피아는 우리에게 조용히 간언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곳이 유토피아는 고사하고 디스토피아만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조남주 장편소설)


책은 김지영씨 뿐만이 아니라 김지영씨의 어머니인 오미숙씨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큰오빠를, 남동생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벌러 공장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는 내게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실제로 나의 이모들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익히 들어왔던 시대를 살아왔던 오미숙씨의 이야기를 읽을 때, 이모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단순히 왜 저렇게 살았을까? 불쌍하다.’가 아닌 그래서 그때 그렇게 말씀하셨구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모들은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나면 항상 나에게 너는 꼭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교를 가라.’, ‘오빠를 위해서 살지 말고 너를 위해서 살아라.’라는 말을 하시곤 했다. 가부장제도가 가장 강한 시대를 살았던 이모들은 어쩌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오빠, 남동생을 위해서 버린 것을 후회하고, 그 소중한 시기를 살고 있는 내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닐까?

책에서 오미숙씨도 자신의 딸인 김지영씨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 딸은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김지영씨의 삶도 크게 다를 바 없이 흘러간다. 오히려 더 심화된 혐오사회 속에서 치이다가 종말에는 맘충이라는 말을 듣는 지경에 이른다. 김지영씨가 카페에서 맘충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 장면에서 나는 궁금해졌다.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누군가를 혐오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을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른 것을 싫어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이성에 눌려 지금까지 잘 참고 있던 본능이 터져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혐오하며 욕하는 사회가 와 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 사람들이 혐오하는 대상들을 보면 노인, 어린이, 여자, 장애인 등 대부분 사회적 약자라 칭하는 사람들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을 때, 치열한 경쟁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불안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물어뜯는 과정에서 발생한 산물이 혐오사회인 건 아닐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말고사가 끝난 후 혐오사회와 관련된 도서를 읽기로 하였다.

회색 인간

  한동안 책을 읽지 않았던 나에게 긴호흡의 책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회색인간은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24가지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나하나가 단순하게 읽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이다.  짧은 이야기임에도 신선한 충격과 오래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책, 긴 호흡이 어려운사람을 위한, 지금의 나를 위한 책이였다.  24가지의 이야기가 있다보니 재미있고 흥미있게 다가오는 이야기도 있고 그냥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이야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이야기를 3개만 꼽자면 ‘무인도의 부자노인’, ‘돈독오른 예언가’, ‘어린 왕자의 별’이다.
  ‘무인도와 부자노인’은  사람들이 무인도에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할때 노인이 사회로 돌아갈 희망을 빌미로 사회가 아닌곳에서도 사회인답게 살게하는모습을 보고 그 지혜에 감탄하고, 수고의 대가를 인정받을떄 사람은 사람다워진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회색인간은 이와같이 쉬운 이야기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한다.
  ‘돈독오른 예언가’는 작가의 한마디가 인상깊었다.”정당한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하십시오 ~ 자신이 가진 능력에 맞는 당연한 대가를 받길 바랍니다.” 이 말은 예언가가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말로 다가왔다.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해주고 남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 현대인이 가지지 못한 모습이 아닐까? 이후 예언가는 미국으로 가고 사람들은 인재가 한국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며 후회한다. 지금까지 비난한것을 후회하면서. 이 또한 울림이 있는 장면이었다.
  ‘어린왕자의 별’은 지구의 사람이 이상한 곳에서 살게되는 이야기인데 처음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곳에서 사람들은 사람들이 협조하고  사회를 형성하다 벽이 세워지고 보이지 않게 되면서, 공동체가 개인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인터넷이 생각나게 한다. 사회화로 인하여 성숙할지라도 개인의 공간에서 무너지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위 인상깊은 3가지의 이야기와 들었던 생각중 일부를 적었다. 다른사람이 읽으면 전혀 다른 생각을 할수도 있고 실재로도 그렇다. 상상독서에서 진행한 독서토론을 참여해보니 다와 다른 시건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책의 다른시선에서의 이야기를 들을수있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책을 읽기 싫어한다면, 긴 호흡이 어렵다면, 참신한 내용의 책을 읽고 싶다면 ‘회색인간’을 추천한다.  그리고 꼭 다른 사람과 독서 토론을 해보길 바란다.

항아리 속 하늘 (최승학 시집)

이책은 시집이다. 그저 시집에 불과한 책이 아닌 세상속 이야기를 작가 본연의 필체로 녹여 심금을 울리는 시들로 이루어져있다.

카지노 앵벌이의 하루 (전2권)

강원랜드 앵벌이인 주인공은 빚까지 내며 카지노 도박판에 참여한다. 있는그대로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해 독자의 집중도를 높였다.

아랑은 왜

아랑 전설을 자신의 식대로 풀어서 설명한것이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새의 선물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15,은희경 장편소설)

  냉소와 집착사이  어딘가
  
  최근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참 일희일비하지 않는거 같아, 좋은 일이 생기든 안좋은 일이 생기든지 항상 똑같애. “예전부터 종종 듣는 이야기라 어떠한 새로운 느낌도 없었다. 나 역시 스스로 냉소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인 삶에 대하여. 모든 것엔 이유가 있듯이, 나의 이런 성향 역시 여러 일들을 겪으며 형성되었다. 딱딱한 연필을 잡을때마다 아프던 중지 손가락에 이내 굳은 살이 생겨,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에 내성이 생겼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좋은 일이 생기면 이 다음은 안좋은 일이 생길 차례인것만 같아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지 못했다. 물론 이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들킨다면 그들에게 연민을 사겠지만, 사실 난 이 점에 대하여  나름 자랑스러워했다.  삶 속 대부분의 내용들을 통찰할 수 있는 것만 같고,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한 것 같다는 점에서.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진희가 한 말이다. 진희 역시 삶에 있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 12살짜리 초등학생인 진희는 본인을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나누고,  자신에게 생기는 일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본다. 42살의 어른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나는 그 사람을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속의 진희는 고작 12살이다.  물론 나도 고작 22살이지만.  우리는 고통을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며 객관화 시키고, 아픔을 실수한 편지지처럼 구겨 그저 마음 속 휴지통에 모아 놓는 것이다. 기쁜 일이 생기면 그 기쁨 속으로 들어가 흠뻑 즐기는 것 대신, 한 발짝 떨어져 기쁨과 나란히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는 것이다. 뭐랄까 삶을 영화라고 한다면, 내가 그 영화의 연출, 각색, 촬영, 의상 등에 모두 관여했지만 배우는 다른, 나의 삶이라는 영화에서 다른 사람이 연기하고 있는 것을 그저 카메라를 통해 바라만보는 느낌이다. 고통의 순간이 오면 감독인 내가 아닌 저 배우가 겪고, 기쁨의 순간 역시 저 배우가 만끽한다.
   
   여기서 한가지 의심가는 것이 있다. 과연 정말 나는 냉소적인 것인가, 아니면 냉소적으로 보이는 것인가. 솔직히 절대 뚫리지 않을 것만 같던 철문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문풍지로 만들어진 문이었던 것처럼 가끔씩 내 안에서 쉽게 구멍이 생기는 것을 봤다. 쏟고싶어도 답답할정도로 나오지 않던 눈물이 부끄럽게도 예상치못한 공간, 시간에 나오기도 하였고,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그렇게 꼴보기 싫을정도로 들뜬 적도 있었다. 즉  남들의 눈 앞에서는 냉소적으로 보였겠지만, 혼자 있을 때는 삶에 딱 달라붙어 집착하는 모습을  봤다. 아무래도 나는 이 삶이라는 영화의 감독이라기보다,  이 영화에서  ‘영화 감독’ 역할을 맡은  주인공인 것 같다.
  
 ‘우리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간계로도 고통과 슬픔을 피해 갈 수 없고,  만일 성장이 순수가 오욕이 되어 돌아오는 일들에 익숙해지고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누구도 성장을 완료할 수 없다. 살아 있는 한 어떤 비참 뒤에도 또 다시 찾아오는 희미한 희망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전략따위는 없다.’
 

    결국 삶에 대한 냉소는 삶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 같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나는 사랑에 냉소한 편이다. 나는 나를 던질만큼 누군가를 좋아하는 걸 두려워한다. 나는 상대에게 나를 던져도 상대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설령 서로가 서로에게 푹 빠지더라도 언젠가 만나게 될 이별을 마주하는 것이 무섭다. 그런 이유로 나는 사랑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태도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누군가 나무랐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은 얼마나 달콤한지 알고 싶어 도서실에서 무작정 ‘사랑’을 쳐보았다.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에 눈이 갔다. 제목이 파격적이기도 했고, 저자가 이렇게 파격적인 제목을 붙인만큼 안에 내용 역시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리라 기대했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밎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책에서 가장 먼저 나온 글은 역시 저자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전혀 달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더 비관적이었다. 글을 읽다보니까  어디선가 읽은 경험이 있는 듯,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지나가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처럼 잠깐 스치는 곳에서 봤으리라 짐작해본다. 나라면 그 당시에도 저 문장을 보면서 격하게 공감하는 한편, 격하게 부정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사람들에게 정을 주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느끼는 행복을 느껴본 적 없기에 지금 감정에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행복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강렬한 감정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내내 가시지를 않았다.
 처음에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작가는 직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그렇게 달콤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라면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 풀어줄 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작가 자신조차 그것이 실수였음을 모르는 모습을 보이는데, 나는 여기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나는 이러했다, 이걸 읽는 그대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나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삶의 양분이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라는 작가의 메세지가 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었다. 여전히 사랑에 대해 설레거나 낭만적인 느낌은 들지 않지만, 적어도 사랑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해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원조이고, 가장 깊고 일목요연하게 풀어낸 해설서이다. 기독교에서 교리라 함은 성경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단기간에 명확히 알기에는 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기독교 교부들이 힘을 합쳐 정리해 놓은 기독교의 핵심되고, 중요한 가르침을 말한다. 또 교리를 작성한 다른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을 균형없이 개인의 사리사욕에 맞춰 해석하는 이단과 당시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구분하고, 또 지키기 위해서 발행했다. 이 교리를 펴내고 유지하기 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다. 필자 우르시누스는 이 교리가 성경의 어떤 부분을 통해 도출해 냈고, 이 교리가 간단히 설명하지만, 성경 전체의 유기적 구조 안에서 한 문답 마다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해설한다. 인간의 참된 위로는 하나님과 성자라고 가르치며,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 설명한다. 이 비참한 중에 큰 좋은 소식이 있음을 시작으로 요리문답을 시작한다. 문답은 기독교에 대한 교리를 질문과 대답을 통해 현장감 있게 가르치기도 한다. 이 책은 처음 혼자서 공부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지만,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공부해 나간다면 정말 좋은 시간이 될 것이고, 현대의 기독교의 위치도 알 수 있을것이다. 이 책을 공부하는데 어려움과 시간이 많이 들지라도, 탄탄하고, 견고한 신앙을 위해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