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1 (우리는 신)

  ‘프랑스의 천재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조차 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개미,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나무같이 유명한 작품들이 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우연히 우리 학교 도서관의 프랑스 문학 서가를 돌아다니게 됐는데, 문득 여태까지 내가 읽어보지 못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명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내 눈에 띈 것은 바로 . 책 뒤에 요약된 줄거리를 읽어보니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신이 되기 위한 수업을 듣고 또 신이 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드는 모험 이야기였다. 판타지 장르의 모험 이야기라니, 줄거리는 흥미를 불러일으켰으나 은 무려 6권이나 되는 장편 시리즈였고 선뜻 시작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여러 종교의 설들을 바탕으로 한 신선한 내용과 이를 잘 살려주는 그의 필력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만화로 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참 재밌게 읽었었는데 이를 토대로 만들어낸 판타지 소설 은 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어렸을 적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인간계와 신계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신의 입장이 중심적으로 다뤄졌다, 때문에 이를 읽을 때 나는 인간인 내가 신들의 입장이 되어 인간의 역사를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은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신들의 세계를 서술하고 있었고 이는 내가 신들의 세계를 무지의 상태에서 염탐한다는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 베르나르의 소설 속 세계관에서는 신계와 인간계가 철저하게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의 과정처럼 엮어져 있는데 이 점에서는 기존 서양의 철학이 아닌 동양의 사상을 엿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

  그의 소설에는 불교의 사상이기도 한 윤회가 존재한다. 인간은 환생을 거듭하다가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환생을 멈추고 육신을 벗어나 영혼만 남게 된다. 이렇게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영혼은 천사가 되어 다시 인간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을 나름의 방식들로 돌본다. 영매를 통한 도움이라던지, 꿈이나 고양이를 활용하는 등 그 방법 역시 흥미로웠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돌보던 인간들의 환생을 끝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렇듯 생()이란 그 초입을 인간으로, 중반은 천사로, 마지막으로는 신 지망생으로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천사의 역할을 다한 영혼들은 다시 육신을 얻어 올림푸스라는 신들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영혼들은 스승 신에게 수업을 듣게 되고 그 중 월등한 1명 만이 신이 될 수 있다. 일종의 신이 되기 위한 경쟁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자유롭게 천공을 날아다니던 영혼들은 육신에 갇힌다는 불편함과 영문모를 상황에 놓이게 됨을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 미카엘 팽송은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아마도 베르나르는 그가 창조해낸 세계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책을 읽으며 이 겉보기에는 신과 해괴한 괴물들 그리고 영혼이라는 현실성 없고 거짓말 같은 얘기를 논한다 싶었지만, 그 이야기를 깊게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 것인지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의 작품 속에서 신 지망생이 된 천사와 탈락 후에 온갖 괴물들로 변한 존재들까지도 그 시작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파과

 고등학생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은 책인데 그 당시에 재밌게 읽어서 덕분에 구병모라는 작가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까지도 구병모의 책이라면 나오는 족족 찾아 읽을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작가인데, 서점을 갔더니 표지가 팝아트 식으로 리뷰얼된  파과가 재출간되어 나와 있어서 예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지만 다시 읽어보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읽은 책은 전에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주제의식과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과거에는 발견 못한 이런 점들이 흥미로워 독후감을 작성하게 되었다.
 
 간략하게 줄거리 소개을 해보자면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으며 평생을 살아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은 나이 때문인지 스스로 갈무리하지 못한 실수와 변수에 의해 작업중에 부상을 입는다. 노쇠로 인해 연약해 진 것은 신체 뿐만이 아닌지 우연히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 ‘강과장’을 마음에 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각을 오래 지켜봐온 젊은 남자 청부업자 ‘투우’에게 들키게 된다. 조각에게 악의를 가진 투우는 강과장의 아이를 인질로 조각에게 싸움을 걸고 조각은  자신과 아이, 주변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응한다.
 
주인공이 냉철한 청부살인업자인 영화나 소설은 벌써 다수 존재한다. 그들의 사랑과 액션을 그리는 스토리는 헐리우드에서만 백번쯤 나왔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 냉철한 킬러가 노년의 60대 여성이라는 데서 차별점을 주지만 그것 뿐만이라면 다시 책을 읽었을 때 크게 와닿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그저 60대 여성 킬러의 미묘한 애정전선과 영화로 나와도 손색없을 정도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씬이 재밌어서 가상캐스팅 까지 해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는데 사실 이 책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거기가 아니다.   
 
 ‘파과’ 라는 다소 생소한 이 단어는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첫번째는 파과지년 -여성의 나의 16세를 일컫는 말이고 두번째는 흠집이 난 과실을 일컫는 말이다. 생물의 노화야 그 끝이 죽음인 만큼 남, 여, 개, 기린, 사자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서글픈 것이겠지만, 사회적으로 여성의 노화는 바로  여성성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파과지년, 꼭 16세가 아니더라도 어느 꽃같은 시기를 지나쳐 중년, 노년을 다다르면 여성은 여성성을 상실하고 폐경까지 겪고 나면 사회적으로 더 이상 재고할 여지 조차 없게 된다. 냉장고 안에서 잊혀진채 방치되는 복숭아처럼 조금씩 문드러지며 죽음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러나 조각의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오히려 조각은 노화 덕분에 그동안의 냉철하고 차가운 마음을 허무러트리고 더욱 인간적인 삶과 생활에 마음을 연다. 기억력이며 신체 기능은 예전만 못하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배움도 얻는다. 조각은 노화를 통해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발전했다.  이는 노화가 시사하는 것이 반드시 종말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노화는 신체의 쇠락일 뿐 인간 전반을 주도하는 정신의 영역과는 별개일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다시 읽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장면은 조각이 화려한 네일 아트를 받는 장면이다. 사회는 노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팽배하면서도 또 획일적인 이미지만을 요구한다. 좋은 노년은 모두 인자하고 사회에서 한 걸은 뒤에 서 있다. 우리 모두 언젠가 노년이 될 것인데, 하나같이 다른 개성의 사람들이 노년에 다다라서는 개성을 잃은 ‘노인’으로 뭉뚱그려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수수한 노인이 있으면 화려한 노인이 있고, 인자한 노인이 있으면 까칠한 노인도 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나도 노인이 될 텐데 신체의 퇴화와 사회의 요구에 정신까지 휩쓸리지 않고 나다운 노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 대의 자화상)

  이 책은 사회학 강사가 그의 수업을 기반으로 하여 느낀 여러가지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의 직업 덕분에 작가님은 내 나이 또래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레 20대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적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 나는 자기계발서를 전혀 읽지 않는다. 그 유명하다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던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조차도 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꼬여있던 나는 아프면 아픈거지 그게 청춘이랑은 무슨 상관인가 하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다른 대다수의 이십대들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은 모양이다. 실제로 두 책은 오랜 기간동안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니 말이다. 
  저자는 이십대들의 자기계발이 온전히 자기를 위한 것인지 묻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 이십대들의 자기계발은 취업을 위한,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행위가 아닌가 답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만약 특정 기업에서 토익 내지 여러 어학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대학생들과 취준생 중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 학원에 등록하여 공부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자기 계발은 비교의 성질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계발(啓發)은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이라는 뜻이다. 자기 계발이란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재능이나 사상을 일깨운다는 의미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내가 나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주말에 집에 누워서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역시 자기계발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를 자기 계발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요즈음 이십대들의 자기 계발이란 취업을 위한 것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는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은 토익 학원에 나가 영어 공부를 하는 것보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이십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되는 공간은 대학이다. 이 곳에서부터 , 어쩌면 그 전부터도 이십대들의 학력 줄세우기는 시작된다. 우리는 나보다 대학 서열이 높은 곳에 합격한 친구 앞에서는 “나 수능을 망쳐서.. “라는 말로 자기방어를 시전하고 나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 앞에서는 은근한 우월감을 가진다. 가끔은 나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 앞에서 그를 배려해 나의 대학을 말하지 않는 어쭙잖은 관용까지 베풀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과잠을 입고 다니는 학생을 보면 은근슬쩍 확인해보려 하고 나보다 낮은 서열의 학교 로고가 박혀 있으면 내심 안도함과 동시에 우쭐해 하곤 한다. 이것은 나의 모습이자 나 말고도 다른 이십대들의 모습이다. 무서울 정도로 적나라해서 이 부분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십대들을 이렇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은 사회인데 정작 이십대들은 눈 앞에 닥친 취업과 자기계발에 빠져 정작 사회구조의 모순은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이 책은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의 참정권이나 아이들의 교육, 장애인의 복지 모두 사회적 모순을 느낀 개인에 의하여 발의되어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기보다 돈이 되는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길들여진 이십대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해버린 이십대의 현재 모습을 과감하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십대의 사회인식의 변화와 동시에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변화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다움이 지켜지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너는 네 인생이 마음에 드니? 2 (신주희의 생활의 구성)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자격증 공부를 하던 중 머리를 식힐 겸 책 한권을 골라보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르던 중 너는 네 인생이 마음에 드니?’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 더운 여름에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게 짜증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니,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속으로 대답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들어 내용을 대충 살펴보니 제목과 다르게 책의 내용은 연애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시 내려놓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기자기한 그림과 색감 때문에 읽어 보았다.

 

이 책은 그림 반, 글 반의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책이다. 읽는 데 1시간이 안 걸릴 정도로 책의 내용은 정말로 적다. 하지만 그림때문인지는 몰라도 읽고 나면 굉장히 풍성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에 맞게 책의 내용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연애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헤어짐의 과정까지 모든 연애과정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내용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공감이 갔던 이야기는 물음의 변신이라는 글이었다.

 

[ 물음의 변신 ]

 

이 남자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묻던 때가 있었다. 내 사랑이 어렸을 때다.

이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다짐하는 때가 있다. 많이 컸다. 내 사랑.

 

모든 사람들이 사람을 만나기 전에 저 사람과 만나면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과 만나고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과는 헤어진다.

나도 이 기준으로 사람을 만났고 사귀고 나서도 종종 이 사람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을 웃기려 애쓰는 내가 보였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하는 내가 보였다. 지금까지 별 생각이 없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사랑이 성숙해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처럼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나는 언제부터 거울 속 내 모습에 집착하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다. 10년의 시간 동안 거울 속에 비치는 스스로를 보며 외모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꼬집어냈다. 이를테면 긴 코를 보완하기 위해 짧아 보이도록 셰이딩을 하거나 잡티를 감추기 위해 커버력이 좋다는 컨실러와 파운데이션을 찾아 쓰는 식이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단점 찾기를 한 셈이다.

 

 처음에는 예쁘다는 칭찬을 받으면 단순히 기분이 좋았다. 외모에 투자한 시간이나 돈이 얼마가 됐든 노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유명한 사람을 롤모델 삼아 화장을 따라 하고 다이어트를 하는 등 더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문이 들었다. 꾸미면 꾸밀수록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평가절하하며 완벽하지 못한 모습에 실망하는 것이다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은 터무니없이 이상적이었다. 사람은 모두 나이를 먹으면 주름살과 뱃살이 나오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듯 예쁨은 감가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잡히지 않을 젊음과 미를 쫓으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다. 내 자존감이 외모와 몸무게로 이뤄진다는 것은 분명 어딘가 잘못됐다.

 

  이 책을 읽고 화장을 당연하게 여기고 불편한 행동을 지속해야 하는 행위를 벗어나고 나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거울과 멀어지기 위한 첫걸음으로 화장품 사용을 하나씩 줄였다. 처음에는 어딘가 부족한 내 모습을 보며 불편하고 이대로 바깥을 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점차 꾸미지 않은 내 얼굴이 익숙해졌으며 심지어 더 예뻐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여태껏 화장한 얼굴이 진짜 내 얼굴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준비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보통 하루에 20분의 시간이 화장을 위해 쓰였는데, 절약된 시간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했으며 화장하느라 걸렀던 끼니를 챙기게 됐다. 무엇보다 더 이상 얼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이러한 노력이 점차 외모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매몰비용, 즉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내 모든 에너지가 모여 외면이 아닌 내면에 오롯이 집중되길 바란다.

 

언어의 온도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친구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평소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읽지 않는 나였지만 책의 제목에 이끌려서 한 번 읽게 되었다. 언어에 온도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한 번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추상적으로 와 닿았다.

 

이 책은 저자가 실생활에서 마주한 사소한 경험 속 느낀 점을 고스란히 담았다. 막상 저자는 언어의 온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 장 한 장씩 읽다보니 새삼 저자의 말대로 언어에 온도가 있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저자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굉장히 묵직한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저자는 주로 가족, 인생, 글쓰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 책에 있던 모든 말이 공감이 갔지만 제일 공감이 갔던 몇 가지를 골라 핸드폰으로 찍어 두었다.

 그 중 몇 가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 타인의 불행 ]

 

인간은 얄팍한 면이 있어서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종종 착각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안도감이지 행복감이 아니다. 얼마 못 가 증발하고 만다.

 

우리는 SNS를 하며 나도 모르게 많은 사람들과 비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재밌게 잘 살고 있는 남들을 보면 괜스레 우울해지다가도 그러한 남들보다 더 잘되어 가고 있는 내가 보이면 어쩔 때는 얄팍한 행복을 얻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비교대상보다 잘되지 못한 내가 보일 때면 그 얄팍한 행복은 좌절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저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앞으로는 남들과 비교하며 비참함과 교만함을 느끼지 않기로 다짐했다.

 

[ 말의 무덤, 언총 ]

 

그리고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소중한 사람에게 심한 말을 하고 후회했던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특히 편하다는 이유로 익숙한 사람에게 그런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익숙한 사람이라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같은 대게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이 있듯이 소중한 사람일수록 말 무덤에 묻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어떨까

 

이 책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그 동안의 나를 돌아보며 반성도 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다짐도 세울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언어에 온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남을 배려하는 적당한 온도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말의 품격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제목: , ,

 

 필자는 ()으로 책을 시작한다. (입구)들이 모여서 그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고 본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말이 상대방에게 많은 영향력을 주는지에 의문과 의심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밥에 긍정적, 부정적인 말을 하는 영상에서는 좋아해라고 말하는 밥에는 깨끗한 곰팡이가 피었고, “싫어라고 말한 밥에는 탁한 색의 곰팡이가 핀 결과를 보여준다. 이는 긍정적 언어의 힘을 보여주지만 말로만 잘 될거야.”라고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결과는 나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진심이 없고 예쁘게만 포장된 말은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영향은 주지 못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지금껏 살아왔다. 그래서 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필자가 갖고 있는 말에 대한 관점을 비교하며 이 책을 읽었다.

 

<긍정적인 말>

 필자는 크리스 가드너의 면접 이야기를 통해 긍정의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에는 모종의 기운이 있어서 훗날 그 씨앗이 자라 결실로 이어진다고 한다. 또한 지능지수는 긍정적 언어사용, 부정적 언어사용과 관련이 없지만 네트워크지수는 긍정적 말을 자주하는 사람에게 높다고 한다. 내가 잘 될거야.’와 같이 긍정적인 말,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보면 이는 지능지수의 관련성이었다. , 부정적인 말을 해도 지능지수는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말을 하면 상대방에게도 그러한 기운이 전해지는 것처럼 강한 사회 관계망 구축을 위해서 긍정적인 언어의 씨앗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본질이 담긴 말>

 필자는 쭉정이와 알곡을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히틀러와 조지 6세의 어법을 비교하면서 언어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나 또한 말하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말들이 모두 진심을 담아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성 없이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치장된 말은 언젠간 쭉정이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이며 소중한 사람들도 떠나게 된다. 본질, 진심은 세월의 풍화와 침식을 잘 견뎌낼 것이라는 필자의 말을 믿고 어떤 말이, 어떤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을까보다는 내가 상대방에게 정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은 무엇이었지에 집중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경청하는 말>

 필자는 이순신 장군이 제승지형(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지휘관의 전술, 부대의 사기, 군사 정보, 준비 태세 등)에 능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운주당에서 그의 경청을 높게 평가한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기보다 그들과 토론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수용했다고 한다. 필자는 경청이 말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과 말 사이에 배어 있는 감정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절박한 말을 헤아리는 일이라고 한다. 이 부분이 나에게 정말 많이 와닿았다. 여기에는 책의 다른 장에서 다루어진 역지사지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음성으로 나온 말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 가슴속에서 전하는 말은 헤아린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에게 다가감에 있어서 중요하다. 필자의 말처럼 나만의 운주당을 세우고 소중한 사람들과 앞으로 관계를 쌓아가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요즘 들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지에 대한 책들이 부쩍 많이 나온다고 느낀다. 예를 들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와 같은 책들 이러한 책들이 요즘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이 정말 대처하는 법을 몰라서일까, 정말 나로 사는 방법을 잊어버린 걸까 라고 물음을 던졌을 때 내 대답은 아니요이다. 내가 느끼기에 저러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위치하고 많은 독자들이 읽는 이유는 본인의 선택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대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책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저러한 책들은 대게 해답을 제시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이렇게 하세요, 결코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닙니다 와 같은 그러면 독자들은 봐 바! 작가님이 이게 맞는 거랬어 라고 생각하며 본인의 결정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이 아마 주위사람들 눈치를 정말 많이 보고 살아가는 요즘사람들을 위로해주기 때문에 다 끌리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책은 위의 책들과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위로보다는 너 잘하고 있니?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정말 내 목표가 뭔지 뚜렷하게 알고 있는가, 내 인생은 온전히 내 것이 맞는가 생각하며.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는데 사람들은 나의 미래, 뭐 먹고 살 건지,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그러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게 된지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사람부터 10년 지기 친구들까지 서슴없이 물어본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교양수업시간 빼고는 단 한 번도 질문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미 그들이 느끼는 나의 삶의 목표= 직업과 명예로 단정 지어 졌다,

 

대학교 들어와서 나보다 나이가 여러 사람을 다 만나고 난 나는 여기저기 내 위치를 비교하기 바빴다. 그래도 재보다는 내가 이건 잘하네, 이건 못 났네 하며 누구보다는 내가 더 성공한 삶인지 아닌지 내 멋대로 판가름하게 되었다. 본인 인생의 성공기준은 본인이 정하기 나름인데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본 과거의 나의 기준은 현실에 허덕이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온 사람보다 바쁘게 살아 공모전, 대외활동에서 상을 탄 사람이 더 성공한 인생 같고 모임을 좋아해서 공부를 안 하고 친구들만 만나며 사는 사람보다 학점이 잘나와 SNS에 업로드 하는 사람이 더 성공한 인생인줄 알았다. 그들이 원하는 삶의 방향도 모르면서 어떤 게 그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인줄 모르면서 안일하게 판단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사실 이 책을 처음 읽는 것은 아니다. 수험생 생활을 할 때 읽었다가 연극까지 찾아서 보게 된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땐 신선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대부분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나오는 책은 책에서 말하는 이는 일반인이고 장애인은 일반인의 친구나 타인으로 그려진다. 나는 내가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표현이 당연한 줄로 알았었다. 항상 내 기준에서 어떻게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도와주고 이해할 수 있을까만을 고민했다. 하지만 이 책은 자폐증을 가진 남자아이의 시선, 그의 생각이 일기처럼 서술되어 있다. 지체장애인 아이의 말과 생각을 그대로 글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나에겐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자폐증을 앓고 있고 부모님이 이혼했고 친구도 없는, 어찌 보면 정말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그 친구도 자신이 원하는 것,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런던에 사는 엄마를 만나는 것) 도전한다. 이 책을 통하여 그 아이의 두려움과 설렘과 희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를 보면서 나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 많은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교에 들어와서 보니 내 생각과는 달랐다. 대학에 오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 해야 할 것이 많아서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이 책이 떠올랐다. 자폐증을 앓는 이 친구의 태도와 생각이 부러웠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이 책을 읽어보기로 하였다.

이 책은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재미있다. 책 표지는 삼지창에 찔린 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책 제목과 그림만 봐서는 추리소설이 아닐까, 잔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전혀 아니라서 편견을 깨는 과정이 재미있고, 크리스토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 하지만 나의 상황을 대입하면서 책을 읽으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였다. 특히 마지막에 크리스토퍼가 엄마네 집에 도착하게 되는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크리스토퍼는 개를 죽인 아빠한테서 멀어지려고 엄마한테로 여행을 떠난다.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엄마와 같이 사는 남자는 자신을 미워하고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오히려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개를 죽인 아빠가 나를 더 잘 사랑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크리스토퍼에게 아빠가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한다. 그 강아지가 희망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로도 아이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점차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사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주인공이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 엄마의 집에 찾아갔지만 정작 그곳은 천국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도 열심히 수험생이라는 시간을 지나서 왔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해야 하는 것은 많고, 불안하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존재한다. 그 희망은 너무나 조그마해서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나에게는 노력의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 희망인 것 같다. 현재 상황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붙들고 나아간다면 결국은 변화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토퍼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려고 한다. “나는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 힘으로 런던까지 갔고, 누가 웰링턴을 죽였느냐는 미스터리를 풀었으며, 엄마의 집을 찾아냈고 게다가 용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책까지 썼다. 그 말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크리스토퍼를 보면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고 다시 삶이라는 모험을 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

[노르웨이의 숲-부제: 상실의 시대]

 이야기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함부르크 고향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자신의 열여덟에서 스물까지의 일을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키즈키, 태어날 때부터 키즈키의 연인이라 생각되는 나오코와 자주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키즈키의 자살로 이 관계는 사라지며 남은 둘은 큰 상실감을 품은 채 연락이 끊기죠. 어린 나이에 유일한 친구를 잃고 상실감은 그의 청춘을 좀먹게 되죠. 와타나베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문학도인 그는 독서와 사색을 즐기고 음악을 듣습니다. 원체 조용했던 그는 어린 나이에 유일한 친구를 떠나보낸 여파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런 그에게 기숙사 룸메이트로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체조를 하는 등 ‘규칙적인’ 기행을 저지르는 돌격대가 나타납니다.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와타나베는 뭔가 이상하고 신기한 돌격대에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돌격대의 기행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와타나베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돌격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 데 돌격대가 와타나베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죠. 또 다른 인물로 나가사와 선배라는 금수저 선배가 등장합니다. 둘은 위대한 개츠비 이야기로 친해진 후 자주 시내로 나가 2:2 원나잇을 즐기기도 합니다. 나가사와 선배에겐 아가씨 학교에 다니는 수수한 연인 하츠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인의 외도에도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와타나베는 이런 나가사와 선배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관계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츠미가 다른 남자와 결혼 후 자살했다는 나가사와의 편지에 답장하지 않죠. 기행적이며 규칙적인 돌격대와 잘나가고 얽매이지 않는 나가사와 선배는 노력이 아닌 우연에 의한 관계입니다. 키즈키라는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와타나베가 삶을 살아갈 무언가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 무언가는 누군가가 줄 수도 없죠. 그래서인지 이 둘은 소설이자 와타나베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됩니다.

여성의 갑작스러운 자살, 실종, 연락 두절 때문에 느끼게 되는 남성의 상실감과 방황과 고독은 1Q84 등 하루키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입니다. 이제 상실의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이 두 명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둘 중 한 명은 와타나베의 인생에서 상실됩니다. 그러나 기존의 상실감과 함께 사라지죠. 와타나베는 앞서 키즈키의 연인 나오고는 간만에 연락이 닿게 됐습니다. 나오코의 스무 살 파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 그녀와 관계를 맺죠. 저는 관계를 통해 상실감의 극복이 아닌 회피를 보여준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관계를 통해 키즈키를 잡고자 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녀는 사라집니다. 알고 보니 나오코는 친언니가 오래전 자살했었으며 연인 키즈키의 자살로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해 산골 요양시설에 수용됐었습니다. 와타나베는 자주 요양원을 찾아가 짧은 시간들을 보내지만 나오코의 병세는 깊어 갑니다. 약은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를 봅니다. 나오코는 불치병에 걸린 것 같지만요.

 지금까지의 인물들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나오코는 키즈키의 상실 후 그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세상과 단절된 요양원은 오히려 그녀가 키즈키에 게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죠. 돌격대는 자신만의 규칙과 영역을 지키려 합니다. 그런 행동은 와타나베를 제외한 모두에게 비난의 대상이죠. 나가사와는 모두와 잘 어울리는 듯하지만, 성격이 뒤틀렸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읽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것 같아’라는 부분에서 자기에게만 빠져있습니다. 하츠미는 아가씨 학교에 다니며 연인의 외도를 지켜만 봅니다. 이후 빠른 결혼을 하고 자살하게 되죠. 모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어딘가 상실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달려있다는 점. 홀로 무언가를 표현하지 못하는 삶은 파괴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은 와타나베 또한 위태로울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다시 이야기로 넘어오면 와타나베는 밖에서 또 다른 여성을 만나고 있습니다. 미도리라고 하는 같은 대학 1학년으로 미도리의 적극적인 접근으로 친해지게 되죠. 조용하고 여린 나오코와 대비되게 털털하고 호탕한 성격이며 기분파입니다. 또한 항상 먼저 데이트 약속을 잡고 병실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와 만나게 하기도 합니다. 그녀에게는 언니가 있고 성격 나쁜 남자친구가 있으며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입원 중이고 얼마 지나지 않고 돌아가시게 되죠. 그러나 그녀는 주저앉지 않습니다.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와타나베에게 진심으로 다가갑니다. 그녀와 처음 만나는 제4장의 제목 ‘피가 통하는 생기 넘치는 여자, 미도리’ 입니다. 피가 통한다는 건 ‘살아있다’라는 뜻입니다. 위의 인물 모두가 관계, 자기표현에서 멀어지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미도리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평범한 연애 이야기였다면 개성 있는 인물1이었겠지만 와타나베의 인생에선 유일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오코는 격리된 요양원에서 자살했습니다. 와타나베는 요양원에서 친해진 중년의 여성에게 나오코가 남긴 것을 보고 관계를 맺습니다. 중년의 여성은 이후 요양원을 떠나 다시 삶을 살게 됩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상실했기 때문인지 한 달간 정처 없이 방황합니다. 소설은 거지꼴을 하며 정처 없이 떠돈 와타나베가 정신을 차리고 지금까지 있던 모든 것을 미도리에게 고백하고자 전화를 거는 모습, 녹색의 수신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여기저기 타인의 색을 빨아드리기만 했던 그가 이제 자신의 색과 섞으려 하는 모습. 드디어 상실을 극복하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돌격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전하는 것. 우리는 요즘 전화, sns를 통해 대화를 하고 사진을 올리고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자기를 표현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남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자신의 이야기는 밥을 먹었다. 어디에 왔다. 정도로 빈약합니다. 진지한 자기 표현은 깊은 성찰을 선행해야만 하니까요. 와타나베도가미도리에게 이야기를 하기까지 한달 정도 걸린건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낸 시간일 것 같습니다.

 

 하루키 답지않게 평범한 소재로 만든 이야기 입니다. 덕분에 어렵지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원제 노르웨이의 숲은 소설에서 과거를 환기하는 음악이며 회상 중간중간에 들려오는 노래이기에 붙여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제 상실의 시대가 내용을 관통하고 있어 더 마음에 듭니다만 제목 또한 소설의 일부인 만큼 소설을 칭할 때는 노르웨이의 숲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표지는 수박처럼 빨강과 초록이 배치된 이미지인데 피의 색은 빨강이며 미도리는 한글로 초록이니 표지에서 제 4장 ‘피’가 통하는 생기 넘치는 여자, ‘미도리’를 은유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이 하루키의 소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을 보면 사람들도 관계나 인생, 삶 그리고 행복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상실감을 느끼고 상실되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은 ‘피가 통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원래 약한 존재 아닙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모이면 이렇게 다양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알기 쉬운 서사, 평이한 인물을 가지고 있지만 독자에게  큰 감동을 주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천천히 읽고 자신의 삶과 타인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저는 이 소설을 고1 때 처음 읽었고 고3 때 다시 읽었습니다. 두 번 읽는 동안 뇌리에 박힌 거라곤 미도리, 상실감, 섹스, 세세하고 다채로운 표현, 인간관계의 비연속성과 삶의 연속성에서 겪는 착각에 대한 고찰 정도였습니다. 세상을 살면 위기도 겪고 인간관계가 점점 바뀐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비연속적이지만 삶은 연속하고 있기에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반대로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라서 라는 말로 연속적으로 이어가려 하는 모습처럼 관계에 대해 처음 인식하게 됐고 지금의 친구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