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조각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
마음에 드는 글들로 책은 가득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 나를 설레고 기대 되게 했던 글들이 몇 개 있다. ‘끓는 마음에 찬물 한 컵 들이붓고 네 이름 불러 본다. 물 한 컵으로 식히지 못한 열기가 새어 나와 그 짧은 한마디 뱉어낸 얼굴이 붉게 익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가득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빨게져 물 한 컵을 마셔도 진정되지 않아 수줍어하는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네 이름’이라는 제목을 가진 글인데 글이 예뻤기에 그랬는지 읽을 당시 내 마음이 설레여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에 덩달아 나도 누군가를 좋아할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루종일 설레고 무얼봐도 좋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사람에게 언제나 설레고 기분 좋은 일들만 가득할 수 없기에 가끔 우울할 때 읽기 좋았던 글도 있었다. ‘가끔 나도 나를 감당하기 힘든 밤이 있다. 지금 내가 왜 슬픈지, 왜 이런 거지 같은 기분이 드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밤이면 저 끝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 빛 한 줌 들지 않는 깊숙한 곳에 천막 하나를 치고, 그 안에서 누군지도 모를 얼굴을 하염없이 원망한다.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냐고, 왜 나조차 나를 보듬을 수 없냐고’. 리뷰를 쓰는 지금 보니 어마어마하게 어두운 글인 것 같다. 어쩌다 무엇인지 모를 이유 또는 너무나도 알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려보지만 다시 위로 올라오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바닥을 쳐야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럴 땐 그냥 비슷한 분위기에 글을 읽어 바닥에 닿을 때까지 한없이 가라앉아 다시 올라오는 게 더 좋았다. ‘버려진 밤’이라는 제목부터 어두운 글이지만 내가 힘들 때엔 오히려 힘이 되어 줬다.
다른 독자들에게 꼭 ‘달의 조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책을 권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최근 서점에 가면 짧을 시간을 내어 읽기 편하게 만들어진 좋은 책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굳이 이 책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여러 감정을 담고 있는 짧은 글들을 담아 낸 책들은 한 권 정도는 가방에 넣어 다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하루에 잔잔한 위로가 될 수 있고 행복했던 하루를 돋구어주는 응원이 될 수도 있는 책이 될 것이다.
흰 (The Elegy of Whiteness,한강 소설)
고등학교 시절 난 문학수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문학에서 보여주는 하얀 것에 대한 해석은 그리 포괄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깨끗함, 물들지 않음, 순수, 기염 그리고 승화의 의미로 기억한다.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회색빛 달동네에 대조적인 색깔로 내리는 하얀 눈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받는 눈은 어느 곳에서 보다 쓸쓸하고 아픈 의미로 해석되었다. 전봇대 조명 아래에 고요히 내려앉는 눈을 보고 있는 장면이 생각나는데 그 상황에 느껴지는 감정은 긴 설명을 하지 않고도 많은 이들에게 잘 전달된다. 눈 내리는 모습에 공통으로 전해지는 감정의 결이 있다는 건 흰 눈이 사람의 감정을 동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한강의 흰 것에 대한 여정은 쓰라리고 아프다. 내가 생각하던 하얀색의 표상이 아니었다. 한강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몰입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서글펐다. 그녀의 문장이 너무 아픈 나머지 내가 공감했다고 말하는 건 염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아픈 기억을 드러내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이 행위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싶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상처 난 피부에 소금 치는 거라 비유했지만 이것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큰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이 크게 공감했던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다. 온몸으로 내 삶이 아프다고 표현하는 작가에게 ‘나도 그래요’라는 한 표를 던지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낼게.
촛불을 바라보며 세상을 떠난 언니에 대해 오직 흰 것을 건넨다는 말. 결국 이 삶에 대해 내린 정의는 아픔이기 때문에 이 흰 것을 내가 건네도 될지 조심스러운 사람이 된다. 혈육이 이 세상의 언어를 떼지 못한 채 떠나간 결과로 자기 자신을 두고 있음을 내비치는 작가가 때론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난 작가가 스스로 느끼는 감정에 한도가 없음을 느꼈다. 난 얼마든지 슬퍼할 수 있는 감정을 말하고 있다. 이미 나는 나의 존엄한 감정을 숱하게 무시해 왔기 때문이다.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 일상을 견뎌야 했다. 그녀의 슬픔 앞에 왜 내가 자신을 비참하게 여겼는지 알게 되었다. 작가가 슬픈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있음이 곧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아픔에 갇혀버렸지만 도망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작가로서 말하는 인간의 고통, 삶에서 느끼는 회의란 사람들이 현실에서 외면하고 싶은 일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외면하려 도망친 곳은 또 다른 현실일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사소하게 넘어갔던 과거의 내 아픈 감정들을 마주했다. 그 문장에 공감하고 이입하는 이유는 여전히 내 마음이 그곳에서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인 듯 하다. 나 또한 아픔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철장 안에서 나온 새는 진정한 자유를 맛본 줄 알았지만, 그곳은 또 다른 거대한 철장이었다. 사람들이 삶의 목적으로 찾는 행복이 진정한 삶의 이유라면 한강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부정의 의미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스스로 부정적으로 진단하고 있는 한강의 삶이 ‘진짜 인생’이 아니라고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덟 단어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제목: 단어의 힘단어
1.자존
-“이 세상에 중요한 가치가 많지만 자존이 제일 기본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이게 있으면 어떤 상황에 처해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Be yourself! 너 자신이 되어라!
-Take me as I am as! 나를 그대로 받아 들여!
자존이라는 말은 언제나 심오하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많은 책들에서 자존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마음먹고 지속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나는 너무 다른 쪽의 잔디만 푸르게 보며, 다름과 틀림을 안다고 생각하고 지낸 것 같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느껴질 때면 ‘난 틀렸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기 때문이다. 나의 답을 찾아가야하는 내 인생인데 남의 답에만 치중되어 있는 나 자신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2.본질
필자는 변화하는 것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영을 예로 들어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수영을 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못했을 거라고, 자신은 50m를 가는 데에 6개월이 걸렸기 때문에.. 하지만 수영을 배우는 본질을 땀 흘리는 것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빨리 실력이 늘지 않아도, 강사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흔들림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이 글을 보면서 회의감이 많이 든다. 자신의 목표하는 본질에 따라 흔들림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흔들림을 많이 주는 것에 즉, 성과를 내고 싶다는 것에 대해 초점을 두었기에 나를 옥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나를 덜 흔들 수 있는 것에 본질을 두기에는 많이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고전
–오늘 나타났다가 일주일, 한 달 후면 시들해지는 당장의 유행보다 시간이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검증된 결과물들이 훨씬 본질적이지 않을까요?
나는 고전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지루하게만 느껴질 것 같은 클래식이나 책 속에서의 느낌을 고전이라는 단어를 통해 전해 받으면서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생기게 되었다.
4.견
–안 보이던 게 보여서 나이 드는 것도 정말 좋습니다. 바람도 축복이고, 강물도 기적이에요.
–견, 본다는 것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낯설게 봐야 합니다.
‘견’이라는 의미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선생님들께 정말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주변을 둘러 보라였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시도 많이 듣고 봤지만 무언가를 집중적으로 바라보기란 어렵고 그 방법 또한 의문이 든다. 어떤 대상을 관심을 갖고 보면 많은 게 보인다는 의미는 이해가 가지만 아직 그것을 체감하기에는 의문과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5.현재
–이 순간의 보배로움을 알아라.
–다른 답은 내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의 인정,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 단어에서 필자가 전하려고 하는 바 또한 현재를 즐겨라와 같이 선생님들께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다. 고등학생 때, 이 말을 들었을 때면 ‘힘든데 현재를 어떻게 즐기라는 거지?’라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내가 이러한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은 자존이 낮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 듯이, 필자 또한 ‘현재’가 ‘자존’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나의 답을 찾거나 나의 길을 만들어 가려고 집중하기 보다는 남의 답에 나를 대입시키려고만 했던 시간이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러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에 대해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6.권위
–우리는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윗사람들에게 강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약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7.소통
–사람을 움직이고 싶고, 주변에 영향을 주고 싶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세요.
8.인생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때로는 차선에서 최선을 건져내는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유머감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라는 자존을 가지고 나의 장점을 실현해 나간다면 말이죠.
나의 내면의 시선보다 타인의 시선에만 의식하며 살아온 지금까지를 많이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사랑하라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고 반성했음에도 이러한 생각을 쉽게 고쳐나갈 수 없었던 이유는 내 장점을 살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거의 없고 작게 느껴지는 것일지라도 그 부분을 잘 다듬어 나아가며 살고 싶다.
언어의 온도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가장 느낀 것 중 하나는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아직 행복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 세상에는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습관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어요.
때로는 그런 사람의 비난은 흘려들으며 나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절이였다.
평소 이런 그냥 힘을 주는 책? 이런 종류의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유난히 공감도 많이 되고 위로가 되는 느낌이라 읽기에 힐링이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