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나이 20살까지, 그리고 현재에도, 나에게 있어서 역사란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짧은, 20년 동안, 내 인생에 역사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왔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역사에 흥미가 없었던 난, 그동안 오직 수업시간 역사교과서로만 역사를 접했었다. 그마저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택하지 않아 고2부터는 역사를 접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내가 20년 동안 알게 되고 배우게 된 역사가 무엇이 있을까?

초등학교 땐 뗀석기, 간석기….중학생 땐 좀 더 체계적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사 까지 시대별로 특징을 정리해가면서 배웠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땐,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좀 더 심화시킨 것 뿐 반복되었었다.

솔직히 말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나에게 역사란 항상 부담되고 힘든 부분으로 다가왔다. 항상 역사수업시간에는 펜을 들고 수업시간 내내 팔이 아플 정도로 빽빽하게 필기하고, 그 필기한 내용을 어떻게는 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기억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역사라는 주제 자체가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말 열심히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하려고 애썼지만, 시험 결과는 항상 나에게 눈물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 역사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나이를 먹어서 일까? 역사란 그냥 흘러가는 여러 사실들의 나열이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는 흐르는 강물이다라는 명언처럼 역사는 무언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고, 단지 인생의 흐름 그 자체인 것이다. 심지어 내가 오늘 6시에 전공시험을 본 것도 나의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전공 시험 후에 친구와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간 것도 나의 역사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또 지금 생각해보면, 3까지 내가 역사과목에 약했던 이유는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난 역사를 단순히 암기해야할 사항들을 빼곡히 나열한 것이라는 생각뿐 이였고, 그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고 여러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마 지금 깨달은 이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역사라 아마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두려워했고, 부담스러워했고, 힘들어 했지만, 지금의 난 역사문화학부라는 곳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다. 여기서의 개인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4학년이 될 때쯤이면, 역사를 사랑하고 역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심장 뛰는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3학년을 마무리 짓고 있는 이 시기에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누군가 나에게 한다면, 난 자신감 있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난 역사에 대한 나의 생각, 주관이 자리 잡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역사과에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3학년을 마무리 짓게 된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대학생이라는 기분에 취해 있던 것뿐이다. 여러 동아리와 학생회에 들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에 빨리 동화되는 법을 익히는 것에 급급했다. 그 결과, 친구들과 아는 선배들, 즉 인간관계는 넓혀졌지만, 역사에 대한 나의 관념, 생각은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역사라는 것에 대한 나의 주관도그 외의 나에 대한 모든 생각들이 실타래가 꼬인 것처럼 단단히 꼬여 풀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요즘 들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혼란스러워 여러 친구들, 선배님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해 보았다. 단순히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너 인생에 있어서 역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에 이르기까지 많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정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소한 것 하나라도 각 자의 쓰임새를 지닌 것처럼, 그리고 모든 생명들이 지닌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사람들마다 각 개인이 가진 색깔과 특성이 다르다.

이 사람들 중에서는 역사과가 자신과 맞지 않아 전과를 고민 중이라는 사람도, 꿈을 정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친구도, 공무원 준비를 하는 선배들도, 독일로 유학을 가는 친구도, 꿈도 없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역사가 좋다는 것만큼은 확신을 갖고 있는 언니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역사가 좋아서 역사문화학과라는 곳으로 왔지만, 실제로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해보니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고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

1학기 중간고사를 본 뒤부터 내 미래에 대해, 내 꿈에 대해, 내 길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길이 보이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2학기를 지나서 주변사람들과 이러한 생각을 나눈 후에, 나의 초조함에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고 있지만, 난 아직도 고 3의 연속인 것처럼 어두운 암흑 속에 나 혼자 갇혀 있다는 느낌에 내 스스로가 답답하고 이런 악 순환이 지속되자 나도 모르게 점점 스스로 지쳐갔다.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서 출구가 없는 터널 속을 무한 반복해서 뱅뱅 돌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직도 난, 계속 고민하고 있다. 스스로 난 아직 스무 살 밖에 안됐어! 라며 위로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내 자신스스로가 너무나 불안해하며 떨고 있다.

 

특히 대학에 들어와서 역사라는 전공이 나에게 과연 어떠한 길을 안내해 줄까 라는 불안감과 궁금증이 존재했다. 난 내 손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도 싶고, 여행사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하고도 싶고, 박물관에서 유물, 유적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되고도 싶고,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하고 싶다. 아마 그래서, 내 스스로 불안해하는 것 같다. 역사라는 전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린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는 내 나이에 꿈이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고 어떻게 보면 좋을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발전이 없어 보일 뿐이다.

위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선, 먼저 역사에 대한 나만의 관점과 생각이 바로서야 한 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과연 무엇일까? 언제쯤 난, 이 답을 얻을 수 있을 까? 10? 20? 아님 평생 동안 난 이 답을 갈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난 이번 과제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듣고, 읽고, 이해해 보는 것도 내가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H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인문학에서 굉장히 유명하며, 역사학도들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책 중 하나라고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읽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다 읽을 수 있었다.(서론)

 

 

저자 E.h 카는 여섯 개의 목차를 통해 역사가의 의무와 역할, 역사와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 사회와 개인의 관계와 역할, 역사와 과학과 도덕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등을 다루고 있다. ,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와 역사가와 역사서와 인간과 세계로 두루 관찰하는 역사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1>

 

1부에서는 역사가와 사실을 다루고 있다.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가장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 있느냐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이다라고 이야기 했으며, “역사를 연구하고 싶다면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라고 역사와 역사가에 대한 오해에 대해 기술하였다.

시계의 제반 역사서들은 과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역사가들이 특정 사실을 골라서 자신의 역사철학에 맞도록 구성한 것이며, 따라서 역사 또는 역사서 읽기를 전후하여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며 정의했다.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역사를 해석하는 시점의 사화분위기와 학문적 연구동향에 따라 계속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른 조명과 해석이 비추어진다.

또한 19세기 랑케는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역사는 확인된 사실들을 모아둔 것이라며 워털루 전투를 프랑스, 영국인, 독일인, 네덜란드인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역사는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굴절된다는 것인데, 과연 어떤 역사가의 주장이 가장 역사의 기록에 근접한 것일까?

그에 대한 답으로 사실과 주관의 공존. 역사는 역사가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건을 뽑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는 E. H카의 말을 들 수 있다.

E. H카는 친일파의 서구숭배주의자들이 구성한 한국의 과거 역사와 현대시기가 불신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지적한다.

역사가는 임시로 선택된 사실과, 그러한 사실선택을 이끌어준 임시적인 해석, 그것이 타인의 것이건 자신의 것이건 모두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일이 진해됨에 따라서 해석이나 사실의 선택 및 정리는 다 같이 쌍방향의 상호작용을 통하며 미묘한 반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울러 내포되는 것이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결국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결과이며, 현재와 과거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첫 번째 장에서는 권기중 선생님 수업시간에서 중간고사 보기 전에 배웠던 내용과 많이 일치해 읽기가 다른 장보다는 수월했다. 하지만 여러 번 읽어도, 정확히 어떤 말을 의미하는 건지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2>

 

2부에는 사회와 개인을 다루고 있다. 사회와 개인의 상호관계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사회와 개인의 역할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고 대립관계가 아닌 상호간 필요한 관계라는 것이다.

J.S 밀의 견해를 들어보면 인간은 함께 모아놨을 때 다른 종류의 실체로 변하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종류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던가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 했다. 역사이전의 모든 관계에서 인간은 사회 속에 태어나고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회 속에서 개별화의 과정과 사회의 힘 및 결합력의 증대와의 사이에 대립관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라고 할 때에 그것은 각 개인의 상호의존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근대국가 사회가 개인구성원들의 성격과 사상을 형성하는 힘에 있어서나, 그들 간에 단합성이나 획일성을 이룩해 놓는 힘에 있어서 미개부족 사회보다도 무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들은 자유와 평등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개인적인 자유와 사회적인 정의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하는 문제를 추상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는 도안에 자칫하면 그러한 싸움이 추상적인 관염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것은 개인 그 자체와 사회 그 자체와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 속에 있는 개인집단 상호간의 투쟁인 것이며, 각 집단은 자기편에 유리한 사회정책을 추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사회정책을 저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위인을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 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켰다.

사회와 개인 간 의 가상적 대립이란 우리들의 사고를 혼란시키는 함정에 불과하고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 간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의 대화이고,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이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인 것이다.

역사가로서 역사가를 연구하려면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연산군 이라는 인물을 연구할 때, 그의 탐욕과 폭군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보다는 그 당시의 훈구세력과 사림세력의 권력다툼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연산군의 나쁨에 대한 복잡하고 높은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개인의 행동이 아닌 무의식적인 외부의 어떠한 힘으로만 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겨버린다.

 

<3>

 

3부는 역사와 과학과 도덕이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세상에는 명칭 이외에는 보편적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같은 명칭을 가진 사물도 그 하나하나는 모두 개별적이고 단일한 것이다라는 홈스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비판한다. 그런 관점은 자연과학에 있어서도 진실임에 틀림없으며 같은 지질학에도 똑같은 두 개의 지층이 없고 동물도 사람도 똑같은 개별은 없는 것처럼 역사에서도 동일한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제 2차 세계대전은 크게 다른 것이고 특수한 것이지만, 역사가들은 양자를 모두 전쟁이라고 부른다.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다. 역사가가 사실과 해석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이 양자도 떼놓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양자 중의 하나만을 우위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E. H카는 역사가가 보편성과 일반성을 다루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 있다고 한다. 즉 어떤 한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일반화를 할 때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러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의 예언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서는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사이의 차이점을 놓여 있는 것이라며 역사가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능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역사와 과학을 함께 바라보면 역사가는 과학자가 사용하는 같은 방법으로 역사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기본법칙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하고 사물의 동태를 조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술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지위와의 사이에 유사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가설을 설정하고 귀납적인 방법으로 법칙을 찾고 다른 반대 세력들과 가설에 대해 싸우면서 진리에 다가간다. 사실 역사도 똑같다. 역사에는 과학과는 다르게 절대불변의 진리란 게 존재하지 않을 뿐 역사적 사실의 원인과 다양한 가설들로 역사의 기록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를 전제로 역사와 과학에 대한 현재 시점을 적용해보면, 정치나 경제, 사회문화 현상에 대해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 또는 정치가나 정치 평론 자들이 소위 객관적이라는 전제로 분석, 진단, 예측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객관적일 수 없으며, 그렇다고 주관적이지도 않은, 즉 상호작용에 의하여 미래의 예측이나 예상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 대응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와 도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역사가가 자기가 취급하는 역사 인물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오늘날 새삼스럽게 내세울 필요조차 없다면서 역사가와 도덕가의 입장은 다른 것 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역사가는 도덕적 판단에 의해서 역사를 서술해선 안 된다.

결국 역사가는 과거의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건, 제도, 정책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하는, 보다 이득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헨리 8세가 나쁜 남편 이였을지 몰라도 그는 좋은 국왕임을 확실하다.

 

<4>

 

4부에서는 역사에서의 인관관계를 다루고 있다.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을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

E. H 카의 말대로, 개인뿐만 아니라 역사가들 역시 미래에 일어날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 예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조건을 따져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대한 개연성 또는 합리적 추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 또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역사가란 끊임없이 ?”라고 질문하는 것, 그리고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역사가란 한 사건에 대해 한 가지 원인만 중요시 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역사가가 원인의 문제에 접근하는 첫 번째 특색은 한 사건에 관해 여러 가지 원인을 분석 하는 것이라 한다.

책에서는 1917러시아 혁명에 대한 답으로 비유했는데, 요즘 사건에 접목해본다면 세월호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비유해 볼 수 있겠다. 사건의 원인을 화물의 과적, 무분별한 증축, 늦은 구조와 위기관리능력 다양한 이유를 찾는 것이다.

여기서 접근법 두 번째 특색이 필요하다. 저 정도 이유를 찿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의 상호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결론을, 마지막 분석을 궁극적 원인 또는 모든 원인 중의 원인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의 주제에 대한 해석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렇게 원인을 제시하는데 역사가들은 항상 어떤 원인을 위에 놓아야 하는가에 하는 문제에 귀착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세월호 원인에 대해 항상 어떤 원인이 우선인가 섣불리 정의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측면이라고 본다.

역사에 대해 한편으로는 우연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우연의 집합체 이며 우연에 일치에 의해 결정된 전적으로 우발적인 원인이 결과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의 연속이라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E. H카는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역사가와 원인의 관계는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 성격을 갖는다. ‘원인은 역사적 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고, 동시에 역사가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 여러 원인들의 상하 관계, 하나 또는 한 묶음의 원인, 또는 다른 원인의 상대적 중요성이야말로 본질 인 것이다. 해석을 해보자면 원인은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고 역사가의 해석은 원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5>

 

5부에서는 진보로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에서 역전이나 이탈, 중단이 없이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나온 진보는 없다고 설명하며, 역사의 의미와 내용, 방향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피력한다.

유전에 의한 진화는 몇 년 전, 몇 백만 년을 단위로 해서만 측정될 수 있는 것으로써, 유사 이래로 인간에게는 아직도 이렇다 할 생물학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획득에 의한 진보는 세대를 단위로 하여 측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의 여러 세대의 경험을 측정함으로 자기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에 있다.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진보의 내용은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서술을 진보하는 과학이라고 한 이유는,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제 사건의 진전에 대해서 부단히 넓혀지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라 하고,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설명한다.

가장 인상적인 글귀는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마지막 문장이였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역사라는 것이 축적되어 지금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문화이든 과학이든 과거에 획득된 기술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해 진보하는 것이다. 진보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진보라는 것은 계속되는 여러 시대의 요구사항과 조건에 의해서 각 시대만의 특정한 내용이 채워지는 과정 이라고 한다. 또 객관성에 대해서 E. H카가 짚고 갔다. 역사 사실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역사가가 주는 의의에 따라 역사상의 사실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의 가치와 관점은 항상 시대와 더불어 이동해 나가며, 그래서 우리들의 눈은 상대적이고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여지위에서 역사사고의 객관성과 유효성은 무엇이고, 이러한 문제를 추구하고 찾아감에 있어 저자의 진가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본론)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E. H 카의 명언 중에 하나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관해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61년에 쓰인 책이 2014년 지금까지 한국어로 번역 되서 읽히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도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에드워드 카와 어떤 대화를 했을까? 이것이 사실 역사를 무엇인가를 읽고 난 뒤 마지막 남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앞서 책을 읽기 전에 했던 내 인생의 역사란 무엇일까?’를 해결하기엔 아직 먼 것 같다. 오랜 시간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는데 너무 큰 그림을 보지 않고 보이는 것부터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아직 내가 머릿속으로 가지고 있는 여러 의문들, 그리고 나의 인생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은 해결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 혼란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도 많고 내가 챙겨야할 사람들도 많고, 스스로에게 묻지 못한 답들과 질문도 많다. 그것들에 대한 답들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해보았다. 계속된 고민 끝에 내가 생각해 낸 답은 하나 뿐 이다.

내 인생의 목표 하나를 정해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다보면, 내가 품고 있던 여러 의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알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한 가닥 한 가닥 엉킨 부분을 풀다보면, 어느새 누군가가 강요하거나 만들어낸 결론이 아닌 나만의 결론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보다 더 많은 의문들을 품게 된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책을 읽기 전 에 구하려던 답보다 새롭게 얻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가진 고민은 지금까지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나는 어떤 대화를 했는가? 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난 E. H카 와 많은 교감과 교류를 했다. 그가 가진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신적인 세계와 내가 가진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세계가 서로 뒤 엉킨 것이다. 서로의 가치관과 정신세계가 만나 그가 가진 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나는 그 답에 대해 독후감 마지막인 만큼 명쾌하게 답을 쓰고 싶고 그래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단 몇 줄로 내가 이해한 그의 세계를 서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와 난 이 책을 통해 많은 대화를 했다는 점이다. 보통 내가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대화해보려고 노력했고, 또 노력했다.

그 결과를 통해 책을 통해 서로 대화를 한 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이 어떤 느낌이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이는 매우 큰 경험이었고, 엄청난 변화 중에 하나이다. 앞으로도 난 어떤 책을 읽든지 서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러한 점들은 아마 지금 이 책을 읽고 과제하는 많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 이라고 예상한다. 중요한 교훈을 얻었지만, 여러 의문을 남긴채로 역사란 무엇인가읽기를 끝내려고 한다.

 

 

 

 

 

햄릿 (세계문학전집 3)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과거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웃으며 얘기했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구절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드라마 ‘도깨비’ 속 공유가 살아야할지, 무로 돌아가는 일종의 ‘죽음’을 선택할지 고민했던 것처럼, 햄릿 또한 같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삶의 이유를 찾아 방황하던 햄릿에게 삶의 이유가 된 것은 결론적으로 복수였으며, 이는 햄릿이 작품 내에서 하는 모든 행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햄릿은 부왕의 유령을 만나 부왕이 삼촌인 클로디어스에게 어떻게 살해됐는지를 전해 듣고, 이에 대한 복수와 모든 것을 기억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에 대해 햄릿은 유령의 말이 사실인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면서 클로디어스에 대한 의심을 지속한다. 그리고 햄릿은 유령의 말을 바탕으로 자신이 기획한 연극을 통해 클로디어스의 반응을 살피고, 그제서야 유령의 말에 확신을 가지고 복수를 꿈꾼다. 이후 햄릿은 기도하고 있는 클로디어스를 발견하고 복수를 위한 절호의 기회임을 인지하지만, “아서라 칼아, 더 끔찍한 상황을 만나자. 구원받을 기미가 전혀 없는 행동을 하고 있을 바로 그때, 다리를 걸자라며 복수를 미뤄버린다.

이러한 햄릿의 태도는 햄릿이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졌음을 증명해주는 지표로 쓰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꿈꾸는 복수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작품 속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햄릿이 꿈꾸는 복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햄릿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설명이 가능하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로서, 부왕의 뒤를 이어 덴마크를 올바른 방향으로 통치해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그에게 복수란 새로운 왕이 된 클로디어스를 죽이는 반란의 형태로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기 덴마크의 지도자로서 자신이 꿈꾸는 덴마크를 어떻게 수립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했고, 이를 복수로 정한다. 그는 부왕이 이루고자 했던 뜻을 계승하면서도, 비윤리적인 통치자와 그로인해 어지럽혀진 사회 정의를 다시 세우려 했던 것이다. , 햄릿이 꿈꾸는 복수란 단순히 살인자를 죽이는, 자신이 당한만큼 갚아주는 복수가 아니라 덴마크 사회의 질서를 정립하고 새로운 정의를 수립하는 것이다. 때문에 복수를 미루는 햄릿의 태도는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 아니라 복수를 단순히 살인이 아니라 정의로 만드는 법을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이러한 햄릿의 복수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클로디어스의 음모에 따라 레어티스와 칼싸움을 제안 받았을 때, 수상쩍다는 것을 알면서도 칼싸움에 참여한다. 그리고 유령의 요청대로 클로디어스를 죽이는 것에 성공하지만, 그 또한 레어티스가 칼 끝에 바른 독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그는 호레이쇼에게 자신이 죽은 후, 이 모든 사건들이 후세에 전달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체 죽으며, 덴마크의 새로운 통치자는 포틴브라스가 된다. 정치적·도덕적으로 완벽한 왕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이상으로 꿈꿨던 햄릿에게 포틴브라스가 왕이 됐다는 사실은 그의 복수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과거 햄릿이 정치적 야욕을 채우기 위해 복수를 핑계로, 무고한 백성들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포틴브라스를 비판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애초에 유령에게 부탁받았던 복수 두 가지는 모두 성공한다. 햄릿이 아버지의 원수인 클로디어스를 죽이는데 성공했으며, 호레이쇼에게 남긴 유언을 통해 후세에게 그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모든 것을 기억해달라는 요청 또한 이루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햄릿의 복수는 성공이라고 부를 수도, 실패로 인정할 수도 있는 상태의 것이며, 성공과 실패의 모호한 경계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중간한 복수를 다룬 작품이 왜 현대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그 답은 아마 우유부단해 보이는 햄릿의 태도가 오히려 그의 고결한 성품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삼촌의 즉위, 그리고 어머니와 삼촌의 조속한 재혼은 분명히 의심스럽고 비윤리적인 일련의 사건이지만, 햄릿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고뇌에 빠진 햄릿에게 이 고민들을 ‘망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칫 우유부단해 보일 수 있는 태도로 이 사건들에 대해 자신의 고뇌를 멈추지 않는다. 또한 위의 일련의 사건들에 의문을 품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르는 사회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몸을 부딪혀가며 ‘모든 것을 기억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다. 따라서 햄릿의 작품성은 그의 복수가 성공했느냐로 단순히 결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을 둘러싼 정치 권력 및 사회와 싸우는 햄릿의 고결한 성품이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대변한다.

 

자본주의 (EBS 다큐프라임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

사회 과목을 좋아했지만 경제는 숫자와 연계된 강한 느낌 때문에 경영학과지만 경제학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있었다. 나에게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일하는 만큼 돈을 버는 체제. 공산주의의 반대 원리 정도라고 여겼다. 하지만, 투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경제를 공부하기 위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며 자본주의가 굉장히 철학적으로 다가오는 계기가 되었고, 경제체제에 대해 쉽게 알 수 있었다. 방송된 다큐를 엮어 종이책으로 내어, 경제 기본 원리나 금융상품 등을 학자들의 인터뷰와 인포그래픽 삽화 등으로 쉽게 설명해준다. 처음에는 생소해 읽는 속도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경제 원리나 금융상품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어, 과목을 배우고 있는 친구들이나, 재테크를 준비하는 기성세대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은행은 우리를 각박한 세상으로 내보내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라 한다. 은행은 결코 자선단체가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빚을 만들고 그 빚을 통해 돈을 버는 은행, 우리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며 스스로 공부해 금융 지능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과거처럼 은행을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 공부해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소비’라는 행동원리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며 ‘소비는 미덕’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근데 이러한 것도 마케팅으로 주입된 생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마케팅의 공격에 우리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마케터들은 상품의 이미지와 환상을 주입하고, 소비를 합리화 시킨다. 소비와 합리화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소비까지 이어지면 안 된다. 필자가 말하는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자본주의, 복지자본주의 속 진정한 내면과 행복을 얻기 위한 현명한 소비를 했으면 좋겠다.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정석 교수의 도시설계 이야기)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2017 베스트리뷰 공모전 수상작]

  내가 도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 때는 작년부터이다. 학교 근처 자취방을 알아보던 중, 성북구 장수마을에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이 마을이 참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쭉 자란 나에게 서울은 번쩍번쩍하고 웅장한 건물이 가득한 우리나라의 수도였다. 간혹 주말에 부모님 혹은 친구들과 서울의 관광지를 구경하곤 했는데 특유의 시끌벅적함과 복작함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하면서도 매혹하였다.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며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마침내 나는 상경하였다. 내가 살게 된 장수마을이라는 곳은 내가 생각했던 서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올망졸망한 주택들이 제각기 모여 조화를 이루어 성곽을 따라 자연과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달라 매우 실망했다. 하지만 장수마을의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많아졌다. 태어나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왔는데 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웃의 정이라던가 성곽의 아름다움, 골목길의 재미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도시의 참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지금까지 나는 도시에 관심을 끊이지 않고 갖고 있다.

   이번 학기 중 내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과목은 도시계획론이다. 이 과목의 과제로 인하여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의문이 조금 들었다. 도대체 튀는 도시는 뭐고 참한 도시는 무엇인가 말이다. 튀는 도시는 특색이 있는 도시라고 지레 짐작이라도 했지만 도무치 참한 도시는 추측이 되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참한 도시를 튀는 도시의 반대라고 생각하여 특색이 없는 도시라고 가정하였다. 그렇다고 하면, 특색이 있는 도시가 특색 없는 도시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나라의 도시가 저마다의 랜드 마크를 만들려고 매우 노력하는 추세인데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이렇게 읽기 전에는 정말 수많은 의심을 품으며 책장을 열었다.

   저자인 정석 교수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근무를 하면서 서울의 많은 도시들을 계획하는 사업에 참여하신 분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사례를 들어 필자의 의도를 풀어나가는 형태이다.  예부터 우리나라의 조상들은 타국과 달리 자연을 굉장히 중시해 도시를 계획할 때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에 맞춰 어울리는 모습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근데 지금의 도시는 어떠한가. 서울만 보자면, 극히 소수의 지역 빼고는 정말 많은 지역들이 변화무쌍하다. 필자는 이러한 도시의 변화를 대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했는데 이에 발맞춰 정부는 우리의 오랜 문화를 담고 있던 많은 주거지들을 겉보기에 달콤한 정책들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더욱 편리한 환경에서 살게 해준다는 감언이설로 정부는 집값을 올려 가난한 사람을 근교로 내쫓고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하여 계층 간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 필자가 내세우는 가장 핵심인 문제는 도시를 변화시키면서 수많은 자연경관을 해쳤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한강이라는 매우 큰 강과 수많은 산들로 둘러 쌓여있다. 많은 시공업체들은 이러한 자연경관을 막는 높고 뚱뚱한 건물인 아파트를 건설하여 시민들에게 전망 좋은 집을 광고하며 분양하였다. 물론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멀리 있는 서울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겠다만, 아파트 밖의 시민들이 자연 경관을 보려고 할 때는 이 건물들이 막고 있어 볼 수 없겠다는 것이 함정이다. 참 이기적인 생각으로 서울의 많은 아름다운 모습들을 해쳤다. 해외에 있는 고풍의 건물들은 극찬하면서 어찌 우리나라의 것들은 다 무너뜨리고 편리함을 쫓아 많은 것들을 버렸는지 매우 안타까운 바이다.

   지나간 날들을 후회해봤자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반성하고 지난날들의 문제점을 발판삼아 개선해나가면 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헌신하고 있는데 내가 이 책의 사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2009년 동소문동 재개발 반대 운동 승소 사건이다. 이 운동을 앞장서 승리로 이끈 주인공은 놀랍게도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 피터 바살러뮤씨이다. 사람들은 그를 한국인보다 한옥을 더 사랑하는 외국인이란 표현만큼 소개하곤 하는데 이는 마땅한 근거가 있는 표현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한국에 와 한옥에 매료되어 약 40여 년을 한옥에 살고 있다. 피터가 살고 있는 동소문동 한옥 주거지 일대는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되어 계속 그 곳에서 살기를 원하는 피터와 이웃 주민들이 재개발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후에 2008,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내었고 2009년 마침내 승소하게 된 사건이다. 피터 씨는 이 사건 이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20년 이상 된 집은 무조건 노후건축물로 간주하고 재개발 대상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집이 무슨 냉장고입니까?”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나 역시도 장수마을에 사는 입장으로서 수없이 재개발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본 적이 있다. 물론 서울시는 현재 장수마을을 재개발구역에서 해제한 상태이긴 하지만, 이 마을에 사는 입장으로서 조금 불편할 때가 있긴 하다. 집까지 올라가는 언덕이 너무 높고 골목길이 좁아 잘 살다가도 편리함을 위해 이 지역이 재개발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도시는 우리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전자제품 따위가 아니다. 나는 정말 어리석은 생각을 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조상들이 지혜롭게 잘 계획하여 만들어주신 이 도시를 앞으로도 자연과 어떻게 잘 더불어 공존해 나갈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도시에 관련하여 정말 많은 책임의식을 느끼기도 했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관하여 많이 생각해보았다. 앞서 책의 제목에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으리으리한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한 도시를 계획하고자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깊게 했다.

현대 문학교수 350명이 뽑은 2009 올해의 문제소설 (2009)

박민규의 을 읽고

 

 

 

 

 

  주인공인 는 아주 다사다난한 삶을 겪은 인물이다. 과거 멀쩡하게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신입 여직원의 친구인 연주라는 인물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그 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빚을 지어가며 해주지만 여자는 결혼한다는 말과 함께 사라 져버리고 그는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리운전기사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다가 다시 그녀를 만나고 그는 죽일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녀 옆을 지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줄거리를 보며 별’은 꽃뱀에게 당한 주인공이 물질만능시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것과, 삶에 있어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그리고 과거에 꽃뱀에게 모든 것을 걸고 결국 자기 삶을 무너뜨린 주인공이 순수하다고 하기에는 사랑에 맹목적으로 순진하게 되어버린, 현실 감각이 없는 것 같다. 주인공은 자기 삶을 망친 당사자, 즉 원수를 만났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보다 미련, 동정을 느끼는 상황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에게 일어난 문제상황에 대해 그는 잘 해결하지 못한다. 그 문제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되고 그는 그 여자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물질만능시대에 회의감을 느껴도 그는 다시 일하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삶을 이어가기 위해 대리운전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 같다. 게다가 다른 한 가지 문제인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일에서는 자신을 망가트린 여자에게 복수라기 보단 그저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며 미련과 동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는 한 가지의 문제를 해 결했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자제력을 잃고 심각한 범죄 행위를 저지를 수도 있었는데 자신이 한때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자의 불행해 보이는 삶과 물질만능적인 사회에 물들어 인간성마저 잃어버린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동정의 감정을 느낀다. 여자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에서 인간 소외가 문제되는 사회에서 동정, 공감, 인간적인 관심, 사랑으로 이를 해결, 극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그는 아직 그녀를 증오하는 마음 보다 사랑했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다른 것은 다 몰라도 그녀는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처음 이 글을 읽고 글 자체가 신기했고 매우 난해했다. 글을 더 읽어보다 제목이 왜 별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별이다. 보통 별은 좋은 의미를 지닌다. 반짝반짝 빛나고, 목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질 수 없다는 이중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제목 은 나의 목표이고 갖고 싶은 것이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그녀와 닮아서 이 제목을 붙여놓은 것 같다. 이 글은 의식 의 흐름기법이 사용된 것이 매우 잘 보인다. 주인공이 하는 말들 중 너무 뜬금없는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더 난해하다 라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다 모르겠다고 하는 그가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심한 행동까지 했지만 그는 그녀를 증오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남아있던 것 같다.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귀었던 여자였기 때문일까? 현대인들의 복잡한 생각들을 보여준 작품인 것 같다. 요즘 자기 주관을 잃고 모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진 모습들을 작품에 비춰냈다. 덧붙여서 부정적인 평가를 해보자면 이 소설은 물질적인 사회와 인간이 소외되고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실의 어두운 부분을 잘 표현 해 냈지만 마무리를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단순하고 막연한 문제해결방식을 제시하면서 두루뭉술하고 조금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현재 사회의 복잡한 생각들을 잘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모멘트

소설 모멘트.
한 번쯤 이 책을 다른 사람이 읽어봤으면 해서 글을 써요.
 
진부할 수 있지만 제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013년 가을쯤 힘든 훈련이 한창인 군대에 있을 때에요.
 
휴가를 갔다오면 항상 책을 4~5권 씩 사오는 후임이 있었어요.
 
남들은 쉬기 바쁘고 사이버지식방에서 컴퓨터하기 바쁠 때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궁금하기도 하고 장난칠 겸 곁에 갔어요.
 
나 : “야 휴가 때 재밌었냐 뭐하고 놀았냐”
 
걔 : “아, 가족이랑 시간 보내가 친구들이랑 놀았습니다.”
 

나 : “책을 왜 또 사왔냐?”

 

걔 : “이번에 새로 나온 책도 있고 베스트 셀러 몇 권 사왔습니다.”

 

나 : “재밌는 책 있어?”

 

걔 : “다 재밌는 책으로 골라 왔습니다.”

 

나 : “그럼 제일 재밌는 걸로 한 권 빌려줘”

 

걔 : “모멘토 읽어 보시겠습니까? 정말 재밌습니다.”
 
나 : “줄거리가 뭔데?”
 
걔 : “이 그것은 직접 읽어보시야지 재밌는거라 먼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나 : “아 장난해?? 진짜 재밌지? 나 읽고 재미없으면 알지?”
 
걔 : “네, 제가 정말 책임지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갓 모멘토를 처음 접했어요. 
 

사실 군대에 있으면 모든게 귀찮기도하고 조금만 일도 힘다고 느껴져서 쉬는 시간 이외에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기 싫어요.

 

그런데 점심먹은 후 짧은 시간, 저녁점호 전 등 작은 시간을 이용해서 읽어봤어요.

 

그 이후 일과시간에도 책을 읽었습니다. 점호 시간에 읽었습니다. 밥 안 먹고 읽었습니다. 잠 안 자고 읽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에 전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됐어요. 

 

만약 이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은 ‘어디 한번 속아서 읽어본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분명 속았다라고 느낄 거에요.

 

왜냐하면 처음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에요. 

 

첫 부분은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기 전 이야기에요. 그냥 늙은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또한 결말도 처음에 언급 됩니다. 

 

하지만 이건 중요치 않아요.

 

우린 결말보다 과정이 중요하단 얘기를 가끔 듣는데 그 이야기가 여기에 부합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이 부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시작돼요.

 

이때부터 잠을 못 자게 됩니다.

 

다음 페이지가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에요.

 

이 책을 읽다보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투명망토 아시나요?  

 

해리포터가 투명망토를 쓰고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잖아요. 

 

지금 내가 그 망토 둘러쓰고 투명인간이 돼서 옆에서 주인공들을 얼굴에 있는 솜털까지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선명하게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져요.

 

또한 야합니다. 그래서 더 못 잡니다.

 

또한 절절히 슬퍼요. 

 

 

 

인터넷에 리뷰를 검색해보니 비평, 평론 내지는 전체를 대강 살펴보거나 중요한 내용이나 줄거리를 대강 추려 냄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저는 철저히 내용을 언급하지 않겠어요. 

 

말이 필요 없거든요.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과 조그만한 오해와  아쉬운 타이밍 때문에 힘든 사람,  

 

슬픈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 책을 오랜만에 읽고 싶은 사람, 

 

다 상관없어요. 그냥 들고 다녀도  겉표지가 이뻐서 있어보여요. 

 

다들 즐거운 독서시간 되세요.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2017 베스트리뷰 공모전 수상작]

이 작품은 작가가 어린 시절, 빨강머리 앤을 보면서 와 닿았던 대사나 장면을 자신의 삶에 대입해 쓴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빨간 머리앤의 한 구절, 한 마디를 공감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야망에는 결코 끝이 없는 것 같아. 바로 그게 제일 좋은 점이지. 하나의 목표를 이루자마자 또 다른 목표가 더 높은 곳에서 반짝이고 있잖아.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건가 봐.”

보통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무서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겪으며 더 크고 많은 세상의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곤 한다. 빨강머리 앤은 용기를 내서 특별한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삶은 나만의 목표를 끊임없이 세우는 것이다. 작가는 사람이 사는 것에 지치는 이유는 목표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현재의 삶이 전부가 아니며 더 크고 다양한 삶은 찾아 나서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사람이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며 그걸 이룰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 또한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대학교 입학 후 목표 없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찾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여 살았던 내 자신에게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며 한편으로는 위로도 해 주었던 구절이다. 책에 나와 있듯 끝이 있는 것을 인지하며 삶을 지탱하고 달려 나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작은 것 일지라도 무언가를 꿈꾸고 한발자국씩 나아가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는 힘 아닐까.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잎을 키우고,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라 믿는다” 

취업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취준생들이 지금 이 길이 맞는 건가의심이 들 때 읽으면 큰 도움이 된다. 지금껏 우리는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노력이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목표를 위해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 뿐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오늘 해야 할 일 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이 전환점을 돌면 어떤 것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난 그 뒤엔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고 싶어요!”

미래에 대한 기대의 달콤함은 현실의 쓰디씀에 대한 인정과 감당 안에서 꽃 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구절처럼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미래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그 뒷일은 모른다.그 길에 들어서봐야 알 수 있다. 결국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선 아무리 모험심이 강한 사람도 두려움이 딸려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뒤를 모르더라도 좋은 것이 있다고 믿으면 왠지 지금 당장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선택에 한 발을 내 딛을 수 있을것이다. 인생에서 경험에 의한 준비가 내일을 살아가는 가장 멋진 준비물이므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발자국씩 나아가자. 

 

 

 

 

 

파리대왕 (세계문학전집 19)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2017 베스트리뷰 공모전 수상작]

  소설 ‘파리대왕’을 처음 접하였을 때 소설의 제목이 나로 하여금 궁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파리대왕이 무엇을 의미할까? 처음으로 떠올리게 되는 일상생활 속의 그 파리인가, 아니면 다른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무척 궁금하였다. 처음 일을 때에는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소설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고 읽어보니 심오하고 재미있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파리대왕’은 문명과 야만, 권력욕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린 아이들을 등장시켜 표현한 이야기이다.   소설이 나올 당시는 세계 2 대전이 끝난 10 후의 상황으로전쟁에서 일어났던 대학살과 공포는 합리와 이성을 중시하던 서구문명에 ‘과연 인간은 이성적인가 대한 커다란 의구심을 느끼게 하였다.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문명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무인도에 표류되어 그 곳 에서 각자 살아가는 것이다. 무인도에 갑자기 떨어진  아이들은 아마 매우 무서웠을 것이다. 무서움에 떨던 아이들은 각자 할 일을 찾기 시작한다.  모든 무리에는 대장이 있다. 맨 처음 아이들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뱃고동을 울려야만 말을 할 수 있거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 생활한다. 하지만 언제 무인도에서 나갈지 모르는 아이들의 불안은 커져 하나의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냈다. 바로 ‘잭’과 ‘잭을 따르는 무리’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체면을 버리지 말라는 랠프의 말을 무시하고 점점 포악해져 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에 많이 놀랐다. 잭은 조금 더 강하고 인간의 이성 뒤에 감춰왔던 본능, 즉 잔인함과 포악함을 아이들에게 어필하며 자신의 무리로 만들어나간다. 이로하여, ‘잭’과 ‘랠프’의 집단으로 나뉘었다.

   어른들의 세계에는, 나아가 하나의 집단에는 반드시 대표자가 생긴다.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는 무인도에 표류된 아이들에게서도 권력욕이 생기고 이를 위해 서로 대립하며 아이들은 점점 포악해진다. 잭의 일행은 마치 야만인들처럼 피를 바르는 행동을 하고, 결국 자신들의 말에 불복종하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외부에 적을 만듦으로써 내부는 더욱 단결한다. 자신의 무리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일은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이러한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좋지 않은 모습이 아무런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무아도에 남겨진 아이들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어느 날, 잭의 무리 중 한명은 동굴에서 알 수 없는 생명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생명체의 실체에 대해 알 리 없는 아이들은 그 존재를 ‘유령’이라 믿기 시작한다. 어른 하나 없는 무인도에유령이란 공포의 대상이 생기자, 아이들의 불안이 더욱 높아진 나머지 그 두려움은 아이들의 이성을 완전히 놓게 만든다. ‘유령’이라는 존재를 자신들의 무리의 말에 불복종하는 대상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 과정이서 현대 문명의 상징인 ‘돼지'(piggy)는 돌에 맞아 뇌수가 깨진 채 살해당한다. 사이먼 또한 그 작은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공포를 누그러뜨리려 하지만 살해당하고 만다. 그 진실이 아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할 수 있는 ‘필요악’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유령’은 무서워하면서도, 정작 더욱 무서운 존재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잭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랠프를 죽이기 위해 이성을 잃고 산에 불을 지른다. 마지막까지 랠프는 이성을 잃지 않고 잭에게 동의를 구하지만 이미 잭의 무리는 순수했던 ‘친구 아닌  사회의 악의 무리로서 랠프의 말을 무시하며 자신들을 방해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불덩이가  섬을 보고  순양함에 의해 아이들은 구조된다  안팎의 소년들이 살인을 태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할 무렵어른에 의해 구조된 것이다적어도 아이들에게어른이란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앞에서 나쁜  살인을 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어른의 등장과 함께 아이들은 예전의 온순했던 때로 돌아온다마치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환상이고놀이였던 것처럼……. 그렇게 랠프는 순양함의 구조 덕분에 살아났지만순양함의 어른들은  누가구조해주어야 할까아이들에게 이성적인 존재로 보이는 어른들도 결국 싸우러 가는 길이거나혹은싸움에서 돌아오는 길이다어른들 또한 적에 맞서 싸운다랠프와 잭이 맞서던 것처럼. 또 만약, 랠프가 살해당한 뒤, 잭의 무리가 어른들에게 발견되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살인을 실토했을까’라는 의구점이 든다.

 파리대왕의 상징은 여러 곳에서 내제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고발이,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통해 표현되어있어 나에게 여러 생각을 갖게 해 준 책이다. “귀신은 무섭지 않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언제 어디서라도 보편타당성이 있으며 살아있는 것, 즉 살아 있는 인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욕망이 있다. 권력을 가지고 싶다, 돈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 내 것은 아니지만 가지고 싶다. 이러한 내제되어 있던 욕망이 민주주의를 깨고 인간의 본성에만 맡기게 된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이성과 윤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극도의 흥분 상태가 극에 달해 있을 때, 갑자기 마주하게 된 문명 앞에선 그냥 ‘어린 아이’ 모습 그대로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윌리엄 골딩은 ‘파리대왕’을 통해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단지 ‘그것이 옳은 것인가,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묻고 있는 듯 하다. 세상에게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세계 2차대전을 치루고 대학살과 공포를 겪은 당시의 상황에서 그는 인간의 본성은 이성적이지 않다라는 메세지를 어린아이를 통해 던진 것이다. 

  순수한 어린아이를 통해 이런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룬 이야기는 나에게  크게  닿았고,문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모든 사람에겐 자신이 원하는 ‘욕망 있다우리는 자신의 욕망만을 위하기보다는우리 모두가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인간의 욕망’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이토록 모든이가 바라고, 숨겨온 본성앞에 무너지게 되는 것일까. 이 소설은 우리 주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새로운 시각으로 성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찾은 자본주의 문제와 해법)

행정학 시간에 과제겸 수업 이해를 위하여 스미스의 이론에 대해 공부를 하던 중 이책을 찾아 읽어 보았다. 처음에 스미스의 따뜻한 손 이라길래 이게 무슨 말 장난 인가 싶었는데
책을 읽어 가면서 왜 이런 제목을 선정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책에 나오는 스미스의 생애부터 해서 내용을 볼 필요가 있다. 스미스가 스코틀랜드에 태어났을 무렵 당시 영국과 빈부 격차가 매우 심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스미스가 15살이 되던 해에 영국 옥스퍼드로 유학을 가는데 이 떄 옥스퍼드 교수와 학생들이 스미스에세 지역감정 이야기를 하였고 이에 스미스를 그 학교를 나와서 동네 로컬학교로 다시 가게된다. 이려면서 스미스가 자본주의 인간의 감정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책을 쓰는데 그게 요즘 우리에게 알려진 도덕감정론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국부론이다. 이러면서 이 책에서는 이 국부론과 스미스의 생애와 연관을 시켜서 이야기를 전개 시켜 나아간다. 이 책을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스미스의 이론과 생각은 스미스가 생존 했을 당시와는 다르게 해석되고 전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한 개인이나 집단의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고 합리화 하기 위해 과거의 이론을 자기의 입맛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미스가 창조한 자유방임주의는 무정부 주의 아나키스트를 말하는게 아니다. 국가는 개인의 권익 보존을 위해서 최소한의 관여를 해야한다고 하였고,더하여 자유방임주의와 스미스의 경제 이론을 뒷 받침 하는 개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책에 나오는 그러한 사람들로 단정짓고 있는데 현대에 오면서 이 이론은 좌편향 적인 사람과 우편향 적인 사람 들에 치우치면서 생각되어 지고 문제는 이러한 생각 들이 후대에 잘 못 전해 지는 문제가 생기고 본래의 취지와는 반대로 행해져 간다. 예를 들면 다윈의 진화설이 제국주의의 식민지화에 명분을 제공한 것을 이유로 들 수있다.
 이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점은 어떠한 책에 쓰여진 이론과 법을 공부하고 탐구 할 떄 무비판적으로 수용 하기보다는 당시 이론의 배경이나 상황을 생각해 보면서 비판적이면서 주체적으로 이해하면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