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는 서점이나 오픈백과를 통해 검색해서 알 수 있으니까 줄거리는 따로 적지 않겠다. 내가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위주로 남겨보고자 한다.
– “··· 이렇게 하죠. 거기에 ‘소년 십자군’이라는 제목을 붙이겠습니다.”/그녀는 그후로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듯이 난 역사에 무지하다… 배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배우지 않는 자세를 가진 한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을 이름만 알지 얼마나 심각한 전쟁인지 모른다. 어린 청년들이 군인이나 전쟁에 대한 존경이나 동경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한 몫하는 책이 될까 작가를 싫어하던 지인의 마음을 돌린 장면이다. 지금 청년들은 군인이나 전쟁은 끔찍하게 여기는 게 대다수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에는 다른 행태였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지금 시기만 해도 군인이 고문으로 죽어가는데… 물론 대한민국의 이야기지만.
– 그런데 새는 뭐라고 할까요? 대학살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지배배뱃?”같은 것뿐입니다.
새는 무엇을 물어도 자신의 언어로만 대답할 뿐이다. 우리가 못 알아들었을 뿐일까.
– 빌리 필그림은 즐거운 환각에 빠져 있었다. 따뜻하고 하얗고 두툼하고 바싹 마른 양말을 신고 무도회장 바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수천 명이 환호했다. 이건 시간 여행이 아니었다. 그렇게 스케이트를 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이것은 구두에 눈이 가득찬 채 죽어가는 젊은 남자의 광기였다.
빌리 필그림은 작중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저 고통은 시간 여행따위가 아니다. 눈밭을 헤치고 다니지만 제대로 된 군화 한 없어 발이 얼어버린 자의 즐거운 환각.
–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이 책의 아마 가장 유명한 문구가 아닐까 싶다. 원래 있는 기도문인지 아니면 제5도살장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서 여러 번 검색해봤는데 평온의 기도인가 그거라고 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걸 신에게 맡겨야 찾을 수 있는 건가? 신은 존재하는가? 글쎄, 나는 이 질문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 “트랄파마도어에는 전문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말이 맞습니다. 각 기호들의 덩어리는 짧고 급한 메시지입니다-하나의 상황,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지요. 우리 트랄파마도어인은 그것을 하나씩 차례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꺼번에 읽습니다. 그 모든 메시지들 사이에 특별한 관계는 없습니다. 다만 저자는 모두 신중하게 골랐지요. 그래서 모두 한꺼번에 보면 아름답고 놀랍고 깊은 삶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시작도 없고, 중간도 없고, 끝도 없고, 서스펜스도 없고, 교훈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책에서 사랑하는 것은 모두가 한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경이로운 순간들의 바다입니다.”
내게 가장 난해했던 트랄파마도어인의 이야기다. 깔끔한 스토리 전개라기보단 정말 빌리 필그림의 한 인생의 시간을 이야기로 담은 느낌이라 이곳저곳 시공간을 넘나들며 진행되기 때문에 읽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중 트랄파마도어인은 외계인인데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트랄파마도어인의 전달법이 마음에 들었다. 수려한 문장들로 이야기를 화려하게 이어가는 게 아니라 짧고 급한 덩어리지만 신중하게 고른 메시지… 나는 언젠가부터 유려한 문장들을 좋아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더 심했고, 지금은 과거의 쓴 글은 가독성이 떨어져 읽지도 못한다. 그때 열심히 사전과 시집을 찾아가며 썼던 단어들의 뜻도 기억이 나지 않아 글을 이해하지조차 못하는 것도 있다. 내 메시지는 짧고 급하지만 신중하게 담아내는 형태를 갖추길 바란다.
– 오, 이런-이 사람들은 린치할 사람을 잘못 고른 게 틀림없어!/ 이 생각에는 형제가 있었다. “린치하기에 적당한 사람들이 있다.” 누굴까? 좋은 연줄이 없는 사람들이지. 뭐 그런 거지.
이 책에서 ‘뭐 그런 거지.’라는 문장이 나오면 참담한 현상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이해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최대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쓰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이 죽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문장이다. 린치 장면도 같다.
–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존엄을 빼앗아버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은 정당화될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범죄인 스토킹이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범죄가 아니될 수 없고, 아동학대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형태로 드러날 때가 있다. 이 장면에서는 딸이 아버지의 존엄을 무너뜨린다.
– 어린 경비병 베르너 글룩은 드레스덴 소년이었다.···그는 빌리처럼 키가 크고 몸이 약해, 빌리의 동생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들은 사실 먼 친척이었는데, 둘 다 끝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년 십자군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빌리의 동생처럼 보이는, 실제로 친척지간이었지만 그들은 몰랐던 어린 아이가 빌리와 포로들을 감시하는 경비병이다. 어린 아이들과 청년들이 전쟁에서 죽어나가고 트라우마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 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
– “나도 늙는 게 나쁠 줄은 알았지.”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쁠 줄은 몰랐어.”
젊음이 좋은 건 알겠다. 하지만 늙음이 나쁜 건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늙음이 나쁜 게 느껴지지만, 좋은 늙음도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나쁘게 늙어갈 것만 같아 늙고 싶지 않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늙는다면 젊음을 가진 청년이 늙은 나를 보고 늙음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해설) 이 책에서 누군가가 죽을 때마다 등장하는 “뭐 그런 거지”라는 표현-총 106번 나온다고 한다-도 체념적 수동성을 드러내는 말로 들리기도 하여, 과연 이 책이 반전의 메시지를 던지기는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책 맨 뒤에 짧은 해설이 있다. 죽음이나 고통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없지만 현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만 했던 ‘뭐 그런 거지.’라는 문장이 106번 등장했다고 한다. 많이 등장했다는 건 알고 있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고르라고 하면 첫 번째로 ‘뭐 그런 거지.’를 고를 것이고, 두 번째도 기도문을 고를 것이다. 후반부에 기도문은 그림과 함께 등장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물론 그림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한 번 더 나에게 기도문을 새겨주었다고나 할까. 그냥 그런 거지, 뭐 그런 거지, 세상이 이런 거지 등 이런 생각으로 순간을 지나치려면 그전에 분명하게 그에 대한 고통이나 괴로움을 겪었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시험 성적이 그랬다. 반토막난 점수를 보면서 왜 이런지 따지고 들며 힘들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낮은 점수는 무감각해졌다. 그런 거지. 지금은 다양한 것들이 그렇다. 어제 있었을 동성애 폐해 예방의 날과 같은 것들. 사랑을 폐해라고 말하는 것들이 아직도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고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들을 증오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돌도 달걀도 던지지 못하고 내 의견도 소신껏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나를 그냥 그런 거지, 그런 사람도 있는 거지라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현상이 좋은 건 아니다. 이 책도 잠깐 청소년유해소설로 들어갔을 만큼 반문화적, 반전 소설이다. 하지만 글은 말보다 내게 강력한 무게로 다가와서 내게 유해되는 문장들도 쉽게 받아들여진다. 내 의견을 소신껏 말할 수 있어야 하는 단단한 사람이고 싶음에도 내 멋대로 잘 되지 않는다. ‘뭐 그런 거지’라고 받아들이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