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앞부분 다섯 장 정도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시작부터 철학적인 내용이 이어져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의 초중반을 읽을 땐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읽다보니 점점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술술 잘 읽혔고, 끝까지 완독했을 때는 테레자와 토마시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뿌듯함이 크게 남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뿌듯함마저도 ‘키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ㅤ
이 책에서 말하는 ‘키치’란 사물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상이나 감동적인 이미지로 왜곡하고 추어올려 신봉하는 태도를 말한다. 나 역시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해했던 점이 어쩌면 키치였던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키치는 현실에서 직면해야 할 문제들을 외면하고, 달콤한 환상만을 좇으려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ㅤ
책 속 인물들을 보면, 사비나와 토마시는 키치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테레자는 신분 상승을 꿈꾸며 책을 들고 다니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취해있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키치에 얽매여 사는 인물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키치를 지니고 있고, 어쩌면 키치는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공허한 키치에서 벗어나 진실되고 무게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ㅤ
또한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움’을,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거움’을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키치에서 벗어나려는 인물은 오히려 가벼움을 추구하던 토마시와 사비나였고, 테레자는 무거움을 추구하면서도 키치에 갇혀 있었다. 작가는 ‘가벼움’과 ‘무거움’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나 삶 속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이고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ㅤ
처음에는 테레자처럼 무거움을 추구하는 사람과 토마시처럼 가벼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가벼운 토마시와 사비나가, 무거운 테레자와 프란츠가 서로 짝이 된다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 덜 가벼운 사람이 되었고, 테레자는 토마시를 만나 덜 무거운 사람이 되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균형을 찾아갔고, 누구보다 행복하고 잘 맞는 한 쌍이 되었다.
ㅤ
이 책에는 정말 좋은 문장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라는 문장이다. 이 한 문장이 토마시와 테레자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